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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rger kim Mar 15. 2023

바다에 떠 있는 나무 <바라나시>

그냥 흘러가는 대로


어쩌면 내 인생과 가치관은 인도를 가기 전과 이후로 나누어지는 것 같다.

인도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이렇다.

머물 때는 지옥 같지만, 회상할 때는 천국인 나라.

그래서인지, 현재 내 방 곳곳에는 인센스, 시타르 음악 그리고 그곳에서 구입한 공예품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 이 특유의 이국적이고 편안한 감성을 대중화시키는 것이 삶의 목표 중 하나이다.




저녁 7시 타지마할에서 영혼을 뺏긴 이후

배낭여행자들의 발목에 족쇄를 채울 정도로 매력적이라고소문난 바라나시로 향하기 위해 싸구려 기차 좌석을 예매했다.


낡은 종이에 적힌 기차 출발시간은 저녁 10시 30분이었다

출발하기 전 간단하게 배를 채우기 위해 온통 분홍색으로 뒤덮인 가정식 집에 들어갔다.

탄두리 치킨과 난을 주문하고, 식당 화장실에 들어가 몰래 샤워를 했다.


저녁 10시 기차역에 겨우 도착했다.

철로 근처 자리를 잡고 앉아

구비한 킷캣(초콜릿)과 콜라를 마시며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의 10시 30분, 기차는 오지 않았다.

11시 30분 기차는 오지 않았다.

새벽 1시에도 기차는 오지 않았다.

새벽 3시 여전히 기차는 오지 않았다.


옆에 앉아있던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이런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너무나도 태연한 그들의 모습에 그냥 안주하기로 했다.


바람이 가장 덜 들어오는 구석에 자리를 잡아 침낭을 펴고 노숙을 했다.

인도는 더운 나라지만 새벽은 국경을 안 가리고 춥다.


잠깐 눈을 붙이기 전 옆에 있던 아주머니에게

기차가 오면 깨워달라고 신신당부하고 바로 잠이 들었다.

 



아침 8시 30분, 아주머니는 약속대로 내 허벅지를 찰싹찰싹 때렸다.

드디어 10시간 만에 기차가 왔다. 올 때는 밀물처럼 왔지만 출발할 때는 썰물처럼 떠날 것 같아

침낭을 접지도 않은 상태로 허리에 둘러 기차에 올라탔다.



종이에 적힌 자리를 겨우 찾았다. 그리고  땀이 가득 차 있는 신발을 벗어 재꼈다.

좌석에 침낭을 깔자마자 지퍼를 목 끝까지 잠그고 바로 잠에 들었다.

소똥 냄새, 불타는 잡초냄새 그리고 기분 나쁜 미지근한 바람을 맞으며 14시간 만에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아니 노숙하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정확히 24시간 만에 도착했다.


기차가 도착하고 차창에 비친 내 얼굴에서 나는

내 인생 가장 잘생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바라나시, 쉽지 않았다. 물론 뉴델리만큼 혼돈의 카오스는 아니었지만 좁은 골목,

지뢰처럼 설치되어 있는 다양한 생명체들의 배설물 그리고 쉬지 않고 옆에서 조잘되는 인도인들은

나를 너무 지치게 했다.




겨우 찾아간 숙소에 짐을 풀었다. 호스트 Navin은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며

벽돌 같은 토스트와 소금을 안친 계란프라이를 주며 배를 채우라 했다.

인도에 도착한 이후부터 물갈이와 식중독에 시달렸던 나는

그 계란프라이를 먹고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24시간 동안 입속에 들어간 것들을 다시 자연에게 돌려주었다.


이 지옥 같은 곳을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멀미와 복통은 20분에 한 번씩 찾아왔으며

뜨거운 태양은 하루 종일 내 몸을 끈적이게 만들었다.

'아무렴 어때?'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던 나는 점점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느껴졌으며

인간에 대한 혐오까지 생기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크리켓 하는 아이들, 강가에서 사람 시체를 태우며 빨래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동물들을 마주하면서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도시 특성상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바라나시는,

방향감각이 사라지는 베니스의 골목은 새 발의 피라고 느껴질 만큼 복잡하고 어지럽다.



좁디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시큼하며 비린 요구르트 냄새,

앞에 사람이 있건 없건 무작정 달리는 혈기왕성한 아이들,

신기한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는 상인들,

노숙자의 모습을 하고 마리화나를 건네는 떠돌이들,

뒤에서 사람처럼 툭 치고 지나가는 거대한 소들,

시타르를 연주하며 한을 푸는 듯한 음악가들,

사기 치려고 늑대처럼 눈치 보며 주위를 훑는 젊은 남자들,

히말라야를 품은 눈망울을 보여주며 자신들의 몸을 구매하라고 강요하는 여인들,


좁은 골목이지만 넓은 범위의 사람들이 바라나시의 특별한 문화를 만들어나간다.



알게 모르게 서로 눈빛만으로 의지하는 세계 각국의 배낭여행자들은

이곳에 모여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며 다시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저스틴 비버의 음악과 함께, 오랜만에 마주한 어색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잠시나마 집에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공간 특유의 편안함 덕분인지,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들어 친구들의 SNS를 봤다.

익숙한 배경과 얼굴들을 보니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이 공간을 벗어나 다시 골목에 들어온 순간,

사회와 작별하며 훈련소에 들어가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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