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태

'마스크'로 작문하시오.

by 홍핑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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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저씨 혹시 새 마스크 없어요? 없는데요. 아 소스가 흘렀네. 길거리 장사 하면서 여분 마스크도 준비 안하시면 어떡해.

3천원짜리 타코야끼 8개를 사먹으면서 손님은 불평을 내뱉었다. 작년 초쯤이었다면 뭔 마스크냐 하면서 버럭 화를 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7시간을 기다려서 맞이한 첫 손님이기 때문이다. 손님은 짜증을 내면서 타코야끼를 입에 구겨넣더니, 꼬치를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다. 그러고는, 인상을 팍 쓰고 근처 편의점으로 주변 눈치를 보며 걸어갔다. 내 마스크도 일주일은 썼는데 무슨.



2.

‘도태되면 끝이다.’ 아버지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1998년, 그렇게 말씀하시던 아버지는 회사에서 쫓겨나셨다. 우직하게 일하셨던 아버지는 회사를 나오는 순간 ‘뒤처진 사람’이 되었다. 나는 당시 젊었고, 동네에서 얼마 없는 ‘대학 나온 애’였다. 그래서인지 내 입에 적당히 풀칠할 만큼은 벌 수 있었다. 아버지를 앞섰다는 묘한 우월감, 아버지를 통해 투사된 미래에 대한 절망감, 미래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스산한 희망이 나를 휘감았다. 퇴근한 나를 아버지는 집 근처 맥주집으로 데려가셨다. 아버지는 맥주를 세 병, 네 병 계속 밀어넣곤 다시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도태되면 끝난다 현수야. 도태되지 마라. 나는 답답함에 물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데요? 아버지는 맥주를 입에 털어넣으며 답했다. 건물을 사면 되더라. 건물은 도태되지 않거든.


3.

2021년, 나는 도태되었다. 코로나와 마스크는 내 사업장을 고요하게 만들었다. 회사를 자진퇴사하고, 타코야끼 트럭을 연지 한 5년쯤 된 때였다. 나는 1998년의 아버지처럼 어찌할 줄 몰랐다. ‘금방 끝나겠지’라는 믿음은 ‘이거 접으면 뭐하냐, 요즘 코로나라서 일자리도 없는데’로 바뀌었고, 마침내 ‘이제 접기에는 늦었다’로 끝을 맺었다. 지글지글 끓어가는 불판을 앞에 두고 핸드폰만 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아들은 나를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게으르다고 생각했다. 2년 내내 가망없는 업종을 붙들고 있는 건 게으름이라고. 맨날 가서 앉아있기만 하면서 그게 일하는 거냐고. 나는 대꾸할 수 없었다. 아침 7시에 나가서 밤 11시에 들어온다, 손님 주려고 마스크도 준비했다, 현수막도 갈아보고 소스도 바꿔봤다, 정 안 될때는 호객행위도 해봤는데 사람들이 싫어해서 금방 그만뒀다, 따위의 수고는 도태일 뿐이라는 것을 이미 나부터 잘 알고 있었다.



4.

퇴근한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은 나를 서울숲 고급 레스토랑에 데려갔다. 레스토랑은 테이블 간 거리도 넓었고, 사람들도 점잖았다. 꽉 찬 식당 속, 기름기 가득한 지글지글함과는 다른 따뜻한 온기가 가득했다. 이제 진짜로 장사 접을 때 되지 않았어? 아들이 포크로 스테이크를 찍어 입에 넣으면서 말했다. 할 말이 없어서 얼마 남지도 않은 샐러드 야채 쪼가리를 몇 번씩 찔렀다. 그래도 다른 일들은 한 만큼 돈이라도 나오는데. 아들은 맥주를 한 잔 더 따랐고, 나는 고기를 썰었다. 식탁에는 고기를 써는 진동만 가득했다. 현태야, 내가 생각해봤는데. 도태되면 끝인 것 같다. 갑자기 뭔. 아버지 장사 접는다고? 어떻게 할지 생각 좀 더 해볼라고. 니는 나처럼 뒤처지지 말고 살아라. 나 때는 달라질 줄 알았는데 똑같더라고.

진동을 이기지 못한 고기가 튕겨져나가 내 마스크 위에 떨어졌다. 아들이 짜증을 내며 물었다. 그럼 뭐 어떻게 해야 안 뒤처지고 살 수 있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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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태, 김핑키


다음 업로드는 이틀 뒤인 화요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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