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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듄을 다 읽었다. 모래사막 행성 아라키스에서 펼쳐지는 대서사시는 웅장한 스케일과 함께 세밀한 묘사로 나를 압도했다. 이 소설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아마 가장 많이 나온) 구절은 나의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것은, '두려움은 정신을 죽인다' 이다. 폴이 아트레이데스 시절에 모히암 대모에게 곰 자바의 시험을 받을 때, 제시카와 폴이 하코넨의 오니솝터에 타서 죽을 위험을 넘길 때, 맨 처음 프레멘을 맞닥뜨렸을 때, 등장인물들이 가장 위험한 순간들에 어김없이 이 문구가 등장했다.
이는 내가 이미 체화하고 있던 말이기 때문에 나에게 더 깊이 각인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중학교 때 왕따를 심하게 당했고, 매일 학교에 가면 맞고 놀림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는데, 처음에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나에게 아무런 사심없이 다가오는 친구들마저 두려워 했었다. 예를 들면, 1학년 때 반장이었던 훈정이가 눈이 부리부리하다는 이유를 걔를 조금 무서워했던 것이다. 그 때부터였을까. '두려움은 정신을 죽인다'는 격언은 워딩은 조금 바뀌었을지언정 나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이후로는 아직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을 느껴본 적은 잘 없는 것 같다. 폴도 그랬을까. 어려서부터 베네 게세리트, 멘타트로서의 훈련을 받으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느꼈지만, 저 격언을 마음에 새기면서 어려움들을 극복했으리라 생각된다.
책의 내용과 별개로, 프랭크 허버트라는 사람은 필력이 굉장히 좋은 1류 작가임에 틀림없다. 특히 리에트 카인즈가 죽어가면서 먹잇감을 노리는 독수리들과 싸우는 과정에 대한 묘사에 이르러서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버지와의 대화가 오버랩되면서 조금씩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이었는데, 이처럼 시간의 흐름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은 작가로서 엄청난 스킬인 것 같다.
앞으로 듄은 2,3,4,5,6 무려 5권이나 남아있다. 물론 1권은 분량이 900쪽이 넘어가는 엄청난 두께라서 읽는데 무려 3주나 걸렸으나, 앞으로는 빨리빨리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단 다음 책은 다다음주 독서모임에서 토론할 빅테크 수업에 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