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21 - 2022.04.23
얼마 전 읽었던 양귀자의 다른 소설, 모순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양귀자의 다른 소설을 찾아 읽게 되었다. '원미동 사람들'은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국어 교과서에서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어 쉽게 다음 책으로 선택되었다. 목요일에 첫 장, <멀고 아름다운 동네>를 읽고 나는 더 읽어나가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요새 나는 원인 모를 무기력함과 약간의 우울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 장의 암울한 분위기가 나를 더 깊은 우물로 데려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서울 셋방살이마저 누리지 못하고 쫓겨가듯 경기도 부천으로 이사가는 씬을 보고 있자니, 애잔함과 함께 나의 마음이 아파오는 듯 하였다.
하지만 독서 외에 별다른 할 일은 없었다. 이번주로 백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나로서는 피씨방에 가기에도 더 이상 나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또다시 나의 마음 속에서 샘솟았던 것이다. 그런 연유로 나는 그제 3km를 달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고질적인 비염 알러지가 도져버리고 말았다. 독서에도 당연히 방해를 받아, 원래였다면 하루면 마무리되었을 책을 3일이나 끌게 되었다.
양귀자 소설의 특징은, 이렇다할 거대한 사건들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첫 책 '모순'도 그렇고, '원미동 사람들'의 여러 단편들 속에서도 사건의 경위만으로 독자들을 놀래키는 식의 스토리는 등장하지 않았다. 굉장히 평범한 사람들의 굉장히 평범한 다툼 속에서 우리는 친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친숙함이란 그들이 나누는 대화, 행동의 동기가 나같은 소시민들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작용과 다름 없어 우리 동네 바로 옆집의 이야기라고 했더라도 충분히 믿을만한 이야기라는 것이고, 낯섦이란 그 친숙한 사건들 속에서 우리가 간과한 포인트들을 다시한번 곱씹어보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비오는 날엔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에서는 집을 수선하는 부부와 그들이 고용한 인부들이 등장한다. 집주인 부부는 인부 임씨와 18만원의 견적서를 작성하고 일을 시작하였으나, 예상보다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자 18만원을 고스란히 내놓기가 아까웠더란 말이다. 그래서 사전에 없던 옥상 보수 공사도 시키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겨우 일이 마무리되었다. 그래도 18만원 뽕이나 뽑았으려니, 하고 돈을 건네려던 찰나, 임씨가 견적서를 빼앗아가서 이것저것 고치더니 그 반값에도 못 미치는 7만원을 청구하였던 것이다. 집주인 부부의 속좁음과 속물적인 행동을 내심 공감하며 읽던 나는 7만원으로 고쳐진 견적서를 받아든 집주인 부부만큼이나 나의 그릇을 반성하게 되었다. 일시적인 계약 관계로 고용인과 인부라는 계급을 형성하였던 그들이 나중에 술잔을 마주하며 형씨라고 부르게 되는 상황은 결국 그들 역시 똑같은 쳇바퀴 위를 걸어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은유하였다.
소설의 배경은 1980년대 부천시 원미동이다. 여러 사건들이 소개되는데, 솔직히 그 안에 담긴 뜻의 반의 반도 다 캐치하지 못하였다. 독서 모임을 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의미 분석에 소홀함도 있었으나, 한 장 한 장에 담긴 뜻이 많아 부족한 나로서는 그 모든 삶의 지혜를 발굴할 능력이 없던 탓도 있다.
어제 소희, 은영, 민호, 나연 과 만나서 '원미동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했더니,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들'이라는 책을 추천 받았다. 다음 책은 이것이 될 것이다. 아, 블록체인 책만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