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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 달래 Apr 04. 2022

고대로부터 온 초대장.

바라캇 서울 특별전시《메두사의 미궁》

데이레터란? 더 좋은 일상을 위한 낭만소개서. 기록하고 소개하며 일상을 의미 있게 만듭니다.


[culture]

고대로부터 온 초대장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건 아이러니 하게도 마음이다. 매서운 바람보다 따스한 햇빛에 외투를 벗은 이야기처럼. 내 발걸음을 전시장으로 향하게 만든 건 ‘몇 년만의 대작’, ‘화려한 볼거리’라는 말이 아니라 한 편의 편지였다. 그래서 ‘바라캇 서울’의 특별전시 《메두사의 미궁》은 이토록 정성 들인 초대장이다.


바라캇 서울(Barakat Seoul)은 약 150년간 고대 예술품들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바라캇 갤러리가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 개관한 전시 공간이다. 그 중 ‘현대 예술관’에서는 고대 예술과 현대를 접목한 예술적 다양성을 보여준다. 단순히 수집을 넘어 현대미술과의 조우를 통해 고대 예술품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겠다는 의미다. 어떤 만남이 이루어질 지 생소하면서도 호기심이 앞섰다. 이번 현대 예술관에서 진행한 특별전시 《메두사의 미궁》에서 이러한 만남을 엿볼 수 있었다.


전시 서문을 이만치 자세하게 읽어본 적이 있을까. 《메두사의 미궁》은 서문부터가 전시의 시작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바탕으로 하였다는 이야기부터, 전시의 작가에 대한 소개 그리고 예술품의 가치까지. 전시를 보기 위한 바탕적 면면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서문이 주목받은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유려한 문장과 그 안에서 느껴지는 설렘 때문이다. ‘친애하는 귀하, 격조하였습니다.’라는 정중한 어조로 시작했지만 뒤에 감춰진 흥분감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리스와 로마의 보물들을 행여나 잃어버릴까 조마조마하며 에게 해를 한달음에 달려온 듯했다. 그로부터 받은 편지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들뜨게 만들기 충분하다.


그러나 설렘도 잠시. 바라캇 서울 현대 예술관의 문을 열면 당혹감이 먼저 덮칠지도 모른다. 각 작품마다 어떠한 설명도 없이, 하나의 커다란 무대 위에 모여 있다. 그러면 다시금 전시 서문을 들여다보게 된다. 서문에 따르면 《메두사의 미궁》의 작품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대리석 조각들을 모아 놓았다고 한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자그마치 기원전에서부터 건너온 이 작품들이 대리석 특유의 상아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금 메두사의 눈을 본 것처럼 말이다. 돌이 되어버린 그들을 찬찬히 살펴보자, 각자의 고통이 보인다. 작품들은 어떤 욕망으로 메두사의 미궁 안에 갇히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건넨다. 마치 《메두사의 미궁》이라는 하나의 연극 작품 같다. 이러한 관계를 맺으며 우리는 고대의 어느 시점으로 치환된다. 고대 예술품과 현대의 감상자, 다른 차원의 시공간이 맞닿는 순간이다. 


서문을 읽다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대체 ‘아카토 파르코’라는 작가는 누구일까. 인터넷을 찾아봐도 돌아오는 건 《메두사의 미궁》 전시 뿐이다. 또 생물학적 개인사도 확인되지 않은 인물이다. 하지만 아카토 파르코가 정신적 문법으로 삼았다던 『비브리오테케』, 『변신이야기』는 실재한다. 정말로 존재했던 작가인가에 대한 의심이 피어날 때쯤 서문은 이렇게 말한다. 그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큐레이터의 별명이 ‘뮌하우젠 남작 부인’이라고. ‘뮌하우젠 남작’이란 허구의 이야기를 자신의 모험담처럼 지어낸 인물이다. 이처럼 전시는 실제와 허구를 넘나드며 우리에게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정말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어느 작가가 만들어 낸 작품인 양 말이다.


《메두사의 미궁》은 가히 바라캇 서울의 현대 예술관의 의도를 그대로 투영했다 말할 수 있다. 단순히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예술품들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닌, 서문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인 기획 전시처럼 만들어냈다. 그 안에서 감상자들은 실제와 허구를 유영하며 《메두사의 미궁》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날의 우리와 이종의 존재가 서식하는 미로의 궁전은 만난다. 이렇게 전시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예술품에 메두사라는 새로운 관념을 입혀내는 것이다. 



A.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58-4

H. BARAKAT SEOUL

O. 2021. 12. 08. - 2022. 03. 27. (전시 종료)



insta. @h.dall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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