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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지 Feb 09. 2020

핸드폰 없이는 똥도 못 싼다

자극 중독 극복 일기 (1)


 스마트폰을 놓지 않고 항상 연결되어있어야 하는 상태로 몇 년을 보내면서, 나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외부 자극에 극심히 중독된 사람이 되었다. 국내에 있든 해외에 있든, 심지어 연인과 잠자리에 있을 때도 핸드폰을 먼 곳에 두지 못했다. 나중에는 내 핸드폰이 울릴 때 어쩌다 큰 마음먹고 그걸 무시하면 함께 있는 사람이 보지 않아도 괜찮냐고 할 정도로, 핸드폰은 일상을 넘어서 내 피부가 되어있었다. 손을  쓸 수 있을 때는 손에 잡고, 샤워를 하거나 설거지를 해야 해서 손에 쥐지 못할 때는 언제나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틀어놓고 알림을 소리 모드로 해 두었다. 음악을 트는 것은 그걸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알림음이 울릴 때 그 음악이 끊김으로 인해 새 소식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대응 가능한 상태로 지낸다는 것은 반대로 아무 일이 없으면 그대로 불안해하며 산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신경을 집중할 것, 혹은 분산시킬 것이 언제나 필요했다. 처음에는 음악을 틀다가 음악으론 안 되어 팟캐스트를 들었다. 이미 흐름을 아는 음악은 온 정신을 빼앗기에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처음 듣는 주제로 처음 듣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팟캐스트를 들었다. 6년 정도 방송분이 쌓인 팟캐스트를 단기간에 정주행했다. 다음엔 3년짜리, 4년짜리... 하루 종일 팟캐스트를 틀고 살다 보니 일주일에 한 편 올라오는 프로그램의 몇 년이 금방 소진되었다. 나중에는 팟캐스트가 조금만 지루해도 그걸 못 견뎌서, 핸드폰으로 팟캐스트를 틀어둔 채로 글을 읽거나, 최악의 경우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팟캐스트도 틀어놓고 그 소리가 나는 핸드폰으로 뭔가를 읽기도 했다. 누군가 계속해서 재잘대고 새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정적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필요한 자극의 정도가 점점 심해졌다.


 몸을 움직일 때(먹기, 자기, 일, 씻기, 청소 등) 언제나 누가 떠들도록 세팅하고 살다 보니 나중에는 그게 내 육체의 스위치처럼 되었다. 엄청난 자극에 놓이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안 하거나 하는, 극심한 자극과 무기력 두 가지만 남은 일상이 되었다. 휴일에 눈을 뜨면 오후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몸을 일으켜야 할 때는 또 누군가 재잘대는 소리를 틀어야만 했다. 그게 없으면 구동되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이다. 나갈 준비를 하다가 드라이를 해야 하면 귀에 아무 이야기도 안 들리는 게 무서워서 이어폰을 꽂았다. 머리도 짧고 드라이기도 2000와트가 넘는 걸 사서 1~2분이면 다 마르는데도, 그 짧은 시간을 견디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화장실 갈 때, 물 가지러 냉장고에 갈 때... 소리가 나는 핸드폰을 언제나 들고 다녔다.


 그야말로 핸드폰 없이는 똥도 못 싸는 인간, 심각도로는 그중에도 만렙인 사람이 되었다. 누가 그랬다. 화장실 갈 때 핸드폰 들고 가는 걸 까먹으면 샴푸통 라벨이라도 읽는다고. 전성분을 외울 지경이라고. 치약 뒷면도 읽고, 샤워젤 뒷면도 읽고 그런다고. 그런데 나는 그것과 더불어, 라벨을 읽으면서도 소리가 계속 나야 했다. 소리가 없는 공백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깨어있는 내내 소리를 들으며 산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잠들기 직전까지 특정 자극을 느끼면서 지냈으므로, 정말 기절하기 직전이 되어서야 껐다. 하루 4시간 정도를 잤는데, 수면의 질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꽤 오래 지냈다.


 밖에서 나를 만나는 사람은 그걸 크게 눈치채지 못했다. 그 모든 것은 내가 혼자 있는 집에서만 나오는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오면 코트도 안 벗고, 청소도 제대로 안 하고, 일상이 무너진 상태로 지내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일은 한 번의 사고나 펑크 없이 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은 잘 해내고 있었으므로 문제 인식이 늦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일만 겨우 해내고 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무렵, 나의 상태로는 견디기 힘든 사건을 몇 번 마주하고 나서 이 모든 걸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상담도 한동안 받았는데, 상담을 받는 동안에도 손가락 살을 뜯거나 손톱으로 손바닥을 꾸욱 찌르고 있거나 했다. 상담 선생님은 하루에 단 5분도 정적이 없는 내 상태를 걱정했고 여러 가지 방법을 제안해주셨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나중에는 제안받은 교정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한심한 내 이야기를 늘어놔야 한다는 것 때문에 상담시간이 괴로워졌다. 타인과 말하는 것이 내 직업이고 말을 기술적으로 잘 해내야 하는 게 내 업무적 성과지표이기도 하기 때문에, 정적 속에서 상대와 대화하는 것 자체가 거대한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언제나 타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 결국은 별 일 없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안심시키는 습관이 있어서인지, 이 상황에 진전이 없다는 것에 스스로 느끼는 자괴감을 꺼내놓기가 어려웠다. 내가 그 당시 처한 다른 상황적 문제들도 있었으므로, 언제나 상담시간은 빠듯했고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솔직히 털어놓지도 명쾌한 답을 얻지도 못한 채 일어나야 했다. 제한시간이 끝나면 아쉬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서 또 누가 종알종알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그 일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려 애쓰곤 했다.


 그런 식의 나날들이 이어질 때쯤, 주말이든 평일이든 핸드폰에 종속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되었다. 이제 핸드폰을 놓을 수 없는 일을 한다는 핑계도 쓸 수 없어졌으므로, 적극적으로 이 상태를 고쳐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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