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까스 Jul 13. 2022

모순 - 양귀자

2022.04.19 - 2022.-4.20

1. 나는 모순투성이다. 관심 받길 원하지만, 막상 관심을 받으면 부담스러워 한다.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어 하지만, 시간이 남으면 제일 먼저 유튜브를 킨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표현하기에는 낯부끄럽다고 생각한다. 어떤 친구들 사이에 있으면 분위기를 주도하며 대화를 즐기다가도, 다른 친구들 사이에 있으면 한없이 조용해지기도 한다. 이런 나의 모습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친구는 나를 두고 “인싸 중에서는 아싸, 아싸 중에서는 인싸” 라는 촌평을 남기기도 했다. 무엇이 진정한 나의 모습인걸까? 하고 생각에 잠겨본 적도 더러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라는 사람 자체가 참 일관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동전의 앞뒤를 휙휙 뒤집듯, 나의 행동 패턴은 시간, 장소, 상황, 함께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곤 했다. 흔히 이렇게 일관되지 않는 행동을 보일 때, ‘모순적’ 이라는 단어가 따라붙곤 한다. 일관성이 없다는 것은, 줏대 없다는 말과 동의어일까? 자신의 신념 없이, 주변 환경에 휩쓸려 다니는 사람인 걸까?


2. 하지만 나는 사람이 꼭 일관성 있을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일관성을 무너뜨림으로써 한 개인의 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한다. 그 변화에는 반드시 어떤 합리적인 이유나 거창한 계기가 있을 필요도 없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 어제의 내가 한 말과 한 행동에 오늘의 내가 구속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어떠한 말이나 행동, 생각은 그 사람의 모든 특성이 합쳐진 총체적 결과물로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중 일부가 변화함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일관성이 좋은 미덕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계획을 휙휙 바꿔버리는 사람보다는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는 사람이 더 좋은 태도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러한 일관성은, 그 일관성의 방향이 옳은 것일 때에야 좋은 미덕일 수 있다. 옳지 않은 방향으로 일관성 있게 밀고나간 사람들의 사례를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많이 접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나아가는 방향에 확신이 들지 않을 때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인생의 방향키를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3. 이쯤에서 이 책의 키워드, ‘모순’을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살펴보자. 모순의 사전적 정의는 ‘1)어떤 사실의 앞뒤가 어긋나 서로 맞지 않음 2)두 가지의 판단이 양립하지 못하고 서로 배척하는 상태 3)투쟁 관계에 있는 두 대립물이 공존하면서 맺는 상호 관계’ 이다.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정의는 세 번째 정의이다. 이는 헤겔이 변증법에서 말하고 있는 ‘변증법적 모순’ 개념이다. 즉, 사물에는 여러가지 양상(정-반)이 있으며, 이들 사이의 모순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물의 여러가지 측면에 대하여 고찰할 필요가 있다. 코끼리의 일부만을 더듬으며 각기 이것이 코끼리라고 주장하는 맹인들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코끼리의 전체를 그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이러한 모순은 극복될 수 있다.


4. 이러한 관점에서 이 소설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모순인 이모와 어머니 사이의 관계를생각해보자. 이모는 겉으로는 누가 보기에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나, 어머니는 누구보다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모는 자신이 마치 ‘무덤 속’에 있는 것 같다며 답답해하며, 어머니는 이 모든 평지풍파 속에서도 기이한 활력을 보이며 살아나간다. 이것이 모순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이모를 답답하게, 어머니를 활기차게 만든 것일까? 이모는 삶에서 정말로 바란 것이 물질적 풍요가 아니었다. 어머니 역시 항상 물질적 풍요를 위해 노력하셨으나,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하고 삶을 포기해버리지 않았다.

두 자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자기효능감’이었다. 이모는 언제나 성실한(이모의 표현대로, 답답하고 재미없는) 남편, 그리고 그에 맞게 성실하게 성장한 가족들 틈에서 정해진 본인의 역할대로 살아가야 했다. 이모는 여러 차례 그러한 정해진 틀 속에서 사는 것이 답답하다는 속을 내비쳤으나, 마지막 편지에서도 고백했다시피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에 그 틀을 깨지 못했다. 가족끼리의 대 아버지 성토 대회에서 이모가 유일하게 아버지 편을 들었던 것도, 아버지에게 어떠한 동병상련, 혹은 그 틀을 깨부수고 자유를 찾아 나간 것에 대한 일말의 동경심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비록 그 방식은 잘못된 것이었을지라도. 반면, 어머니는 이모만큼의 물질적 풍요는 누리지 못했으되 삶의 모든 측면에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며 살아갔다. 남편이 가정을 박살내고, 경제적으로도 빈곤하며, 자식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는 상황에서도 모든 해결책을 스스로 마련했던 것이다. 어머니가 가졌던 기이한 활력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느낌, 즉 자기효능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렇게 자기효능감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모든 모순은 해결된다. 이모는 항상 쾌활하고 행복했던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아내, 엄마, 이모를 연기하는 배우였을 뿐이다. 안진진과 놀러 다닐 때에 그녀는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할 수 있었지만, 그녀가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삶의 대부분의 시간, 이모는 무대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계속해서 주어진 배역을 연기해야 했다. 가면 속의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안진진조차 짐작도 하지 못했다. 쌍둥이 자매인 어머니의 불행을 생각하면, 그녀가 자신의 삶에 대하여 볼멘소리를 한다는 것 자체를 삼가고 또 삼갔으리라. 이렇게 생각하니 그녀가 참으로 불쌍해진다. 어디에도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다는 답답함을 평생 안고 가는 기분은 무엇일까. 이렇게 된 이유는 사실, 이모의 배경을 신경쓰지 않고 사람 그 자체로 봐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가 아닐까.


5.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큰 관점이 요구된다. 서로 대립되는 겉으로 드러난 사실들만 봐서는 결코 모순을 극복할 수 없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모순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해결할 수 없는 장벽이라고 느껴 좌절하면 더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질 뿐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더 많은 경험과 고찰을 통해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되어야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러구트 꿈 백화점 2 - 이미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