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으로 작문하시오
엄마, 엄마는 내가 아빠랑 똑같다고 했지. 가정을 지켜야지 책임감도 없는 놈이라고 맨날 욕했던 아빠 말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한 학기 쉬어간다고 책임감 없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다음 학기 시작하기 전인 8월까지 제주도에 있을 것 같아. 엄마도, 나도 괜찮아질 때쯤 연락할게.
엄마는 나를 찾지 않았다. 대학 입학 내역과 성적을 올려대며 자랑스러운 딸이라고 소리치던 페이스북 업로드도 멈췄다. 저 대답을 엄마에게 내놓기까지 내가 얼마나 스스로를 치열하게 납득시켜야 했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세화의 파도가 밀려들어와 내 신발과 은은하게 맞닿았다. 나는 세 걸음 쯤 뒤로 가 모래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목적 없는 시간이었다. 사실, 나는 목적 없는 시간을 싫어했다. 1분 1초를 무언가로 채워야만 할 것 같았다. 고등학교 쉬는 시간에 영단어를 외우던 버릇은 대학에서 시간을 꽉 채워 쓰는 강박으로 발전했다. 학점은 꽉 채워서 듣고, 남는 시간에는 학교 근처 영어학원에서 채점을 했고, 틈틈이 무슨무슨 서포터즈와 기자단에 지원했다. 대외활동 인스타그램에는 형형색색의 피드로 들어찼다. 나는 점점 비워졌고.
아빠는 빈 사람이었다. 적어도 엄마의 기준에서는 그랬다. 엄마의 기준이 세상의 기준과 일치했다는 것이 아빠를 ‘증명을 포기한 사람’으로 몰아넣은 원인이었다. 아빠는 젊은 날에 우울증을 앓았다. 아빠는 때때로 마음에 물이 찬 것만 같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지만, 당시 아빠의 상태는 하나의 병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빠는 공무원 수험서도 펼쳐보고 흔히 말하는 ‘노가다’도 하며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지 못한 채로 젊은 날을 소비했다. 내 기저귀값에 몇 푼 보탤 정도의 계약직이 20대를 마친 아빠가 움켜쥔 전부였다. 그나마도 나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일 년만에 그만뒀다고 들었지만.
그거 도망치는거야. 엄마는 내가 아빠랑 똑같다고 했다. 해야할 일이 있는 사람이 게으름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며. (엄마의 말로는) 가정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 다른 년을 좋아한다고 도망쳐버렸다는 아빠를 들이밀었다. 아빠는 결국 변변찮은 직업이 없었고 엄마는 그것이 아빠의 책임감 결여라 믿었다. 그리고 그것이 불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인과관계를 신봉했다. 그러니까 너는 빨리 자리를 잡아야 돼. 여자는 나이 들면 기업에서 안 받아준다.
너 이십대 금방 간다.
무언가에 홀린 듯 대외활동 인스타그램을 켰다. 인친들의 대외활동 소식들이 빼곡하게 차있었다. 대외활동 3개 하면서 4.5 받은 나 고생많았다. H기업 서포터즈 합격했어요! 연구실 인턴 출근 시작. 피드를 내리는 손가락의 움직임은 바빠졌고,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는 피드들은 계속해서 모습을 드러냈다. 휴대폰 액정에 쏟아지는 바닷가의 햇빛과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만나 사진과 글씨가 흐려졌다. 어지러웠다. 나도 여기서 뭐라도 해야 하나. 익숙한 손놀림으로 취준생 커뮤니티와 대외활동 검색 사이트를 들어갔다. 로컬 크리에이터같은 걸 지원해봐야 하나? 비대면 대외활동은 해볼만할 거 같은데? 그래도 휴학 변명할 거리는 있어야지. 나는 세화의 초록색 바다를 앞에 두고 스마트폰 액정만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스마트폰이 점점 뜨거워졌다. 지원서 공고 파일이 안 열려 헤메고 있던 찰나, 신발과 엉덩이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파도였다.
너 이십대 금방 간다.
엄마의 목소리와 파도소리와 축축한 바지가 뒤섞였다. 근데 엄마, 나는 모르겠어. 고작 육 개월정도 쉬어간다는 게 불륜이라고 치부될만큼 그렇게 큰 일일까. 무엇을 쥐어야 할지 모르는 채로 손가락만 뻗어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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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과 불륜, '이십대 금방 간다'라는 말에 대하여, 김핑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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