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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rger kim Mar 22. 2023

된장맛 초콜릿 <뉴욕>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뉴욕은 언제나 이루고 싶었던 꿈이자 로망이었다.


하지만 그 로망은 도시의 높은 마천루, 1950년대 찰리파커의 빠른 재즈 그리고 진한 향수냄새 풍기는 브로드웨이의 밤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나의 로망은 높은 채도의 LED 간판, 하수구에서 뿜어 나오는 기분 나쁜 연기, 지하철에서의 싸구려 재즈 공연 그리고 2달러짜리 조각 피자에 가까웠다.


당시 운 좋게 뉴욕에서 인턴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이 기회를 통해 뉴요커들의 일상을 경험하고 인적인 뉴욕의 모습을 훔쳐볼 수 있었다.


가장 바쁜 도시에서 가장 급한 여행객들과,

거꾸로 걸으며 도시를 느리게 음미했다.

      


숨 막히는 고층 빌딩, 하노이의 거리가 연상되는 자동차 경적소리, 수십 개의 언어 그리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간판은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이게 만든다.


하지만 이 서두름은,

내가 점점 그들의 일원이 되고 있다는 망상에 빠지게 만든다.



쾌락에 빠져야만 할 것 같은 도시 속에서

자전거는 순수하며,

백발은 낭만적이다.

낭만을 타는 아저씨와 그 일행들은 복잡함 속 긴장을 풀게 만들어준다.




여행자들은 공감하겠지만, 결국 어떤 국가이든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  


아침 6시, 회사에 출근하기 전 하루도 안 빠지고 뉴욕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헬스장을 등록하여 출근도장을 찍었었다. 당시 나의 루틴은 아래와 같았다.


'홍콩 청킹멘션과 흡사한 낡은 숙소를 빠져나왔다. 아직 완전히 해가 뜨지 않아, 짙고 푸른 하늘의 품속에서 던킨 도너츠의 바바리안 도넛과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하여 헬스장의 프런트와 인사를 나누고 존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새벽의 헬스장에서 홀로 운동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 난 오전 6시인지 저녁 6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들의 열기와 땀냄새에 취해 이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운동뿐만 아니라, 출근 속에서도 이들 의 일상 속을 들여다보면

자신과의 전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매일 치열한 인생을 살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모습에서는 희망과 행복이 눈앞을 아른거렸다.

 



길거리에 흘러나오는 재즈와 라틴팝, 무심하지만 환영하는 듯한 그라피티,

방황하는 예술가들, 길에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들, 소호에서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총소리

그리고 무질서 속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은

무료한 일상을 축제로 만들어줬다.  



해변가와는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편 사진 속 사람들은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까지 눈에 담고 싶었던 모양이다.  

 





미슐랭 부럽지 않은 1.99달러 조각 피자와

늘 테이크아웃하여 도보에서 입에 다 묻혀 먹었던 햄버거는 뉴욕을 짝사랑하게 만든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개인주의에 지배되어 보였던 팀 직원들은 마지막 출근이라는 이유로 케이크로 작별을 맞이해 주었으며, 같은 숙소에 머물렀던 친구들은 한인마트에서 구입한 안 익은 김치와 딱딱한 스테이크를 구워주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맨해튼은 다른 메트로폴리탄 도시들과 다르게 약한 내면을 감추고자

외면에 신경을 많이 쓴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 뒤에는, 분명 삶에 대한 압박감과 허무함이 공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해가 지면 간판의 불빛과 건물의 조명이 잠에서 깨어나

조금이라도 이들을 위로해 준다.


그리고 이 희망은 뉴욕이라는 도시를 더욱 화려하고 견고하게 만든다.



분명 본 것도 많고, 도시에 대한 만족감도 높았으며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을 보냈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과거 뉴욕에서 겪었던 감정과 스토리가 선명하게 기억이 나지 않아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아마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 인간적이어서 기억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상을 꿈꾸는 나에게는 너무 현실적인 도시였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도시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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