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회사였고 삶이었다.
나의 이십 대 초반은 어둠이었다 그때 멀리서 따뜻한 햇살처럼 손 내밀어준 이들이 나타났다.
회사에 입사하고 혼자였던 내게 사회와 나란 사람을 알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
아직도 종종 그날을 같이 회상하곤 한다. 다른 지점이었지만, 내 다음으로 들어온 유일한 20대의 언니가
나처럼 모든 것이 낯설거라 생각했다. 언니를 처음 만난 건 직원들끼리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모임이 끝나고 가는 길 한참 고민을 하다 길을 되돌아가서 언니를 붙잡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편하게 물어보시라고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보다 6살 많은 언니가 사회초년생인 나보다 아는 게 훨씬 많을 거란 생각을 그땐 하지 못했고 그저 나처럼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만 했다. 언니는 앳된 사람이 그 말을 해주러 돌아온 게 너무 고마웠다고 우리의 처음을 종종 이야기한다. 언니에게 도움이 되고자 말을 걸었던 그날 덕분에 난 회사에서 햇살을 만나 많은 걸 배웠다.
언니는 내가 불합리한 처우를 받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도 못한 채 지내는 걸 알고 많이 놀랐고, 어려도 사회에선 같이 일하는 입장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당연함을 끊임없이 알려줬다. 언니는 좋은 대학을 나왔음에도 나를 학력으로 무시하는 일이 없었고, 회사에 입사를 먼저 했으니 선배라고 이야기해주며 뒤에 입사하는 신입들에게도 그런 인식을 심어주었다. 혼자였던 회사생활에 동료가 생겼고 동료로 존중받은 처음이었다.
바람을 견디기 위해 꽁꽁 싸맸던 방어막이 햇살을 만나 한 곁 벗겨졌다.
그렇게 조금씩 아닌 것에 아니라고 할 수 있게 되고, 업무적인 문제가 아닌 것들로 핍박받을 때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이후 다른 지점으로 인사이동하게 된 난 또 다른 햇살을 만났다. 새로운 지점에서는 직급으로 사람을 무시하지 않은 분들이 계셨고, 모두가 무시하는 곳에서만 일을 하던 나는 처음으로 아닌 사람들 속에 근무하며 제대로 일을 배워갔다. 내 이름으로 일을 하고 싶었는데 늘 다른 사람의 업무를 대신해주던 내게 내 이름으로 사업을 맡고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도록 지지해주시는 분들이었다. 나이가 어리고 직급 때문에 반대하는 팀장과 몇몇 사람들에게 우선 맡겨보자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내겐 너무 감사했다. 잘 해내고 싶었다. 잘하는 걸 보여줘서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근무했다. 그런 마음속에 이 악물고 더 열심히 하려 노력했다. 더 한 시간을 겪어왔기에 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때 유독 나를 챙겨주시던 언니는 너무 모든 걸 견딜 필요는 없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참으란 말만 듣던 내게 처음이었고 눈물이 났다. 내가 많이 힘들었구나를 받아들였다. 나의 힘듦을 받아들이면 혼자인 나는 버텨내지 못할걸 알아 외면해왔는데 혼자가 아니라고 해주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매서운 바람들에 몇 년간 싸맸던 방어막은 따뜻한 햇살들에 녹아내려갔다.
내 아픔은 나도 보기가 어려웠는데, 그걸 들여다보고 먼저 꺼내 준 사람들.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어린 나이의 나를 걱정해줬던 햇살들이었다.
회사에서 나의 사적인 부분까지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생길 거란 기대하지 않았는데, 연말과 명절에 혼자일걸 아는 내게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준 사람들. 내가 사랑에 목말라 잘못된 선택을 할 때면,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려줬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기엔 예쁜 시간들이라고 가족이고 연인이라도 네게 상처 주는 사람들을 위해 애쓰지 말라고 말해줬다.
너를 진정으로 생각해줄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며 힘을 키워주셨다.
스물 이후 혼자라는 걸 알게 되며 살아온 시간에, 가족이 아닌 이들에게 많은 걸 배우고
가족이라고 온전히 내편이 아닐 수 있고 남이어도 내 편일 수 있음을 느꼈다. 어른으로 살아가는 법을 맨땅에 헤딩으로 피 흘리며 혼자 깨달을 때 어느새 내 주변엔 피를 닦아주고 손잡아주는 이들이 소중하게 나타났다.
처음 받아보는 것들에 감사함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내게 늘, 또 다른 나와 같은 사람에게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어주면 된다고 말씀해주셨던 분들. 사회에 어른으로 닮아가고 싶었던 사람들을 회사 생활하며 두 번째로 만났다. 봄이 끝난 뒤에 내겐 겨울뿐이었는데 이런 분들이 계신다는 것에 감사했다. 내가 힘들 때 늘 나타나 주셔서 신기했던 소중한 햇살들. 감동은 계획할 순 있지만, 위로는 순간이라며 나의 순간을 지켜준 사람들. 살아가는 걸 포기한 순간에 그 햇살들 덕분에 나는 싹틀 준비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