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쥐는 콩쥐가 부러웠을까

도망치지 않을 결심

by 굳이

점점 난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이 불합리한지 모르는 시간들에 익숙해져 갔다.


커피를 타고 파쇄를 하는 잡무부터 한 명 한 명의 사업을 보조했다.

내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음에 좌절했다. 보조업무의 부분은 어디까지인지 경계가 없었고

개개인의 비서 역할을 하며 근무했다. 시키는 일은 다했었다. 거절하는 법을, 내 권리를 찾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무조건 시키면 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배웠다. 현대판 콩쥐였다.


어렸던 난 우리 직급들이 받는 처우가 이해되지 않았다. 나를 제외한 같은 직급 동료들은 윗 직급들과 학력의 차이도 없었다. 그럼에도, 업무뿐 아니라 인격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는 것들이 많이 느껴졌다. 그런데 누구 하나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내가 속한 직급은 정규직이지만 위로 진급하기에 너무 오래 걸렸고,

10년째 같은 직급의 동료들을 보며 불합리함이 이해가지 않았다. 우리도 목소리를 내자고 이야기했지만 몇 년째 이렇게 지내온 동료들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무엇이든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업무제안부터 이사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했다. 그럴 때마다 듣는 말은 '아직 젊어서 사회를 모르네'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면 약한 위치의 목소리도 들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생각이 사회를 모르는 패기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노력하면 바뀐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같은 직급의 사람들을 모아 공청회를 준비했다.


그날, 처참하게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밟혔다. 공청회를 다녀온 날 기차역에서 두 시간을 서럽게 울었다.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고 진행한 줄 알았던 공청회에 대한 기대는 시작과 함께 부서졌다.

"윗 직급들보다 능력이 안 되는 건 알고 계시죠"로 시작하는 말 뒤로 이어지는 말들은 하나하나 절망이었다.

10년을 같은 직급에서 일한 직원의 업무 숙련도를 존중해주는 이는 없었고, 당연히 처우개선에도 관심 없었다. 회사에서 목소리 내는 게 두려워졌다. 불합리함을 참아내는 모습이 이해가지 않았는데 나 또한 불합리하다는 걸 외면하며 살게 되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사회생활에 적응해가는 거라고 말했다.

나는 새장 속에 갇힌 새가 되어갔다.

새장에 갇힌 새는 갇힌 곳이 당연해져 문을 열어줘도 밖에 나가지 못한다고 한다.

무시가 당연한 삶이 되었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로 그 사람들의 업무를 대신해주는 게 익숙했다.

나도 내 이름으로 일하고 싶었다. 매년 많은 업무를 했지만 성과보고서에 쓰게 되는 건 잡무뿐이었다.

이게 악순환의 근원인걸 알았다. 승진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구조에 갇혀 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업무를 대신하거나, 정리해서 가져다주는 걸 좋아했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은 나이 어리고 고졸인 내가 업무를 대신하는걸 자존심 상해했다. 이도 저도 못하는 틈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새로운 팀장은 내게 잦은 문제가 발생하는 팀원의 업무를 봐주라고 했다.

계속되는 문제에 조금씩 보조해주던 업무는 어느새 전체를 대신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그 사람은 내가 업무를 대신해주는 걸 자존심 상해했고 업무적으로 나를 무시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객들도 있는 사무실에서 그 팀원은 내게 고함을 질렀다. 별것 아닌 일이었다.

그 팀원은 공용 USB를 사용하다 고장이 났다고 내게 이야기했다. 나는 다른 팀원이 사용해야 하니 본사에 요청해 새로운 USB 인가를 받아야 한다고 알려줬다. 회사 내부망에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런 잡무는 나의 일이라며 본인이 그런 일을 왜 해야 하냐고 모두가 있는 상황에서 소리쳤다.

나는 같은 동료가 아니라는 걸, 존중받지 못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나보다 14살이 많은 어른이기에 참아왔던 것들이 쏟아졌다. 팀장님은 미안하다며 고객이 나간 뒤에 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그때 이야기해보라고 하셨다. 그만둘 마음을 먹고 팀원에게 "이제 회사를 그만둘 거니 그동안만이라도 저를 괴롭히지 말아 달라. 저도 다른 사람 이름으로 회사에서 살고 싶지 않다"라고 절규하듯 말했다. 나보다 어른에게 이렇게 말을 한 게 처음이었다. 회사에서 난 한 명의 직원이 아닌 도구였다. 자신들의 입맛에 기분에 맞춰 쓰는 도구.


이 일로 회사를 그만둘 마음을 확신하고 의사를 전했다. 윗사람들은 퇴사를 말리면서 어린 나이에 입사해 일 잘하는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그만두는 것은 아깝다고 말했다.


며칠을 생각했다. 과연 이들은 내가 부러웠을까.

윗사람들이 말을 듣고 난 도망가지 않기로 했다.

지금 이대로 그만두는 건 억울하다고,

나의 결심으로 내가 원할 때 나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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