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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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종관

민의 산책이 마을회관과 이동막걸리에 친숙해져 가는 동안 나의 산책은 보다 멀리까지 확대되었다. 구의 차를 타고 포천 읍내에 있는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일은 내 몫이었다. 장을 보기 위해서 차를 몰고 나오면 정해 진 시간 내에 돌아갈 이유가 없었으므로 넓은 지역을 드라이브 삼아 돌다가 들어가는 게 습관이 되었다. 내가 자주 가던 곳은 산정호수였다. 명덕리에서 차를 몰고 이십 여분 거리에 호수가 있었다. 호수의 물은 투명하게 맑았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산책로를 따라 호수를 한 바퀴 돌면 시간이 정지된 듯 마음에 평화로움을 느꼈다. 숲 속 산책길에 막걸리를 파는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종이컵에 잔술을 팔았다. 서늘한 숲 그늘에서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을 보며 구운 은행을 안주 삼아 종이컵에 든 막걸리를 마셨다. 삼삼오오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지나갔다. 나는 조용한 숲이 주는 안정감과 평화로움을 즐겼다. 사람들은 산책길을 한 바퀴 돌고나면 갈 길이 바빴지만 호수는 움직임 없이 산의 중심을 지키고 있었다. 시간의 흐르지 않는 듯한 순간들이 뭉근한 막걸리와 함께 나를 감싸고 있었다. 호수에서 내려와 좀더 있다가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 비둘기낭 폭포로 갔다. 주상절리 계곡으로 떨어지는 폭포는 장관을 이루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들판에 갑자기 절벽이 나타나고 아래를 향해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면 이런 저런 상념으로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폭포 물이 고이는 바닥까지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물보라가 얼굴에 분무기처럼 뿌려졌다. 폭포가 일으키는 바람이 거대한 선풍기를 돌리는 것처럼 강력했다. 등판이 젖을 정도로 물보라 세례를 맞다가 나무 계단을 올라오면 어질어질한 느낌이었다. 백운산 정상에도 올라가 보고 싶었지만 노쇠한 자동차가 가파른 등성이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포기했다. 포천 읍내는 크지 않은 도시여서 사람들 사는 모습을 구경하기 좋았다. 개천 변에 펼쳐진 오일장을 산책 삼아 다니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어느 날은 그곳에서 명사장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장터의 포장마차에 앉아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젊은 여인이 앉아 있었다. 명사장은 여자에게 무언가를 먹어보라고 재촉하고 있었고 여자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고 있었다. 탁자 위에 막걸리 병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술을 마신 것 같았다. 나는 그를 피해 가던 길을 돌아가는 것도 멋쩍어서 그에게 다가가 아는 체를 했다.

“어, 송작가님. 시장에 나오신 거야? 이리와. 여기 앉아요.”

그는 파라솔 의자를 내밀었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소설책을 읽고 쓰기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난후 그는 나를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낯 뜨거워지는 장면이었으나 그의 입에 한 번 붙은 호칭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인사 해. 송작가님이셔.”

명사장은 젊은 여자에게 나를 소개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여자에게 인사를 했다.

여자는 “안,녕,하,세,요.” 라고 한 음절씩 끊어서 천천히 말했다.

외국에서 온 여자였다. 여자는 어리고 예쁜 얼굴이었지만 표정에 수줍음을 담고 있었다.

“혼자 마시기 심심해서 나오라고 했어. 요 앞에 다방에서 불렀어.”

명사장은 이미 짐작이 가는 상황을 설명하며 나에게 종이컵을 내밀고 막걸리를 따라 주었다. 안주로 나온 것은 채 병아리가 되려다 만 삶은 계란이었다.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오기 직전에 삶아진 듯 병아리의 형체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다. 명사장은 날개 한 쪽을 잡아 올려 소금에 찍어서 맛있다는 듯 우적우적 씹는 소리를 내며 먹었다. 여자가 손사래를 치며 안 먹겠다고 한 안주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나는 녹두전을 주문했다. 여자는 녹두전을 조금 떼어먹고 ‘이거 맛있어’ 라고 말했다. 나는 ‘많이 드세요’라고 말하며 여자 앞으로 접시를 밀어 주었다. 여자가 맛있는 음식을 거절하지 못할 만큼 순진하고 어린 나이일거라는 생각이 들자 편치 않은 기분이 되었다. 명사장과 여자를 남겨두고 할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야겠다고 말한 후 시장 구경을 핑계 삼아 개천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들은 다섯 명이 함께 왔다. 여자가 두 명이었고 남자가 셋이었다. 오전에 카페 소파에 누워 읍내 도서관에서 빌려온 소설을 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가 오는 일이 드물어서 받아야 하나 망설이다가 수화기를 드니 일전에 다녀간 남녀의 남자 쪽이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요전에 지나가다가 커피 마셨잖아요. 오늘 친구들과 저녁에 가도 되나 여쭤보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판단이 서지 않았다. ‘십 분 후에 전화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그들이 온다면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민에게 요청을 해보기로 했다. 민은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고, 용돈이나 벌자며 승낙했다. 자신도 같이 준비하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오셔도 되겠다고 전했다. 남자는 자신의 일행이 다섯 명 정도이며 혹시 바비큐 파티를 준비해줄 수 있느냐 물었다. 나는 일이 자꾸만 커지는 것 같아 걱정됐지만 일단 준비해보겠노라고 했다. 남자는 여러 번 인사를 하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부담 드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남자가 부탁한 바비큐와 술을 포천 시장에 가서 장을 봐서 준비를 했다.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왔다. 마루에 있는 테이블에 음식과 술을 준비했다. 한쪽으로 고기를 구울 수 있는 드럼통을 개조한 그릴을 설치했다. 숯을 준비하기는 헸지만 숲 근처에서 주워온 나무 그루터기들을 모아 장작불을 준비했다. 잘 마른 장작에 불꽃이 피어오르자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는 일은 민이 담당했다. 민은 사람들의 환호성에 신이 나서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웠다. 술과 안주가 펼쳐지자 질펀한 파티가 벌어졌다. 우리는 그들의 권유에 자리에 합석하게 되었다. 돌아가며 인사를 해서 그들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 왔던 남녀는 부부였고 나머지는 친구들이었다. 술잔들이 부딪치고 대화가 무르익어 가자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같이 온 일행 중 한 명이 노래를 하는 가수라고 했다. 남자가 자동차로 가더니 기타를 꺼내오고 음악이 시작되었다. 여자의 노래는 수준급이었다. 노래방에서 듣는 친구들의 노래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박수와 함성이 저절로 나오는 절창이 이어졌다. 드럼통 그릴에서 장작불은 쉬지 않고 타 올랐다. 술기운이 오르자 나를 둘러싼 공간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밤하늘에는 북두칠성이 또렷하게 보였다. 타오르는 장작의 불꽃이 별을 향해 똑바로 날아올랐다. 낯선 나라의 축제에 동참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못 부르는 노래지만 일곱 명이 노래 한 소절씩을 돌아가며 불렀다. 민은 술에 취했기 때문인지 몇 소절 알고 있는 시조를 타령조로 읊어서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 사람들은 돌아갔다. 남자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후하게 사례금을 주었다. 다음에 또 전화를 드리면 준비를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같이 온 친구들도 여기서 다른 모임을 가질 수 있겠느냐 물었다. 나는 확답을 주지는 못하고 형편에 맞게 준비를 하겠노라고 답을 했다. 남자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일행을 태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설거지며 뒷마무리는 다음 날 하기로 하고 민과 나는 숙소로 돌아가 노곤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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