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시간은 쉽게 흘러갔다. 할 일 없는 날들이 이어져 일상은 지루했지만 계절이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봄에 출발한 우리의 여행이 가을을 지나 겨울 초입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소소한 일상이 이어져 짧지 않은 세월이 되었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를 찾아 나갔다. 구의 실연 상태는 잘 정리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아들이 한 번 더 찾아왔었고 전보다 더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금방 자리를 떴다. 아이는 아빠와 우리의 존재를 잊고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의 일상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엄마와의 생활 속에서 아빠의 존재는 점점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 것이었다. 아이는 말수가 줄어 있었다. 아빠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귀찮은 것 같았다. 아이가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것은 개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개, 어디 갔어요?” 아이는 개집 근처를 서성거리고 돌아와 나에게 물었다.
“없어졌어. 어디 갔는지 몰라.”
“혼자서 나간 거예요?”
“그렇지. 어느 날 집을 나갔는데 돌아오지 않아.”
“어떻게 나갔지?”
“그런 일이 좀 있었어. 설명하자면 복잡해.”
“개가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오늘 아빠와 온 건데.”
“그랬구나. 우리도 개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어. 언젠가 돌아오겠지.”
“얼마나 되었어요?”
“좀 오래 됐어. 그래서 이제는 거의 생각하지 않아.” 아이는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
부모의 순탄치 않은 관계 속에서 아이는 쉽게 체념하는 법을 배우기라도 한 걸까. 반짝이는 눈동자에 물기가 맺히는 것 같았다.
추위가 찾아왔다. 겨울옷을 준비해야 할 만큼은 아니지만 난방을 하지 않으면 잠자리가 불편할 정도의 추위가 산속 마을을 방문했다. 추위는 익숙한 손님이었지만 우리는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파티를 치르며 얼마간의 수입을 올리고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셋이서 먹을 식비와 카페의 관리비를 내기에 빠듯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용돈을 건네던 구는 어느 날부턴가 더 이상 돈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돈에 관하여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기로 묵시적으로 약속한 듯 말이 없었다. 민은 마을회관 출입을 줄였다. 날씨가 서늘해지자 노인들이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이서 바둑을 두는 횟수가 늘어났지만 둘의 바둑 실력은 변함이 없었다. 이제는 격투기처럼 벌이던 둘의 바둑 시합도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추위 때문이었을까. 집안에 스미는 냉기는 바둑판마저도 열기를 식게 하고 있었다. 카페 안의 공간은 넓었다. 여름 더위 속에서 천장에 달아놓은 회전날개는 시원한 냉기를 선물했지만 추위 속에서 거대한 공간은 무용지물이었다. 난방을 위해서 커다란 난로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문제는 난로에 넣을 기름이 없다는 것이었다. 플라스틱 통에 기름을 사오면 하루에 20리터 들이 한 통이 필요했다. 손님도 없는 카페 안을 그만한 비용을 들여 매일 덥히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써늘한 냉기가 쏟아져 나오는 카페 출입이 점점 줄어 들었다. 밤나무 숲에는 낙엽이 함박눈처럼 떨어졌다. 숲에는 갈색의 낙엽이 발이 빠질 만큼 쌓여 가고 있었다. 우리는 이대로 얼마나 갈 수 있을까, 논의해야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며 대화를 시작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불타는 밤나무 숲의 꿈을 꾸었다. 여자의 얼굴 모습은 더욱 희미해졌다. 익숙한 사람인 것은 맞지만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살아오면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여자의 이미지를 합쳐 놓은 건지도 몰랐다. 밤나무 이파리는 불타는 선홍색이었다. 나무 둥치는 썩어서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문득 이쪽을 향해서 달려오고 있는 짐승이 있어서 다가가보니 집을 나간 개였다. 개는 목줄이 매달린 채 혀를 내밀고 헐떡이며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반가워서 개를 안으려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개의 까슬한 털의 느낌이 손끝에 남아 있어서 잠에서 깨어나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마을회관에 다녀온 민이 한 가지 소식을 전했다. 낮에 회관에 갔다가 아무도 없어서 혼자서 막걸리를 마시고 오는 길에 폐가의 현관문이 열려 있는 걸 보았다는 것이다. 문은 활짝 열린 채 바람에 삐걱 소리를 내며 보란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민은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같이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냥 왔다고 했다. 라면을 끓여먹기에 진력이 난 저녁이었다. 어둠이 내리면 추위 때문에 카페 쪽으로는 발길도 하지 않고 마루에 전기난로를 피워놓고 추위를 피하고 있는 중이었다.
“가볼까?”
구는 라면을 안주 삼아 먹은 소주의 취기가 오르는지 탁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가보자.”
