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된 키워드 중 3개를 골라 손바닥 소설을 쓰시오.
아 이태원 남산돈까스는 괜찮다매.
할머니는 돈까스를 썰며 부득부득 불만을 내뱉었다. 전에는 소스가 이 맛이 아니었는데, 고기도 바뀐 것 같다…. 나는 곧 내 생일이라고 올라와놓곤 많은 요구사항(서울 식당은 다 맛이 없어. 아유 백화점은 너무 팍팍해.)과 불평불만(남산이 원래 이랬나?)을 늘어놓는 할머니에 슬슬 지쳐가던 참이었다. 내가 아무말 없이 돈까스나 먹어대자 할머니는 그제서야 입을 닫았다.
할머니는 서울을 싫어했다. 보고 있으면 숨이 콱 막히는 것 같다고 했나. 이야기 주제가 고갈되어 뻔한 이야기 흐름으로 흐를 때쯤 할머니는 항상 이 이야기를 내뱉었다. 산을 다 태워먹고 거기다 건물을 올려대냐고 역정을 내며 끝을 맺었다. 그리고 3년 전쯤부턴가, 이 레퍼토리에는 논거 하나가 추가되었다. 서울은 너무 흐리-해. 가뜩이나 황반변성인가 때문에 자꾸 주변이 검게 보이는데 서울은 다 회색이어가지고 뭘 더 구분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내가 뵈러 내려간다고 했잖아.
할머니의 ‘서울 싫어’ 레퍼토리를 오늘도 한 바퀴 들은 나는 짜증을 내뱉었다. 그리고 익숙한 침묵이 흘렀다. 핸드폰 액정을 툭툭 쳐 의미없이 시간을 확인했다. 초등학교 오학년 때였나, 이제 할머니랑 떨어져 자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울고불고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 때는 다 무슨 말을 했었나. 이제 대화주제가 bts와 트로트만큼 멀어진 우리 둘은 실없이 날씨 이야기나 해댔다. 이번에도 ‘서울은 미세먼지가 왜이리 심하냐’라는 할머니의 불평불만으로 귀결되긴 했지만 말이다.
니 곧 집 계약 만료라고?
할머니는 돈까스 접시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더니 밥을 찾아 한 숟갈 크게 떴다.
아유 샐러드는 어딨냐?
나는 돈까스 샐러드를 포크로 툭툭 가리켰다. 할머니는 샐러드를 한 입 먹었다.
이사 가야지.
나는 짧은 대답을 붙였다. 그리고 할머니는 질문 폭탄을 내뱉었다. 어디로? 언제? 아니 서울 집 값 괜찮나? 전세대출은 되고? 나는 몰라. 몰라. 아니. 돼야 하는데. 따위의 대답만을 내밀었다. 할머니의 큰 목소리와 빈 돈까스 접시를 앞에 두고 길어진 대화에 슬슬 직원의 눈치가 보였다.
나 사는 데도 이제 재개발 들어간단다.
재개발?
어. 그래서 이사 갈라고. 여기처럼 온통 흐리해질 텐데 나 거기서 못 산다.
할머니는 창 밖의 남산만 바라봤다. 아니 눈도 잘 안 보인다면서 이사는 어떻게 가. 버스랑 길 다 새로 알아야 하는데. 교회 옮기면 아는 사람도 없잖아. 할머니는 몰라. 몰라. 몰라. 라고만 내뱉었다.
뭘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할머니는 사람들 다 들리는데 조용히 좀 하라고 흘깃 째려봤다. 내가 한숨을 내쉬자 할머니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내 눈치를 슬금슬금 봤다.
나 혼자 잘 사니까 니나 걱정해라
그 무엇도 하나 선명한 것이 없었다. 팔십이나, 이십칠이나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화를 마무리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언제쯤 시간을 내어 같이 밤을 보낼 수 있을지도 할머니의 말마따나 흐릿하기 그지없었다. 할머니가 예순이고, 내가 일곱살일 즈음에는 모든 게 선명했던 것 같은데.
이거 만원짜리 맞냐?
어.
할머니는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삼 만원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더 줘야 하는데. 별 건 아니지만 내일 밥이라도 맛있는 거 한 끼 챙겨먹어.
나는 알겠다며 삼 만원을 받아들었다. 만 원짜리 지폐의 꾸깃꾸깃한 초록색이 선명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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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과 스물일곱의 이태원 남산돈까스, 김핑키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 업로드는 금요일 기준 이틀 뒤인 일요일 예정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