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유감
우리나라에서도 아이언맨, 배트맨 같은 히어로가 나올 수 있을까?
옛날(?) 아이들의 골목놀이에서 착안한 오징어 게임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그야말로 대박이다. 막장으로 내몰린 인간들에게 목숨을 담보한 게임을 통해 인생역전의 기회를 준다는 설정. 게임 과정을 통해 배반, 배신, 폭력, 야합, 잔꾀 등 인간이 갖고 있는 이기적인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래도 최후의 승자를 456번 쌍문동 성기훈으로 설정한 것은 그가 인간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의 설정, 스토리라인, 배우들의 열연 모두 호평받아 마땅하다. 오징어 게임을 정말 재미있게 봤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드라마가 나올 수 있구나 하고.
하지만 다 보고 난 다음엔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다. 오늘은 우리나라 영화, 드라마에 지겹도록 반복되는 설정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오징어 게임을 설계한 최일남의 설계 목적이 단지 막장에 다다른 사람들이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기 위해 또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을 보는 재미를 위해서였다는 것이었다. 너무 억지스러운 설정이 아닐까.
우리나라에는 항상 부자와 돈 많은 사람, 권력자는 악당이고 악한으로 등장한다. 조선시대에도 탐관오리로 간신배로 자주 등장하였으니 나름 장구한 역사를 가지는 설정이다. 반면 주인공은 못 배우거나 가난하거나 사회적 신분이 미천한 사람으로 설정된다. 이런 주인공이 막강한 부와 권력을 가진 악당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다가 처절하게 좌절하거나 곤경에 처하게 되지만 곧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새로운 초식을 배우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초자연적인 에너지라도 받아서 결국에는 악당을 처단한다는 설정이다. 이런 류의 스토리라인은 진부함을 넘어서서 이젠 지긋지긋할 정도로 우리나라 영화, 드라마, 소설, 웹툰에서 반복되고 변주된다. 아마도 지금까지 보신 영화, 드라마, 웹툰을 둘러보면 이런 무협소설류의 플롯을 차용하는 작품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에 깜짝 놀랄 것이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작가들의 타성이나 게으름 때문일까? 지긋지긋하지도 않나?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해도, 현대를 배경으로 해도 심지어 미래를 배경으로 해도 거의 똑같은 플롯을 차용한다. 권력과 돈이 많은 고위층 계급의 악당과 밑바닥 가진 것 없는 정의로운 흙수저의 대결.
왜 우리나라에서는 아이언맨, 배트맨 같은 금수저 출신의 히어로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못할까?
답은 그런 이야기가 인기가 없고,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안 팔린다는 것. 권력과 부를 가진 소수가 불법 탈법을 일삼고 나아가서 악마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대다수의 보통사람과 흙수저는 안도감과 함께 묘한 자기만족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돈도 권력도 있으면서 잘생기고 매력적이면서 정의롭기까지 하다면? 너무 재수없을 것같긴 하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아이언맨 캐릭터는 좀 까불까불 하면서 이런 나잘난 이미지를 많이 덜어 냄으로써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돈이 많은 사람들 속에 범법자, 악당이 많을까? 가난한 사람들 속에 범법자, 악당이 많을까? 우린 답을 알고 있다. 돈과 권력을 탐하면서 불법과 탈법을 저지른 일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도 많다. 우리사회는 상류층 소수의 일탈을 일반화하고 과잉대표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 내고 소비하고 있다. 왜 그럴까? 돈 많은 악당 권력자들이 총에 맞아 죽는 것을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이 우리 사회가 계층구조를 이해하고 있는 또는 이해하고 싶어 하는 사회적 심리 수준이고 배아픔의 해소지점이다. 사회적 양극화는 분명히 완화되어야 하고 정책적으로 풀어 나가야 하는 사회적 이슈이다. 하지만 그 양극화를 이런 무협류의 단순 스토리라인으로 무한반복 재생산해내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이야기공장에서 일하는 창작자들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팔릴 것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런 류의 이야기를 무한반복으로 변주해서 만들어 내고 있다. 너무 쉽게 사는 것, 아닌가. 그래도 창작한다는 사람들이. 이런 류의 정신승리를 자극하는 이야기를 끝없이 소비해 주는 우리도 이제는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이건 클리셰도 아니고 그냥 상투적인 반복아닐까.
부와 명예, 권력을 가진 자를 항상 불한당, 악당, 변태, 정신병자로 묘사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가난하다는 것을 정의롭고 선하다는 것으로 바로 연결하는 그런 단선적인 상상력이 두렵다. 그런 획일화된 상상력과 빈약한 이해력을 가진 사회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젠 이야기할 때도 되었다.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