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렉트로 꽂아버리는 솔직함
제목 : 글쎄 (Strong Words)
저자 : 딥박
링크 : http://www.yes24.com/Product/Goods/91332720?OzSrank=1
7월의 업무를 드디어 마무리하고, 8월 초에는 여행도 갈 겸 리프레시 휴가를 쓰기로 했다. 중학교 때 이후로 가보지 않았던 경주로 떠나는 짧은 여행은, 코로나로 답답했던 기분을 조금이나마 풀어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가지게 했다. 아무튼 여행 가는 기차 안에서 읽을 만한 간단하고 짧은 책이 없을까 찾기 위해 명동성당 1898 안에 있는 서점에 잠시 들렀다.
슬슬 둘러보던 중,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글쎄"
강렬하고 짧은 제목이 나도 모르게 눈길을 사로잡는다. 더욱 놀라웠던 점은 '글쎄'가 내가 생각하는 글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Strong Words"
그렇다. '글쎄...(Hmm)'이 아니라 '글이 쎈(Strong Words)'것이었다. 이 말장난 같은 엄청난 센스에 나도 모르게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원래 책의 내용을 슬슬 보고 고르는 편인데, 오랜만에 홀린 듯이 제목만 보고 책을 산 것 같다.
책은 작가의 평소 생각을 담은 짧은 시집 겸 에세이였다. 한 때 센스 있게 현실을 풍자했던 하상욱 시인의 시와 그 결을 같이하는 콘셉트였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편안하게 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제목만 보고 골랐지만 그게 신의 한 수였나? 아무튼 여행 당일 달리는 KTX에서 책을 처음으로 펼쳐 보았다.
이런 에세이를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었기에 읽을 때 느낌이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기존에 읽었던 책들은 내용에 집중해서 필요한 부분을 스크랩하고, 공감 가는 부분을 실천하려고 생각을 정리했었다. 감성보다는 이성에 기반한 독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글쎄'는 이성보다는 감성에 기반을 두고 읽어야 할 것 같다. 아니, 앞으로 시집이나 에세이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일 것 같고.
나는 문학과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시'에 대해 정확하게 정의를 내릴 자신이 없다. 다만, '시'라는 것이 어떤 현상이나 사건에 대해 저자 본인이 느끼는 감정과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짧고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이 시의 매력이라고 본다.
'글쎄'는 그런 점에서 시의 특성을 아주 잘 사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점을 근거를 바탕으로 조목조목 따지지 않는다.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툭툭 던진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직관적이고 꽤 아프다. 차가운 현실 속의 부조리함에 반박하고, 잊고 지냈던 감성을 되새기는 방식이 거칠고 직접적이다. 그걸로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반성할 거리를 준다. 사회, 독자, 본인 등 전방위적으로 모두를 깐다(?).
오히려 짧은 글로 던지는 글이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할게 더 많아졌다. 근거와 문장이 충분한 책은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위험이 있다. 내 생각보다는 저자의 생각에 이입해서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설득력보다는 공감에 초점을 맞춘 콘텐츠다. 공감은 그냥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생각하는 정답과 다를 수도 있다. 그냥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그렇게 느끼는 것'의 '그냥'을 채우기 위해서는 독자 스스로가 생각을 해야 한다. 그 빈부분에는 과연 나는 어떤 생각을 채워서 구체화시킬 것인가? 시집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와중에 뜨끔한 부분이 있었다.
책을 보면 시대를 알 수 있다.
지금 출판업계를 살펴보면
출간하는 사람은 늘어나고
읽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는 모양이다.
자기 말만 하고
듣지 않으며
보여 주기만 하고
들여다보지 않는 세상이
아주 잘 담겨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가장 많이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욕심만 있었지 남의 글을 자세히 읽어볼 생각은 진지하게 해보지 않은 것 같다. 내 주장만 이기적으로 하는 사람과 무엇이 다를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각자가 할 말은 하고 살고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당당하게 사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만큼 중요한 것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다. 내 말이 먹힌다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이 내 말을 잘 들어준다는 것일 테니.
이 책에서 찾았던 '그냥' 공감되는, 빈자리를 채워주는 좋은 내용이었다. 그저 콧바람 쐬러 나가는 경주여행에서 의미 있게 한자리를 차지하는 게 이 짤막한 글 한토막이라니. 책이 두껍고 내용이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에 더욱 공감이 되는 연휴였다.
시 또는 에세이는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책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한동안 피해왔었다. 그러나 이 짧은 글 모음에서 깊은 공감과 사색을 경험할 수 있었다. 자주는 아니겠지만 앞으로 삶이 힘들거나 무언가 위로를 받고 싶을 때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를 자주 찾게 될 것 같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다들 똑같이 힘들구나. 인생의 주인공은 나지만, 동료들이 있어야 주인공이 돋보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