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의 봄

봄이 있었기에 겨울은 생겨난다

by 굳이

"굳이씨 집 부자예요"


3개월 만에 나와 같은 직급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발령이 났다.

첫날 사무실 문을 열 때 환했던 형광등 빛과 내 자리가 있다는 것에 마냥 설렜던 시작이었다.


그렇게 40대가 주인 사무실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업무적인 무시는 처음부터 시작되었고 모든 베이스에 난 틀린 사람이었다. 모두가 내가 틀렸다고 했기에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일에 대한 자신감을 쌓지 못한 채 한없이 작아졌다.


팀원들은 내가 본인들 속도보다 빠르게 일을 하면 맞게 한 거냐고 의심했고, 본인이 처리한 내용과 다르면 무조건 내가 ‘틀렸다’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 내가 업무를 잘 처리하면 모두 그들의 공이 되었다. 난 내 이름으로 일할수 없었다.

한 번은 같은 업무를 팀원의 이름으로 나와 팀원이 수행했는데 같은 프로젝트에 서로 다른 결과가 있자 본사에서 연락이 왔다. 팀원은 내 자리로 다가와서는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비교해보자가 아닌 ‘네가 틀린 자료를 보내서 내 이름에 먹칠이 됐다. 생각이 있는 거냐 고졸이라 일을 못하는 거냐’라는 고함을 쳤다.


그래서 난 데이터 근거를 보여줬고 결국 내가 근거한 데이터가 가장 최근이고, 팀원은 작년 기준으로 확인한 게 밝혀졌다. 팀원은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사과하지 않았다. 그때 나를 위로해주신 건 팀장님이셨다. 얼어붙은 내 마음에 작은 성냥 하나가 생기며 온기가 지펴졌다. 온기는 짧았고, 근무를 할수록 이런 상황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며 점점 마음이 얼어갔다.


업무 외적으로도 견디기 힘든 상황들이 자주 발생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점심시간,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팀원 한 명이 "집에 돈이 없어서 대학을 못 갔어요? 부모님이 보내주실 형편이 안되나?"라는 말을 했다. 말을 던진 후, 그 말에 나는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아무렇치 않게 밥을 먹었다.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면 눈물을 보일 것 같았고, 눈물을 흘리면 지는 것 같은 기분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맨밥만 펐다. 그때, 내 머리 위로 팀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굳이씨 집 부자예요" 너무 어색한 문장이었다. 모두가 거짓말임을 알았겠지만 내겐 진실보다 따뜻한 위로였다. 밥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을 감추며 맨밥을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팀장님은 내게 사적인 이야기를 물어보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시지만 나를 위해 거짓말을 해주셨다. 마음속에 다시 불이 지펴졌다. 그 따스한 불빛에 얼어붙은 손을 내밀었다.


19살까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내 삶은 이렇게 사회에선 부족함 투성이었다. 내가 꿈꿔온 사회 속 어른과 다른 어른들의 모습에 실망했다. 나도 이런 어른이 되는 걸까 하는 생각에 무섭던 시간들이었다.

그 속에 팀장님은 내게 봄이셨다. 팀장님께 의지를 많이 하며 업무를 했었다.

젊은 나이에 여자 팀장님이 많지 않았고, 우리 엄마와 또래인 팀장님껜 나와 같은 나이의 딸이 있다고 하셨다. 팀장님을 팀원들이 잘 따르지 않았다. 무슨 소문이 있던 이유가 있던 내겐 일 잘하는 능력 있는 팀장이셨다. 누구보다 많이 일하시고 팀원들과 마찰이 있지 않도록 조심하시는 분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고졸이고 어리다는 이유로 누군가 무시할 때면 나서서 도와주셨다. 팀장님께 참 감사했고 내가 생각해온 사회의 어른을 만난 처음이었다. 모든 게 서툴렀지만 팀장님께 도움이 되고자 다른 팀원들이 하지 않는 일들도 팀장님과 둘이서 해냈다.


하루는 팀장님께선 출장을 나서시며, 내게 꼭 점심 챙겨 먹으라고 당부하셨다.

팀장님이 없으시면 밥을 잘 먹지 않는 나를 아시고 말씀해주신 게 느껴졌다.

그 말씀 뒤에 내게 돈가스를 좋아하냐고 물어보셨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고 물어봐주는 이가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좋아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어른답게 일 잘하는 내가 대견하다며 딸도 돈가스를 좋아하니 조만간 셋이 같이 먹자는 말씀을 하셨다. 회사에서 받는 인정이 처음이었던 난 출장 조심히 다녀오시라고 웃으며 인사했다. 다시금 성냥이 지펴졌다. 따뜻했다. 오래오래 이 따뜻함을 갖고 싶었다.


다음날 팀장님께서 아무런 연락도 없이 출근을 하지 않으셨다. 그럴 분이 아니었기에 걱정하는 나와 다르게 무슨 일이 있나 보지라는 팀원들의 모습에 괜한 기우인가 하며 점심시간 12시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울렸다. 이상하게 그전화를 받지 못하고 한참 보고만 있었다. 온몸에서 그 전화를 받지 말라고 말렸다. 다른 직원에게 전화가 넘어갔고 점심시간으로 조용한 사무실에 수화기 너머로 팀장님의 부고 소식이 들렸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최근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팀장님 모습에 괜찮으신지 물어보지 못한 나를 탓했다. 소식은 순식간에 퍼졌고 여기저기에서 전화가 왔다. 우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게 울지 말고 상황 설명하라는 회사 사람들의 다그침에도 난 눈물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나의 봄은 너무 짧게 끝났다.

내가 아는 분의 죽음을 직접 경험한 처음이었다.

경찰분들은 마지막 목격자가 나라고 말했다.

따님이 마지막 목격자였음 좋았을걸 하는 마음과 그날 점심이라도 드시고 가시라할걸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난 그렇게 장례식장에서도 눈물만 흘렸다. 같은 팀원인 사람이 밥을 두 공기나 먹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하는 걸 보며 사람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그 이후 내게 이상 증상들이 나타났다. 집을 찾아가지 못하고, 회사를 찾아가지 못하고 내가 어디를 가려고 한 건지 기억하지 못했다. 꿈속에서 팀장님이 자주 나오셨고 아닌 날에는 엄마가 돌아가시는 꿈을 꿨다. 3개월간 회사와 집 외에는 외부로의 모든 걸 끊어냈다. 친구들은 걱정을 하며 집 문 앞에 쪽지를 붙여두고 갔다. 쪽지가 문 앞에 여러 개 쌓이는 걸 보며 부모님은 언제까지 힘들어할 거냐고 그만하라고 말씀하셨다. 힘듦을 그만두는 방법이 있다면 그만하고 싶었다.


내 마음에 지펴진 온기는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너무나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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