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은 일어나지 않는다
팀은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당분간 팀장님이 공석이 되셨다. 업무는 수행해야 하는데 팀장은 공석이고 팀원들은 정신적 충격이 크다는 이유로 일을 더 하지 않았다. 그 속에서 일에 대한 요청은 내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팀원들은 휴직 및 인사발령을 원했다. 사람들은 하루빨리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어 했고 떠나갔다.
나도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팀장님이 항상 이야기해주셨던 나와 동갑인 따님을 장례식장에서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팀장님이 회사에서 얼마나 좋은 상사였는지를 잘 전달하고 그만두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팀장님의 짐 정리도 정신적 충격으로 만지지 못하겠다는 팀원들 속에 하나하나 정리하며 참 많이 울었다. 당장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사람의 체온이 느껴졌다. 사실 더 많은 기억들이 있을 텐데 이때의 일을 기억하려 하면 옛날 영화처럼 부분 부분 끊겨서 필름이 돌아가는 것 같다.
너무 아픈 기억을 지워내서 버티기 위함이었을까.
팀장님이 얼마나 좋은 상사였고, 어른이셨는지 내가 담을 수 있는 마음을 담아 따님에게 전달했고
팀장님께 직접 전달하지 못한 감사함을 이렇게라도 대신했다.
애도를 다 표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시련은 야속하게 기다려주지 않고 다시 찾아왔다.
부모님의 잦은 다툼과 무거운 공기는 몇 년간 이어졌고 그 속에서 나의 책임은 더욱 커져갔다.
부모님의 다툼은 팀장님의 일을 겪은 내게 너무 큰 두려움이었다.
또 소중한 누군가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매일 밤 온몸을 덮었다.
중학생인 동생에게 어른인 척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하고서는
두 분의 다툼 후에 엄마가 집에서 나갈 때면 집 밖을 나가 새벽까지 엄마를 찾아다녔다.
매일 밤 엄마랑 아빠가 다투고 엄마가 집을 나가면 돌아오지 않을까 봐 밤새 다투는 소리를 듣고 방문 앞에
쪼그려 앉아 엄마가 나가는지 기다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 나는 어른이었지만 아이였다.
난 이 모든 게 금전적인 것 때문이라 생각했고 내가 돈을 벌면 우리 가족을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린 동생에게 괜찮다고 했던 말은 스스로에게 했던 말이었다. 무서웠고 모든 게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벅찼다. 아이로 살아온 시간이 어른으로 지낸 몇 달보다 훨씬 긴 내게 준비할 새 없이 세상은 어른의 역할을 하라고 했다.
집에선 늘 마음 졸이고 회사에선 업무를 거부하는 팀원들 속에 내몰리듯 바쁜 시간에 살았다.
하루는 사업을 위탁 준 업체에 점검이 필요하여 혼자 첫 외근을 갔다. 담당자도 없이 혼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드러나지지 않으려 애썼다. 조금이라도 나이 들어 보이기 위해 앞머리를 넘기고 화장을 하며 아끼는 옷을 입고 여러 번 내용을 숙지하고 출근했던 날. 지금 생각하면 누가 봐도 어린 학생의 모습을 한채, 점검 장소에 도착한 나를 업체에서는 수강생으로 알았고 회사 직원인걸 소개하자 당황과 동시에 점검 장소로 안내해주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수강생들이 실제 신청자와 동일인인지 확인을 하게 되었고, 그때 우리 아버지와 같은 나이의 아저씨 한분께서 30명 정도의 수강생들 사이에서 욕설과 함께
'직원 맞냐, 어려 보이는데 너 따위가 뭐라고 날 확인하냐, 확인하게 너도 신분증 내놓아라'
뒤에서 위탁업체 직원들은 안절부절못하며 같이 설명했고 난 사원증을 목에 빼서 보여주며 꿋꿋이 모든 점검을 마치고 나왔다. 죄송하다는 위탁업체 직원들의 말씀에 괜찮다고 웃으며 몇 발자국 가지 못해 힘이 풀려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엉엉 울고 있던 곳은 전자기기 판매 업체 앞이었고 착한 직원분들이 나오셔서
"학생 왜 울어요? 어디 아파요??"라고 말씀하셨다. 감사한 분들의 위로였지만
"저 학생처럼 보이세요..? 직장인인데... 노력했는데" 하며 흐느껴 울었다.
그분들은 미안하다며 따뜻한 믹스커피 한잔을 뽑아와 내 손에 쥐어주시며 어쩔 줄 몰라하셨다.
모든 게 너무 버거웠다. 버텨내려 애를 쓰고 있는데 세상은 내가 버티는 게 보기 싫은 것 같은 하루하루였다.
어른으로 보이려고 노력하는 나를 비웃듯 세상은 내게 어른의 의무를 다하게 하며 아이처럼 대했다.
상황은 나를 신데렐라로 만들었지만, 내겐 나를 변신시켜줄 유리구두도 요정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