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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는 무슨 일 때문인지 펜션을 비우는 일이 잦았다. 펜션에 있는 날에는 여지없이 술에 취해 있어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고민 속에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야, 우리 저 집에 한 번 가보자.”
낮부터 비가 오고 흐린 날이었다. 어스름 저녁이 밀려오고 구는 얼마쯤 술에 취해 있었다. 셋이서 테이블에 둘러 앉아 잡담을 나누던 중 구가 재미있는 놀이라도 찾았다는 듯이 제안을 했다. 유리창 밖으로 밤나무 숲을 지나 귀신이 나온다는 폐가의 지붕 끝이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이 조그맣게 보였다. 민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좌우로 흔들며 거기는 가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말하며 어린아이를 달래는 선생님 같은 표정을 해보였다.
“한 번 가보자. 할 일도 없는데.”
나는 구의 기분을 바꿔줄 무언가 필요한 거 같아서 민을 보며 말했다.
“형, 진짜 귀신 나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민은 달갑지 않은 표정이었다.
“야, 도망치면 되지. 뭘 걱정이냐? 그리고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냐? 다 구라지.”
구는 포기하지 않고 민을 꼬드겼다.
“난 싫어. 가려면 형들끼리 가던가.”
민은 귀신을 믿는다기보다 기분 나쁜 폐가에 가고 싶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알았어. 그럼 둘이 갔다 올게.” 구는 나를 향해 말했다.
나는 괜찮다는 표시로 머리를 끄덕였다.
“나만 두고 가면 어떡해?”
투덜거리는 소리를 내며 따라온 민도 호기심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귀신이 있다면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다느니, 처녀 귀신이라면 미모는 어느 정도나 될지 모르겠다느니 실없는 소리를 하며 뒤를 따라왔다. 가까이서 보니 집은 생각보다 많이 망가져 있었다. 불과 도로 하나 정도의 사이를 두고 보았을 뿐인데 직접 눈앞에서 보는 풍경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늘상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서 보는 것과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아직 어스름 저녁 빛이 남아 있어서 주위는 귀신이 나올 만큼 음산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마당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편안하게 딛을만한 곳도 없었다. 집은 조립식 패널로 지은 단층이었다. 사방의 벽은 살을 뚫고 드러난 동물의 뼈처럼 황량한 잿빛이었다. 마감재를 따로 하지 않아서 조립식 패널의 외부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지붕은 아스팔트 싱글로 덮었는데 관리가 안돼서 여기저기 조각들이 떨어져 나간 곳이 많았다. 현관문이 있는 부분은 건물에서 돌출되어서 빈곤한 집에 약간의 멋을 낸 느낌을 주었다. 현관문은 덩쿨 무늬 형상을 새겨 넣은 섀시 문이었다. 구가 손잡이를 잡아당겨보았지만 문은 잠겨서 열리지 않았다. 구는 마치 안에 사람이 있기라도 한듯 똑똑똑 문을 두드리며
“계세요?” 라고 말했다.
노크를 하고 문에 귀를 대고 기척을 살피는 구의 모습은 연기였지만 우리는 그의 행동을 지켜보며 기다렸다. 힘을 주어 흔들어도 문이 열리지 않아서 포기하려는 순간, 민이 창문 쪽으로 가볼까 하며 건물 옆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 나섰다. 옆쪽은 현관 쪽보다 더욱 심한 풀더미의 정글 숲이었다. 허리까지 오는 쑥대를 헤치고 발이 빠지는 진창을 딛고 가야만 창문 안을 들여다보기라도 할 만한 자리에 갈 수 있었다.
“그냥 돌아가자.” 구가 말했다.
“다음에 연장을 가지고 와서 문을 따고 들어가 보자.” 구는 귀신놀이가 싱거워 진것 같았다.
발을 빠져 가면서까지 시도를 할 만큼 집안 내용이 궁금하지는 않아보였다. 오히려 아쉬워하는 민을 설득해서 데려가느라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민은 이왕 온 김에 안에 들어가 보자고 우겼다. 도와주면 창문을 통해서 들어가 현관문을 열겠다는 것이다. 나는 진창에 발이 빠지면서 무성한 풀숲을 헤치고 들어가는 게 성가셨다. 있지도 않은 귀신 때문에 진흙발이 되기는 싫었다. 민은 조금 고집을 피우다가 조만간 다시 오자는 구의 말에 쩝, 소리를 내며 아쉽다는 듯 발길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에는 날이 어두워 카페로 가는 진입로에 자동점멸 가로등 불이 들어왔다. 그날 밤에 돌아와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이상한 꿈이었다. 무성한 밤나무 숲이 펼쳐졌는데 나뭇잎이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나무둥치는 우람했지만 모두 썩어 있었다. 썩어서 부스러져 내릴 것만 같은 나무들이 붉게 타오르는 단풍잎을 빼곡히 매달고 있었다. 숲 사이로 고양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바라보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 사람이 숲 가운데 서 있었다.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정확히 누군 인지 알 수는 없었다. 포천 장터에서 보았던 명사장이 데리고 나온 이국여자 같기도 하고 오래 전 잠깐 만나서 교재 했던 여자의 얼굴 같기도 했다. 나는 한곳에 서서 다가가지 않고 여자를 바라보았다. 내가 움직이면 여자가 가 버릴 것 같아 한 자리에 선 채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지만 여자는 이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숲을 뒤져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강렬한 이미지들로 채워진 이상한 꿈이었다. 아침에 깨어나서도 꿈의 여운 때문에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몽롱한 상태로 누워 있었다. 왜 그런 꿈을 꾼 것일까. 꿈은 현실의 반영이라는데 나는 어떤 현실을 살고 있는 것인가. 내 무의식 안에는 어떤 형상들이 들어 있는 것인가. 두서없는 몽상 속에서 뒤척이다가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비에 젖은 밤나무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
