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은 피어날 때를 알고 있었다
눈이 녹으면 봄이 된다고, 나는 나의 눈이 녹을 날을 기다렸다.
마음에 씨앗은 햇살을 받아 오랜 시간 잠들어있다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싹이 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암흑을 견딘 만큼 나는 선배가 되면 다른 이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동료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회사는 근무해온 7년의 시간 중 가장 바쁜 시기였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던 2년 우린 이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했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많은 동료들이 애썼다. 물리적으로 힘들었지만 이때만큼 정신적으로 단합된 때는 없었다. 이 시기에 내가 근무했던 팀은 신입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새벽까지 일을 하면서 욕을 먹는 동료들이 안쓰러웠다. 직원들은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새벽과 주말에도 출근하며, 몇 달일 줄 알았던 시기는 오랜 시간으로 이어졌다. 모든 사람들을 지원하고 싶었으나 우린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회사가 재택근무를 하는 시기에도 최전방에서 사람들을 대면 지원하며 노력했지만, 지원받지 못하는 이들의 폭언과 항의는 심해져갔다.
회사에 들어온 지 7년이 지났어도 변함없는 회사는 직원들의 고통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많은 활동을 했는데 달라진 건 없었고, 그저 후배들의 힘듦을 들으며 그들의 모습에서 신입 때의 내가 보여 미안함 뿐이었다.
난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깨 드리진 못해도 바위의 한 부분이라도 물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받았던 햇살을 지금 옆에 있는 후배들에게 나눠줄 때라 생각했다. 고객의 와서 폭언, 폭설을 해도 외면받던 내 신입시절을 생각하며, 후배들을 외면하지 않으려 애썼다. 후배들을 보면 20살의 내가 보였다.
후배들에게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누구라도 옆에 있어주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같이 일한다는 생각을 갖고 일한 시기였다. 여느 때처럼 고객이 항의를 하고 있었고 내가 대응하고 있었다. 그때 후배 한 명이 큰소리가 나자 내게 질문이 있다며 다가왔다. 고객의 항의는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다른 후배가 나를 찾는 전화가 있다며 또 다가왔다. 내 주변에 사람이 많아지자 고객은 목소리를 낮췄고 알겠다며 돌아갔다. 후배들에게 질문과 전화 내용을 알려달라 했는데 후배들은 그런 건 없었다며, 내가 위험해 보여 온 것이라 말했다. 오래된 연차라 내가 걱정돼서 와주었다는 말이 낯설었고 그 뒤엔 고마움이 크게 따랐다. 상사에게 받지 못했던 동료애를 후배들에게 받았다. 후배들을 위해 좀 더 애쓰고 싶었고 내 몸의 신호들을 무시한 채 노력했다.
늘 그렇듯 그날도 지원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항의에 후배들이 시달리고 있었다. 난 후배들을 대신해 이유를 다시 설명했다. 고객은 나이 어려 보이는 내가 설명을 하니 직책부터 연차까지 물어봤고, 더 이상 그 부분으로 할 말이 없었는지 지원이 되지 않는 것에 계속 항의하며 직원들에게 심한 말과 함께 나에게 달려드려 했다. 내 머릿속에 무언가 끊어지는 기분이 들며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왜 우리 직원들에게 이렇게 함부로 대하세요. 우리 2년간 노력해왔어요" 하고 눈물과 함께 토해냈다.
고객은 울면 다 해결되냐면서 더욱 화를 냈고 난 후배들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 게 창피했다.
그렇게 한번 시작된 눈물이 3시간이든 4시간이든 마음대로 끝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면 숨이 쉬어지지 않는 증상과 함께. 병원에선 내게 공황장애라고 말했다. 회사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들어오면 나를 공격할까 봐 늘 불안했다. 숨 쉬는 것도 어려워지는 상황이 빈번한 게 나타났다. 일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 팀장님에게 이런 나의 상황을 알렸다. 며칠 지나지 않아 일을 거의 하지 않던 직원은 바쁜 시기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며 휴직을 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업무를 대신해달라고 팀장은 말했다. 업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퇴사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내게 팀장은 퇴사를 확정해도 2주 정도의 시간이 있으니 그 2주간 업무를 대신해달라고 말했고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난 팀장님과 20살 때 같이 근무한 적이 있었고 이 팀에서 누구보다 팀장님을 많이 도우려 했다고 생각했다. 다른 팀원이 무리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였으니. 난 나를 지키지 못하고 있었고, 내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나의 생계는 내가 책임져야 했고 도와줄 가족이 없던 난 퇴사를 하지 못하고 병가에 들어갔다.
힘든 시기에 원망받을 거란 생각에 병가가 아닌 퇴사를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놓일 때면 두려움은 거대했고, 울음이 시작되면 끝나지 않는 증상은 다른 일을 구할 수 없는 상태로 나를 내몰았다. 9년간의 삶이 한 번에 쓰나미가 되어 나를 덮쳤다. 난 점점 더 곪아갔다.
그때, 9년간 직장생활을 같이 한 친한 동료가 찾아왔다. 사람을 안 만나던 때에 날 응원해줄 거란 생각으로 나간 자리는 나를 원망하는 자리가 되었다.
동료는 회사에 안 좋은 일을 누군가 외부에 신고하여 회사 분위기가 안 좋다고 말하며 신고자가 나라는 소문이 있는데 정말 내가 한 일인지 물었다. 소문의 근원지는 몇 번 보지 않은 사람의 말이었고 난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동료는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실망했다는 말만 했다. 9년을 직장동료 이상의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맞는 건지 서러움에 온몸에 힘이 풀렸다.
난 하루빨리 회사를 돌아가야 이상한 소문들이 멈출 거라 생각했지만, 몸은 더 안 좋아졌다. 다시 돌아갔을 때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버텨낼 수 있을까 걱정하는 내게 자신이 옆에 있다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상처 주고 떠나갔어도 자신은 그저 옆에 있겠다고 말해줬다. 힘들면 같은 자리에 서있을 거니깐 언제든 돌아와도 된다고 안아주었다. 내가 눈물 흘릴 때 같이 울어주던 사람은 이젠 그만 아파하자고 말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오랫동안 겨울이 왔던 거라고 했다. 이젠 자신과 함께 봄으로 나가자고 손잡아줬다.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말고, 스스로에게 집중해서 일해보라고 후회하지 않게 하고 싶은 마무리를 하라는 격려에 한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