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로 작문하시오.
엄마에게 처음 선물한 꽃은 국화였다. 엄마에게 꽃은 영화였다.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고, 장미꽃 한 송이를 좋아하던 엄마. 엄마에게 꽃은 영화보다 저렴한 단돈 4천원짜리 환상이었다. 엄마는 종종 장미꽃 한 송이를 사와서 어디서 재활용한듯한 유리병에 꽂아 보관하곤 했다. 저거 또 금방 시들잖아. 매번 시덥잖은 면박을 던졌지만 엄마는 꾸준했다. 우리집 유리병은 한 달에 한 번 물이 채워졌고, 그 물은 3일 후에 버려지기를 반복했다.
화영아, 엄마는 꽃 한번 받아보는 게 소원이다. 스무살 때, 엄마가 싱크대에서 유리병에 물을 채우며 한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후에도 엄마에게 꽃을 선물하지 않았다. 핑계는 많았다. 엄마 생일이 하필 공휴일이라 당일에 문을 연 꽃집을 찾지 못해서, 꽃집이 너무 멀어서, 이번 달 돈 아껴야 해서, 사오는 걸 깜빡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바빠서. 촬영 워크숍, 과외, 영상제작 대외활동, 쏟아지는 과제… 하루하루 시간을 쪼개어 살아야 했다. 현실의 무게는 환상을 가볍게 만들기 충분했다. 다음에 사다주면 되지라는 말은 엄마의 환상을 우습게 만들었다.
웃기지만, 우리 엄마도 나에게 꽃을 선물한 적이 없었다. 엄마는 그 흔한 학예회나 무슨무슨 발표회, 입학식, 졸업식에 한 번도 오지 못했다. 이유는 많았다. 거래처에서 갑자기 거래를 끊겠다고 해서, 발주한 물건이 넘어오질 않아서, 물건이 주문한 거랑 다르게 와서, 과장이 그냥 오늘은 안 된단다… 하지만 나는 ‘꽃보다 현실’이었다. 엄마가 오지 못하는 건 속상했지만, 그런 날에 엄마가 사다주는 달달한 간식이면 충분했다. 무용하게 시드는 꽃보다는 내 혀를 자극시키고 위장을 채워주는 케이크, 마카롱 따위가 더 좋았다.
엄마도 나한테 꽃 사준 적 없잖아. 스무살 때, 엄마의 소원고백에 대한 나의 대답이었다. 꽃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무슨 뜬금없는 소리였는지. 흐르는 정적에 나는 뱉은 말을 곧 후회했다. 그 후, 엄마는 엄마의 소원과 내 소원이 같다고 착각하는 듯했다. 엄마 이제 팀장이라 눈치 덜 봐도 된다. 그 날 연차 꼭 쓸거라고 회사에 신신당부 해놨으니 걱정마라. 엄마는 밥상에서, 장미꽃을 갈아끼우면서, TV를 보다가 이따금씩 그런 말을 던지곤 했다. 그렇지만, 졸업식 날 엄마는 우리 학교 운동장을 밟지 못했다. 나는 학사모는 써보지도 못한 채 엄마의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엄마 곁에는 장미꽃 한 송이가 놓여있었다. 사치스럽게 꾸며진 마카롱 6개입과 함께.
엄마에게 처음 선물한 꽃은 국화였다. 흰색 국화. 우린 마침내 꽃을 주고받았다. 그렇지만, 야속하게도 환상은 짧았다. 장미꽃은 시들었고, 마카롱은 금방 눅진해졌다. 엄마의 유리병도, 냉장고도 환상을 보존할 수 없었다. 이따금씩 꽂아보는 장미꽃도, 종종 사먹는 마카롱도 나에겐 더 이상 환상으로 작용할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꽃이라는 환상보다는 엄마라는 현실이 그립다.
엄마와 꽃과 영화, 김핑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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