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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송정 Apr 11. 2022

비비디 바비디 부!

주문을 외우는 마음으로 즐겁게

다시 안경이 쓰고 싶어졌다. 국민학교 때 친구들이 안경 쓴 게 부러워 일부러 어두운 데서 책도 보고, TV도 코앞에 바짝 붙어서 본 노력(?) 끝에 엄마한테 등짝 맞아가며 맞췄던 안경을. 라식 수술을 한 다음날 눈뜨자마자 벽에 걸린 시곗바늘이 보인다며 환호했던 경험이 무색하게 만드는, 안경 말이다.

    

날카로워 보이는 금테는 안 된다. 까만색에, 두꺼우면서, 표면에 약간 광이 나는 일명 ‘고시생 뿔테 안경’이면 좋겠는데. 하지만 집을 다 뒤져도 보이는 거라곤 둘리 친구 마이콜이 쓰던 것처럼, 큰 얼굴의 여백을 더욱 강조하며, 눈을 치켜뜨면 알 없는 세상이 바로 보이는, 유행 지난 선글라스만 서랍 속에서 뒹굴고 있었다.

     

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다. 집에 남아도는 안경이 있냐고. 언니는 영문도 모른 채 내가 갖고 있는 것만큼이나 오래되어 보이는 안경 후보 몇 개를 사진으로 보내줬다. 그중에 내 눈길을 잡은 것이 있었으니, 언니 말에 따르면 옛날에 옷을 사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것 같다는 선글라스였다. 


역시나 다리에는 희미하게라도 알아볼 법한 회사 이름도, 메이드 인 OOO이라는 글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끼면 오른쪽 알이 툭 떨어져 양쪽 세상의 밝기가 다르게 보이는 안경테.


    

‘앗싸, 바로 이거야!’ 반가워하는 내게 조카는 “이모, 요새 이런 거 얼마 안 줘도 살 수 있는데....”라고 했다. 나는 나머지 왼쪽 알을 힘주어 빼면서 조카를 향해 웃어주었다. 쓸 만한 물건은 웬만하면 버리지 않는 것이 좋고, 집 근처 도서관에서 하는 글쓰기 줌 수업에서 얼굴이 어느 정도 가려지는 정도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썼더니 식구들 반응도 괜찮았다. 내가 보기에도 어색하지 않았다.     


집에 와서 안경을 쓰고 거울을 봤다. 원래의 목적대로 적당히 얼굴을 가려주었다. 유행 지난 큰 테 안경이지만 그게 더 맘에 들었다. 다시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왠지 작가처럼 보이게도 해 주는 것 같았다. 글쓰기 수업에는 여러모로 적당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책이 있다. 김은경 작가의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글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작가는 '글을 쓰기 전에 빙의하는 과정을 가지'라고 했다. 단어가 다소 무섭지만 아마도 쓰고 싶은 글의 분위기에 맞게 주변을 꾸미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작가가 되었다고 상상하라는 의미겠지. 또 쓰고 싶은 글을 즐겁게, 마음껏 쓰면서 작가라는 느낌을 '만끽'하라고도 했다. 그만큼 글 쓰는 일에 푹 빠져서 오감을 열고 읽고 쓰는 일을 즐기라고.


‘나도 이 안경을 쓰고 글을 쓰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쓴 글을 무려 39번이나 고쳤다는 헤밍웨이가 안경을 끼고 퇴고에 몰두해 있던 사진이 생각나서 슬며시 웃음이 났다. 안경 하나로 작가가 될 수는 없지만 작가가 되어 안경을 쓰고 글을 쓰는 일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무언가가 되기 위해 의식적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러나 늘 일기를 써 왔다. 그 오랜 습관이 나를 ‘작가의 시간’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마법을 부려 주길 바라며 오늘도 ‘작가 안경’을 끼고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눌렀다.


비비디 바비디 부! 를 외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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