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초의 강연을 마치고
제목 : 꿈키움 아카데미 : 게임 개발자의 "REAL LIFE"
일시 : 2020년 08월 14일
장소 : 충주 국원고등학교 소강당
한창 무더웠던 7월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한 CS 문의를 보게 되었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굉장히 어른스럽구나. 강사 섭외도 하고... 이름도 꿈키움 아카데미라니 대단한데?'라고 생각하며 다시 업무로 복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 진짜로 강연을 하게 되겠어?' 같은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다수 앞에서 강연해본 적도 없었거니와, 그럴만한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생각해 보면 어색하기는 했다. 남들 앞에서 발표 같은 것을 했던걸 되짚어 보면 군대 있을 때 조교로서 훈련병들 앞에서 훈련 내용을 교육했던 것, 대학교 때 조별과제 발표했던 것, 회사 팀원들 앞에서 작은 결과물을 설명했던 것이 전부였다.
아무튼 그러던 와중에 며칠이 지나고, 팀장님에게서 뜻밖의 메시지를 받았다.
혹시 국원고등학교에서 강연해주실 분 우리 팀원 중에 있을까요?
띠용? 이럴 수가. CS로 들어온 요청이 정식 요청이 되어 돌아오다니. 회사에서도 학생들의 요청을 진지하게 생각해서 요청을 받아주셨구나. 팀장님의 요청을 보고 생각해보니, 가서 고등학생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주면서 강연이라기보다는 놀고 온다는 생각으로 갔다 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흔쾌히 자원을 했다.
막상 지원은 했는데,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준비할 것도 많고 진지하게 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시간이 갈수록 부담감이 커졌다. 강연이 처음이라서 더 그런 것도 있지만, 사전 질문 리스트를 보니 고등학생 친구들의 질문의 수준이 생각보다 매우 높았고, 게임 개발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보였다. 이거 대충 하면 안 되겠구나. 그 친구들도 시간을 내서 내 강연을 들으러 오는 건데 1시간 동안 정말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들려주고 와야겠구나라고 반성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강연 전 일주일 동안 여름휴가를 낸 상태였기 때문에 여행을 갔다 와서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휴가 전 간단하게 사전 미팅을 마치고 어떻게 발표를 진행할지, 내용은 어떻게 구상할지를 대략적으로 스케치해두기로 했다. 질문 리스트를 카테고리로 나누니, 확실히 학생들은 '게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서 많이 궁금해하는 것을 알았다. 나도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게임을 즐기기만 할 줄 알았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코드 좀 짜고... 아트 좀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어리석고 짧은 생각만 가지고 있었을 뿐. 그다음으로 많이 나왔던 질문은 '게임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상은 어떤 것인가?'였다. 역시 고등학생들이라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부분도 확실히 챙겨야 한다는 다짐을 했다.
좋은 강의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 자료 수집도 하고, 팀원들 인터뷰도 하고, 예쁜 이미지들도 모으고 하다 보니 밤을 새울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어제 만들었던 내용을 다음날 읽어보면 엉터리인 점이 보여서 수정하고... 이뻤던 것 같은데 다시 보니 좀 별로인 것 같기도 하고 계속해서 아쉬운 점이 튀어나왔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에 계속해서 수정을 거듭하다 보니, 결국 발표 당일이 찾아왔다.
결전의 날.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마지막으로 준비물과 강의자료를 점검했다. (또 수정한 건 안 비밀...). 괜스레 내가 긴장이 돼서 더 떨렸다. 아무튼 차를 타고 충주로 출발.
2시간 반 정도 걸려 도착한 국원고등학교를 보니 옛날 생각도 나고 감회가 새로웠다. 대학교 이후로는 회사만 다녔다 보니 이런 감성을 잊어버리고 살았다는 게 조금은 서글펐다.
아무튼 도착하니 담당 선생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우선 소강당으로 짐을 정리하러 이동했는데, 댄스 동아리 학생들이 춤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댄스부 친구들이 춤 연습하는 게 추억 돋기도 하고 해서 잠시 지켜봤던 것 같다. 그때는 친구들이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이 먹고 보니 멋있기도 했지만 사실 그 모습이 귀여웠다. 그때 선생님들이 우리를 봤을 때 이런 느낌이었으려나.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다시 돌아오니, 우리를 초청해 주었던 학생 3명을 만날 수 있었다. 다 같이 인사를 하고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눠보니 쿠키런 오븐 브레이크가 출시될 때부터 게임을 즐겼다고 했다. 이런 친구들을 보면 괜스레 뿌듯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를 보고 너무 좋아하길래 속으로 좀 부끄러웠다. 내가 이렇게 까지 환대를 받을 만한 레벨은 아닌 것 같은데... 너무나도 감사했던 순간.
시간이 지나면서 약 30명의 학생들이 모두 도착을 하고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너무 진지하게 듣고 있길래 나름 웃음 포인트라고 생각했던 부분에서도 조용해서 더 긴장했던 것 같다. 먈도 꼬이는 것 같고 아이고 부끄러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인터뷰도 하고, 퀴즈도 풀고 하면서 조금은 분위기가 말랑해진 것 같다. 친구들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라도 더 듣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을 마지막에 가서야 느꼈다.
발표를 마치고 친구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고 나서 강연이 마무리되었다. 쿠폰과 미스터리 피규어를 열어보면서 꺅꺅 좋아하는 학생들을 보니 아까 강연할 때와는 사뭇 달라서 조금은 배신감(?)이 들었지만 그 모습들도 귀여웠다. 쿠폰을 더 달라는 학생도 있었고, 나와 같이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학생도 있어서 나로서도 기분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부족하게 준비하고, 부족한 강연이었지만 진지하게 들어주고 많은 것을 느꼈다고 말해준 학생들 덕분에 오히려 내가 많은 것을 얻어가는 것 같다. 내가 알려주러 갔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와 학생들 모두가 많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에 더 고차원적인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게임 산업 미래의 꿈나무들에게 조금이나마 방향성을 제시하고, 꿈을 잃지 않고 정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인생에 있어 큰 추억을 남기는 경험이었다.
즐거운 추억은 여운이 오래 남는다. 어제 강연을 마쳤지만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강연 사진을 하나씩 전부 훑어보았다. 내 강연을 들었던 친구들도 나처럼 여운이 많이 남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 강연을 위해 도움을 준 우리 팀원들, 같이 가주셨던 직원분들, 국원고 선생님들, 그리고 노잼 강연을 진지하고 즐겁게 들어준 국원고 학생 분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