어차피 먹고 자는 일 밖에 하는 일이 없어 무료하던 참이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이 갑자기 기운을 돋게 했다. 저녁 먹은 자리를 대충 치우고 길을 나섰다. 방문을 나서니 스산한 바람이 어깨를 스쳤다. 밤나무 숲을 지나온 바람이 나뭇가지에 남아 있는 가랑잎을 흔들어 초겨울 저녁의 음산한 느낌을 더해 주었다. 여름에 다녀갔을 때와는 기분이 다르기 때문인지 폐가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방문이었다. 겨우 서너 번 밖에 안 되었지만 폐가 방문은 산골에서의 추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었다. 곡조를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민이 앞장을 섰다. 카페 정문을 벗어나자 가로등 불이 없어서 핸드폰에 붙어 있는 후레시를 켜야 했다. 사방은 금방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뒷목을 스치는 바람이 차가 워서 몸을 움추러 들게 했다. 폐가에 도착하자 민의 말대로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열려 있을 뿐만 아니라 바람이 불때마다 앞뒤로 움직여서 녹슨 문짝이 내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구가 맨 앞에서 서서 안을 비추어 보았다. 그의 핸드폰 후레시 불빛이 현관 안을 훑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냉담하고 건조한 흰 벽만이 불빛에 드러났다. 또 하나의 문이 안에 있었다. 구는 현관문을 지나 안에 있는 문의 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문은 쉽게 열렸다. 그 문 역시도 삐그덕 하는 신음 비슷한 소리를 냈다. 문이 열리고 세 사람의 불빛이 번갈아 안을 비추자 방안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드러났다. 방안의 모습은 평범하고 예상 가능한 형태였다. 세간살이는 없었다. 구석 쪽으로 부엌 싱크대가 보였고 한쪽 벽면으로 물건들을 수납할 수 있는 책꽂이 비슷한 가구가 안이 텅 빈 채 놓여 있었다. 바닥을 비추자 집이 비워진 이후 숱한 사람들이 다녀갔기 때문인지 흙 묻은 발자국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하나 뿐인 창문에는 낡은 커튼이 창문 한 쪽만 가리고 초라하게 매달려 있었다. 커튼은 흰 색 바탕에 빛바랜 초록색의 나뭇잎이 인쇄되어 있었다. 방 안은 고요했다. 이런 저런 말들을 두서없이 지껄이는 셋의 목소리가 아니라면 집안은 오래 된 정적으로 메워진 중이었다. 천정에는 전구가 달려 있지 않은 형광등 기구가 달려 있었다. 기구의 한쪽 끝에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끈이 짧게 내려와 있었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고 방안의 구조가 눈에 들어오자 부엌 싱크대 옆으로 문 하나가 보였다. 편하지 않은 위치에 있는 문의 용도는 무엇일까, 궁금해 하며 문고리를 돌리자 녹슨 쇠붙이 소리를 내며 안을 향해 열렸다. 안쪽에 불빛을 비추자 목욕실의 모습이 드러났다. 구석 쪽으로 가로로 설치된 작은 욕조가 있고 그 옆으로 때가 끼어 더러워진 세면대가 있었다. 세면대의 맞은편에는 변기가 놓여 있어서 욕실과 화장실을 겸용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열었던 문을 닫으려고 하는 순간 바닥에 신발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타일이 깔린 바닥에서 신는 목욕실용 슬리퍼 였다. 슬리퍼는 어찌된 일인지 한 짝만 있었다. 굽이 약간 있는 여자용 슬리퍼 였다.
“이것이 이 집에 살던 사람의 유일한 유품인가?”
구는 혼자 중얼거리며 슬리퍼에 신발 신은 발을 넣어보려 하다가 안 들어가자 신발을 벗고 다시 넣어보았다. 슬리퍼는 구의 발에 딱 맞았다. 구의 발은 남자치고는 작은 편인 것 같았다. 더 이상 살펴야 할 부분은 없었다. 귀신의 흔적은 눈곱만큼도 없었고 우리는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실망을 안고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민은 “이게 뭐야 아무것도 없네” 궁시렁 거리는 소리를 하며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싱크대 아래쪽에 작은 문짝이 달려 있어서 안에 뭐가 있나 열어보려다가 쓸데없이 손에 먼지만 묻힐 것 같아서 민의 불빛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지나가는 자동차 한 대 없는 산골짜기에는 짙은 어둠이 사위를 메우고 있었다. 밖에서 대화도 없이 서성거리고 있는데 한동안 기다려도 구가 나오는 기척이 없었다.
“형, 가자!”
