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북

(추천노래 : 바람_최유리)

by 굳이

어릴 때 가장 컸던

스케치북은 이불이었다

이불 속에 들어가 나만의 공간이라며

신나게 맘껏 상상했다


가끔 마법사가 되기도

공룡과 친구가 되기도

세상의 주인공이 되기도

어떤 꿈을 그려도 되는 곳


어른이 되니 이불속은

슬플 때 들어가는 곳이 되었다


소리 내어 울고 싶은데

갈 곳이 없었다


울음소리가 아무한테도 들리지 않길

속상한 마음을 아무도 모르길

숨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 안의 어둠이

무서웠다 숨이 막혔다


당장이라도 걷어내고 싶지만

걷어 낼 용기도 없어


스케치북을 까맣게 칠하고 나서야

나올 수 있었다


까매진 스케치북이

마르면

안 보이던 하얀 별이 보인다


모두 말라 하얀 도화지로

돌아오면

다시 꿈을 그려봐야지


-이십삼 이월 초, 스케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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