파티를 열어준 일행들은 정기적으로 찾아왔다. 그들은 알고 보니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고 음악을 하는 한 팀 소속의 멤버들이었다.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모두 클럽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멤버들이라고 했다. 이곳에는 우연히 지나가다 들렀는데 장소가 편안해서 자주 오게 되었다고 했다. 처음에 왔던 남녀는 둘이서 자주 왔다. 드라이브 삼아 나와서 커피를 마시러 들른다고 했다. 사람들 많은 카페에 가는 게 싫어서 번번이 찾아오게 된다고 여자가 말했다. 자주 찾아와서 안면이 익숙해질 즈음에는 그들의 정체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하는 일들이 무엇이건 그들은 손님일 뿐이었다. 카페 영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아니지만 그들이 두고 가는 사례비가 관리비를 내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들도 우리의 사정을 알게 된 뒤로는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때로는 구와 명사장을 포함해 열 명 가까운 사람이 큰 파티를 열기도 했다. 대부분 즐거운 자리였으나 옥의 티처럼 문제가 일어나기도 했다. 노래하는 가수가 주사가 심했다. 여자의 목소리는 노래를 하는 순간에 혼을 빼놓을 만큼 아름다웠지만 어느 정도 이상 술을 마시면 정신을 놓아 버리고 말았다. 만취 상태가 되면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그녀는 야성을 드러냈다. 술기운이 올라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에서 발광에 가까운 행태를 보였다. 여자의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욕설들이 튀어 나왔고 주먹을 휘둘러 옆에 있는 사람을 폭행했다. 유리잔들을 집어던지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고 마당 한 가운데서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봐 사람들을 질겁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엔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여자는 한껏 기분 달아올라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시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술에 취하면 이성을 잃고 마는 습관을 모두들 알고 있는지라 보이지 않는 그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구동성으로 그녀를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 근심을 하다가 종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들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술들이 취해 있으므로 흥을 깨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게 귀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모두들 일어나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한참 불러도 그녀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혹시 몰라 펜션 방안까지 들여다봤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구석을 불빛을 비춰가며 보이지 않는 여자를 찾던 중 마당에서 놀라는 소리를 들었다. 명사장이 개가 보이지 않는다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우르르 달려가 확인해보니 그의 말대로 개가 보이지 않았다. 개를 묶는 줄이 건물을 한 바퀴 돌게 길었으므로 구석구석을 확인했지만 개는 보이지 않았다. 명사장은 ‘언제부터 개가 없었지?’라고 물었지만 아무도 개가 없어진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민이 초저녁에 개에게 육포 조각을 던져준 일이 있다며 그 때 까지는 개가 있었다고 하자 여자가 없어진 것과 개가 사라진 게 무관하지 않다는 심증이 생겼다. 여자는 개를 데리고 나간 것일까? 모두들 술판에 취해 있는 동안 여자는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어두운 밤나무 숲 쪽을 향해 개와 여자의 이름을 목청껏 불러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여자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라 치더라도 개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달려올 만도 한데 명사장이 개 이름, 짱돌아! 를 목이 메도록 불러도 개는 기척이 없었다. 여자의 행방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확인되었다. 어둠 속에서 사람과 개의 행방을 찾기에 지쳐 모두들 한숨을 쉬며 두런거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여자의 목소리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술이 깰 만큼 정신이 들어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도로 쪽에서 나고 있었다. 뜻을 알 수 없지만 누군가를 향해 외치고 있는 여자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우리는 지체 없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달려갔다. 밤나무 숲을 지나 도로까지 나와 둘러보니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마저도 끊겨 들리지 않았다. 다시 난감한 체념이 시작되려는 순간 여자의 비명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귀신 나온다는 폐가 쪽에서 들려왔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폐가의 문을 두드리며 울부짖고 있는 여자를 찾을 수 있었다. 여자는 안에 사람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문을 두드리며 ‘문 열어, 문 열어’를 외치고 있었다. 긴 머리칼이 산발을 하고 있어서 여자의 모습이 귀신과 다를 바 없었다. 숨차게 달려온 동료가 여자를 잡고 도로로 끌고 나와 정신 차리라고 소리치며 어깨를 흔들고 뺨을 때렸다. 여자는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놔, 집에 들어가야 된다고. 이거 놔! 놔! 놔!”
여자의 울부짖는 소리가 적막한 산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어디서 잊어버렸는지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인 여자를 숙소에 끌고 오기 까지 여러 사람이 적잖은 고생을 했다. 비틀거리며 소리치는 여자를 간신히 데려다가 카페의 소파에 눕히고 조금 정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명사장이 여자에게 물었다.
“혹시 개 못 봤어? 우리 짱돌이.”
여자는 멀뚱멀뚱 눈을 굴리더니 '나랑 같이 산책 나갔었는데' 라고 말했다.
“산책을 나갔다고?” 명사장은 다그치며 물었다.
“응. 내가 데리고 나갔어. 근데 지금 어디 있지?”
“몰라. 개가 없어. 네가 어디로 데리고 갔는데?”
“몰라. 생각나지 않아. 그냥 데리고 돌아다녔는데 잘 기억나지 않아.”
명사장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었다가 화가 나는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근데 거기는 왜 갔어?” 모두들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구가 여자에게 물었다.
“어디?” 여자가 물었다.
“거기, 귀신 나온다는 집.”
“몰라. 나도 몰라. 내가 거기 왜 갔지?”
도리어 우리에게 묻고 싶다는 표정인 여자를 보고 아무도 할 말이 없었다. 그 밤에 개는 돌아오지 않았고 여러 달이 지나도록 행방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