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존엄사를 앞두고 있는 내가 오늘 쓰는 일기로 작문하시오
생이 너무 많이 남았다. 그건 태어난 지 육 개월이 되던 때부터 하던 생각이었다. 눈도 다 뜨지 못한 채로 엄마랑 헤어졌고, 높은 건물들 사이를 철창에 갇혀 이리저리 실려다녔다. ‘펫샵’, ‘애완견 분양’ 따위가 적힌 건물들을 돌아다녔지만, 어떤 건물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유전병이 있어서 안된다고 했었나. 결국, 도시를 한참동안 지나쳐 온 끝에 당신을 만날 수 있었다. 화순 어느 시장바닥에서. 철창 안을 몇 바퀴 돌다가 주저앉아 있던 나에게 당신은 헐레벌레 다가와 뽀삐야, 뽀삐야 거리며 철창 안으로 두 손가락을 조심스레 넣으려 했다. 당신 손가락의 떨림, 반쯤 지워진 보라색 꽃무늬 소매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 견생은 당신의 삶의 길이와 내 삶의 길이를 재고 또 재는 것뿐이었다. 인간의 나이로 칠십넷을 먹은 당신은 나와 죽음에 다가가는 속도가 비슷했다. 삼 년쯤 살 때까지는 그게 무서웠다. 당신이 죽으면 다시 철창 속으로 돌아갈 것만 같아서. 생각이 바뀐 건 네 번째 생일 즈음이었다. 너 오늘 생일이잖어. 읍내 멍멍샵 아줌마가 최고 좋은 거라 해서 사왔는데 입에 맞는지 모르겠네. 당신은 부엌 찬장 맨 윗칸에 있던 그릇을 꺼내 밥을 담아줬다. 당신도 한 번도 쓰지 않은 그릇이었던 것 같다. 그 날부터, 나와 당신의 남은 생을 비교하는 일을 멈추었다. 내 생이 당신보다 많이 남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당신은 약을 세 끼 챙겨 먹었다. 가끔은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며 팡팡 치기도 했다. 당신의 아들과 딸은 육 개월에 한 번 돌아가면서 집에 왔다. 그 때마다 당신은 평소에는 전혀 볼 수 없던 음식들을 해서 그들에게 내놓았다. 그들은 당신이 해준 음식들을 우걱우걱 씹으면서 매번 돈 이야기를 했다. 뭐라더라. 전세금이 또 올랐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충 돈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빈 그릇을 상 위에 남겨둔 채로 당신을 차에 실었고, 당신은 그들과 함께 어디론가 가더니 밤 늦게서야 약을 한 봉다리 가득 들고 돌아왔다. 꼬리를 흔드는 나를 대여섯번쯤 쓰다듬어 주고는 비쩍 눌어붙은 찌꺼기들이 남아있는 그릇을 벅벅 닦았다. 그걸 팔 년쯤 반복했을까. 아홉 번째 되던 해에 당신은 그렇게 가더니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당신의 딸이 와서 밥을 채워놓기를 반복했다.
나는 당신이 보지 않을 때 앓고자 노력했다. 몰래 아프려고 했지만, 결국 당신도 눈치챈 것 같았다. 내가 엎드려 있으면 걱정스레 한참을 쳐다보다 가고, 어느날부터 밥에 알약이 껴있곤 했으니까. 당신이 돌아온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았다. 당신이 많이 아파보여 얼굴만 하염없이 핥았다. 당신의 자녀들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어머니 곧 치료 끝내실거라고 하시지? 그러실 것 같애. 힘들어하시기도 하시고 돈도.. 됐다. 쟤도 곧 죽을 거 같던데 쟤는 어떡해? 안락사 시켜야지. 당신이 나보다 귀가 좋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는 당신을 정성스레 핥을 뿐이었다. 뽀삐야, 이제 우리 그만해도 될까? 당신은 두 손가락으로 나의 머리부터 등, 앞발, 뒷발, 꼬리까지 쓰다듬었다. 컹, 하고 답했다. 당신은 촉촉해진 나의 눈가를 쓸었다. 당신의 자녀들은 안락사라 말했지만, 내 죽음은 안락사가 아니다. 내 대답은 오롯이 내 선택이었으니까.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제23회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온라인 백일장 최우수 수상, 김핑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