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를 깨운 건 난쟁이들이었다
우울증은 현대인에게는 감기와 같은 흔한 증상이라고 들었다. 내가 마음의 감기를 인지한 건 하고 싶었던 대학공부를 하면서였다. 회사를 다닐수록 느껴지는 학력에 대한 무시에,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공부를 시작했다. 진학하고 싶었던 심리학 분야를 공부하며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십 대 초반에 인지했던 마음의 감기는 그림자가 되어 내 마음에 해가 잠시라도 질 때면 나를 온몸으로 감쌌다.
그때에는 심각하다고 느끼지를 못했었다. 길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서야 나의 상태를 확인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하며 의사 선생님께서는 병원을 하나 추천해주고 싶다며 정신의학과를 알려주셨다.
기우일 수 있으나 짧게 본 몇 분 사이에 한 번 방문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정신의학과를 찾았고 나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한 걸 알았다. 이십 대 중반, 의사 선생님께서는 어린 나이에 많은 일들을 겪고 무너져가고 있음을 알려주셨다.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을 해보라고 말씀하셨고 그 내려놓음이 독립이었다. 이미 찢어진 가족사진을 내가 붙일 수 있을 거라고 몇 년을 붙잡고 있었다. 계속 붙이던 가족사진은 더 이상 붙을 수 없는 작은 조각이란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찢어진 사진을 계속 붙여보려 했고 그 시간 속에 내가 찢어지는 건 보지 못했다. 이젠 놓아야 할 때라고 내가 이곳에 없어야 모두 자립할 힘이 생길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살기 위해 나온 난 가족들에게는 배신자가 되었다.
집에서 독립하면서 가족들의 원망은 커졌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노력했음에도 받는 원망에 난 오로지 혼자가 되었다. 응급실에 실려가도 오지 않는 가족들은 생일에도, 명절에도 나를 찾지 않았다. 먼저 연락을 해도 냉담했다. 그때부터 혼자가 편하다며 울타리를 만들어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런 높은 울타리를 넘어온 사람이 있었다. 아무도 넘어오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울타리를 넘어 내가 아프면 달려오는 사람이었다. 사람에게 많이 상처받고 믿음을 잃었던 내게 다시금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상처를 말하지 않으려는 내게 혼자 참아온 힘듦을 기대도 된다는 사람은 처음이었고 많은걸 보여줬다.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에 감사했다. 내 약점을 모두 알아 날 피투성이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일 줄 모르고 말이다.
가족들 대신 옆을 지키겠다는 사람은, 가장 가까이에서 칼을 꽂고 떠나갔다. 나를 쫓아오며
"네가 정신병 있는 사람이라 네 주변 사람들이 너를 싫어하는 거다. 네가 힘든 게 아니고 너랑 가족이란 사람들이 힘들고 불쌍한 거다. 너랑 가족이란 게 수치스러울 거다" 모든 걸 지워버려도 이 마지막은 잊히지 않는다. 내가 가족을 놓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또다시 혼자이고 싶지 않았기에. 독이든 사과인걸 알면서도 난 계속 사과를 베어 물며 그 사람 옆에 있었고 결국 끝은 처참했다.
마지막까지 독이든 사과를 다 먹어 깨어나지 않으면 하고 바라었다.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삶을 사는 건지 방법을 몰랐다. 빛이 들지 않던 우리 집 반지하는 나 하나쯤은 세상에서 없어져도 모르게 고요했다. 며칠씩 잠에 빠졌다. 현실을 잊고 싶은 사람처럼. 반지하 안에서는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아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어 좋았다. 그렇게 세상에서 내가 잊히길 바랬다.
아무도 나를 걱정하지 않는다 생각했던 때 내가 먹은 독사과를 뱉어내게 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계속 내 옆에 있었는데 사람을 의지하면 또 상처받을까 봐 괜찮은 척해왔던 나를 발견해준 사람들. 독사과를 뱉게 한건 왕자가 아닌 친구인 난쟁이들이었다. 혼자 아파 응급실을 가는 게 일상인 내게 하루만 연락이 되지 않음 찾아왔고, 밥도 안 먹고 잠만 자는 나를 밥심이라며 입에 무엇이든 넣어주었다. 세상은 넓고 아름답다며 어디든 끌고 가 주었다. 세상일이 별거 아니라며 그렇게 옆에 있어주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닫힌 문은 또다시 사람으로 열려갔다. 가족도 연인도 아닌 사람들이 가족보다 연인보다 더 걱정해주고 힘을 주었다.
목에 걸려있던 독이든 사과 조각들이 하나씩 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