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너에게

7

by 송종관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일들을 명사장은 대수롭지 않게 털어놓았다. 아버지에게 간병을 오는 여인이 자신의 잠자리 접대도 한다는 것이다. 이혼 후 혼자 지내는 세월이 길어지다 보니 여자가 필요하게 되었고 대가를 적절하게 지불하면 여인이 어렵지 않게 허락을 했다고 한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는 관계가 어느 날부터 시작되었고 지금은 모든 게 자연스러워졌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던 아버지가 어느 날부턴가 이유도 없이 화를 내는 걸 보고 여인의 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굳이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자신은 혼자서 썩어가기에는 아직 젊고 아버지는 그걸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의 일에 대해서 공감도 반감도 갖지 않았다. 단지 그런 말들을 나와 둘이 있을 때 털어놓는 것으로 보아 그가 그런 일을 자랑스러워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일전에 아버지가 밤에 나오셨더라는 말을 전했다. 그 일에 대해서도 명은 대수롭지 않게 대했다. 가끔 그러실 때가 있다. 자신이 좀 더 주의 깊게 지켜봐야 되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멍청한 개가 아버지를 보고 짖지도 않으니 혼자서 가만히 나가시면 알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집안에 모셔다 드린 것은 고맙다고 인사 비슷한 말을 했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밤나무 숲을 바라보았다. 나무는 사람들의 일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평화롭게 숲을 이루고 있었다.

“날씨 좋네.”

명은 어색한 침묵을 깨고 싶은지 의미 없는 말들을 중얼거렸다. 나는 숲에서 나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새 울음소리는 숲속에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나는 어쩌면 어느 날 저녁에 손님들이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예고를 했다. 명은 알아서 하라고 했다. 혹시 다음 달 고지서에 전기료나 수도세가 많이 나오면 그건 알아서 처리해 달라고 했다. 우리가 펜션에서 머무는 숙박료는 구와 명이 적당히 알아서 하는 중이므로 상관없지만 카페에서 손님을 받는 것은 복잡한 계산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명은 복잡한 계산은 평생에 피하면서 살아온 일이므로 모르겠다고 했다. 관리비 고지서나 밀리지 않는다면 그 다음 일은 그때그때 상황 봐가면서 원만하게 처리하자고 했다. 카페를 운영해보라고 제안하던 때의 진지함에 비하면 그는 의욕이 한풀 꺾여 있었다. 우리의 성향이 어떤지 대충은 파악이 됐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업 제안은 포기하기로 한 것인지도 몰랐다.


구에게는 헤어진 여자에게서 난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 애가 태어나기 전부터 구와 민과 나의 관계가 시작되었으니 아이는 우리에게 각별한 존재였다. 어느 날 구가 아이를 데리고 카페에 왔다. 열 살배기 아이는 동그랗고 하얀 얼굴로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민과 나는 번갈아 아이를 안으며 아이를 반겼다. 아이는 아빠와 닮은 얼굴이었지만 떨어져 살았기 때문인지 어느 새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표정을 가끔 지어 보였다. 부모의 순탄치 않은 삶이 어린아이에게도 그늘을 만드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카페 구석구석을 보여 주었다. 먼저 긴 철사 줄로 집을 한 바퀴 돌 수 있게 만든 목줄을 묶은 개를 보여주었다. 아이는 처음에 가까이 하지 못하다가 조금씩 손을 내밀어 무성한 등덜미 털을 어루만지며 놀았다. 개는 긴 혓바닥을 내밀어 아이의 얼굴에 침을 묻혀 놓았다. 도시에서 사느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개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 아이는 개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놀았다. 철사 줄에 묶여 있는 고리를 풀어서 셋이서 산책을 하기로 했다. 개는 오랜만의 산책이 즐거운지 목줄을 잡아당기며 달려 나가려고 했다. 아이는 목줄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개를 잡아 끌었다. 개가 달려 나가려고 하자 힘에 부치는지 나에게 도와달라는 시늉을 했다. 우리는 밤나무 숲으로 갔다. 한낮의 태양은 벌써 뜨거워지고 있었다. 숲속에 들어가서 개를 자유롭게 풀어놓아주고 싶었지만 어디로 달려 나갈 지 알 수 없었고 멀지 않은 곳에 찻길이 있어서 나뭇가지에 끈을 걸어두기로 했다. 아이는 크지 않은 숲속에서 기분이 좋아보였다.

“와, 여기 좋다!” 아이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저씨, 여기서 살아요?” 아이는 궁금하던 것을 참고 있었다는 듯이 뜸을 들여 물어보았다.

“응. 아빠와 같이 여기서 사는 거야. 저기 보이는 저 집에서.”

나는 우리가 지내는 펜션 건물을 가리켜보였다.

“그렇구나. 여기서 무슨 일을 하는데요? 아빠와.”