민은 안에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 사방이 완강한 정적에 싸여 있어서 조금만 큰 소리로 말해도 폐가의 창문이 흔들릴 정도로 소리가 크게 울렸다. 소리를 지른 후 한동안 기다려도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구가 안에서 무슨 꿍꿍이를 벌이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기다림이 길어지자 민과 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어둠 속에서 무언가에 부딪쳐 넘어지기라도 한 것인가. 여러 번 소리를 질러 호출을 하고도 아무런 기척이 없어서 안으로 들어가 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불빛에 비친 구는 이상한 자세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는 구석의 벽 모서리에 두 팔을 짚고 서 있었다. 마치 사나운 개에게 쫓기기라도 한 듯한 자세로 두 팔로 뒷벽을 짚고 불안한 표정으로 우리가 비추는 불빛을 향하고 있었다. “형, 왜 그래?” 민이 물었다. 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 불빛 속에 보였다. “장난하는 거라면 그쯤 하고 가요. 형, 춥다.” 나는 평상시의 목소리를 내려 애쓰며 그를 향해 말했다. 구가 고개를 떨구어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참아왔던 무언가를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어 마지막 힘을 놓아버린 듯한 체념의 몸짓이었다. 우리는 구를 향해 다가가려 했지만 어쩐 일인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바닥에 자석이 붙은 신발을 신고 철판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얼핏 본 민의 얼굴에선 땀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익숙하지 않은 불쾌한 감각이 나를 채우고 있었다. 구가 숙였던 머리를 들었다. 그는 전혀 다른 표정이 되어 있었다. 좀 전까지도 세상사 포기한 절망의 표정이었다가 이제는 무언가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굳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분명한 단어가 되어 나오지 않는 어눌한 말투였지만 내용은 충분히 알 수 있는 낯선 목소리가 구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연희야! 내가 말했지. 결국 이렇게 될 거라고. 너는 내 말을 믿지 않았지. 내가 그토록 간절하게 말해도 너는 내 말을 듣지 않았어. 나는 갈 곳이 없어. 네가 나를 받아줘야 해. 네가 받아주지 않으면 나는 끝이야. 연희야! 내 말을 잘 들어. 너에게 주고 싶은 게 많았지만 나는 가진 게 없어. 내가 줄 수 있는 건 아주 작은 것뿐이야. 하지만 기회를 준다면 열심히 노력할게. 이렇게 사정해도 결국 너는 떠나갈 거지만 나는 너에게 이 말을 할 수밖에 없어. 나는 이제 막바지에 왔어. 너에게 나의 모든 것을 걸었는데 이렇게 끝나고 마는구나! 이제는 모든 걸 놓아 버리고 싶다. 이게 마지막이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내가 가진 걸 전부를 주어도 너를 잡을 수 없다면 나는 어떻게 하지? 연희야. 제발!”
구의 말들은 흘러내리는 침과 함께 그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지만 어쩐지 낯이 익기도 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아주고 부축해서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마음 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안간힘을 써서 그에게 다가가야 했지만 바지에 오줌을 지리도록 힘을 주어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흘깃 본 민은 흐르는 땀으로 얼굴이 번들거리는 윤기로 빛나고 있었다. 민에게 말을 걸어 같이 움직여야 했지만 우리는 서로 도울 처지가 아니었다. 그도 나도 구도 옴짝달싹 할 수 없는 각자의 감옥에 갇혀 있는 꼴이었다. 우리는 눈을 부라리며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때였다. 세상이 부서지는 것 같은 천둥소리가 들렸다. 밖에서 맑은 밤하늘에 별을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는지 벼락 치는 소리가 온 천지를 때렸다. 우르릉 콰콰콰쾅! 번쩍, 정신이 드는 느낌이었다. 천둥소리에 놀라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있던 자리에서 뛰어 올라 서로의 손을 움켜잡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밖에는 천지를 분간할 수 없는 거센 소낙비가 폭포처럼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 불빛이 보이는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며칠 밤을 어수선한 꿈에 시달리며 깊은 잠을 자지 못하다가 무기력 하게 마냥 누워 있는 것이 싫어서 펜션을 떠나기로 했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챙겨서 트렁크에 싣고 카페를 나왔다. 서로의 사정을 잘 알기에 명사장과 이별의 순간은 짧았다. 잘가! 라는 인사만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카페를 뒤로 하고 나와서 폐가 옆을 지나갈 때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 내려왔던 길을 되짚어 수원산 방향 언덕길을 올라갈 때 이곳에서의 일들이 꿈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은 어수선하게 정리되지 않는 혼란스런 이미지들의 집합일 뿐이어서 한 마디로 요약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내 꿈을 정체를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내가 살아온 날들의 반영이었고 나는 여전히 그 길의 여정에 놓여 있었다.
“같이 있으니 어렵네.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하자.” 구는 탄식을 섞어서 말했다.
우리가 만난 것은 우발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헤어지는 것도 어려울 것은 없었다. 나는 제일 먼저 차에서 내리기로 했다. 민은 서울 방향으로 가다가 집으로 가는 전철역에서 내리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에 나를 내려놓은 구와 민은 손을 흔들어 나를 전송했다. 나는 구의 차가 멀어지는 것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낡은 자동차는 작은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길은 굽은 곳에서 커브를 돌며 사라졌다. 나는 내가 가야할 곳을 향해 발걸음을 떼어 놓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