“아무 일도 하지 않아. “우리는 그냥 있는 거야.”

“그래요?” 아이는 그런 말은 처음 듣는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응. 그냥 지내는 거야.”

“그럼 돈은 어떻게 벌어요?”

“돈?”

“네. 돈이 있어야 살 수 있잖아요.”

“그런가, 우리는 여기서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 그래서 돈을 버는 것도 잘 안하고 있어.”

“그래요? 엄마는 아빠가 가난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그건 아빠가 일을 안 하기 때문이래요. 가난한 건 나쁜 거고 그래서 엄마는 아빠와 같이 살 수 없다고 했어요. 아저씨는 부인이 있나요?”

“없어.”

“왜 없어요?”

“나는 혼자 있는 게 좋아.”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요.”

“그래도 혼자가 좋아. 넌 아빠가 어때?”

고수머리가 찰랑거리는 이마에 나뭇잎 하나가 떨어져서 아이는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아빠와 같이 살고 싶어요. 하지만 엄마와 싸우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안 보는 게 좋을 때도 있어요. 가끔 혼자 있는 엄마를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빠는 왜 엄마를 힘들 게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 아빠가 좀 미울 때도 있어요. 많이는 아니구요. 여기는 참 좋네요. 여기서 아빠와 엄마와 같이 살면 좋을 텐데.”

“그러게. 하지만 아빠에게도 계획이 있을 거야. 아빠는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하니까 기다리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

“그럴까요? 아빠가 나 때문에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는 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생각에 잠긴 듯 한 모습이었다. 펜션을 걸어 나오며 아이를 찾는 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에게 엄마 얘기했다는 건 비밀이에요. 아빠가 싫어할 거예요.”

“오케이!”

아이는 아빠가 있는 쪽을 달려갔다. 나는 나뭇가지에 걸린 개의 목줄을 풀어서 개와 함께 숲을 걸어 나왔다.

아이의 갑작스러운 질문 때문에 나는 한때 만났었던 여자가 생각났다. 제대로 된 만남을 가졌던 것인지 확신이 서지는 않지만 어쨌든 교재라고 부르는 것 외에 다른 말로는 이름 붙일 만한 게 떠오르지 않는 어중간한 만남이었다. 여자는 주말마다 어딘가에 무엇인가를 배우러 다녔다. 그녀가 배우는 것은 주로 미술과 관련된 것이었다. 본격적인 그림을 배우러 다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림과 관련이 있는 무언가를 수강료를 내가며 열심히 배우려 다녔다. 그녀가 사는 곳은 서울 외곽의 작은 도시였고 강의실은 서울 한복판에 있었다. 우리는 그녀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만났다. 만났다기보다는 지하철에서 내린 그녀를 집근처까지 승용차로 태워다 주는 게 만남의 전부였다. 우리는 어떤 사이였을까?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나를 만났던 것일까? 시간이 넉넉한 날에는 길가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 그녀나 나나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시간이 남고 식당 간판이 보이면 아무 곳에나 들어가 밥을 먹었다. 우리는 무슨 대화를 나누었던 것인가. 세월이 흘러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녀는 내가 좀 더 적극적이길 기다렸던 것일까. 벚 꽃잎이 흐드러지게 피던 어느 봄날 그녀는 차에서 내려 걷고 싶다고 말했다. 꽃잎이 흩날리는 공원길을 걸으며 그녀는 자신이 배우는 미술품 감상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떠오르지 않지만 꽃이파리처럼 조용한 음성이 우리가 걷던 길가에 나지막하게 깔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가 자신이 없었던 것은 사랑에 대해서가 아니었다. 망설이던 나를 끝내 일으켜 세우지 못한 것은 현실적인 문제였다. 자존심 때문에 미처 말하지 못했던 부족한 것들이 내 용기를 막아 세웠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그녀의 처분만을 기다렸던 것일까. 어쩌면 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았어도 괜찮았을지 모른다. 미처 정리되지 않는 혼돈의 순간이 끝없이 이어지던 어느 날 그녀는 더 이상 마중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조용한 이별을 고했다. 나는 아직 해야 할 말이 남아 있는 것 같았지만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건 없었다. 이별은 힘들지 않았지만 여운은 오래 남아서 나의 다른 만남을 한없이 유예시키고 있었다. 나는 되도록 편안한 길을 택했다. 필연적으로 고민을 동반하는 남녀의 만남은 나에게 점점 자신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비가 오는 겨울날 허전해서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를 차에 태우고 짧은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가벼워지고 싶어서 떠난 여행이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여자는 말했다. ‘아저씨, 빨리 애인 있어야겠다.’ 나는 허전함을 견디는 법부터 익혀야했다. 여자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듯 숲 그늘에서 벗어나자 아빠를 따라 차에 오르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구의 얼굴은 침울해보였다.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쓰라린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은 고통을 인내하고 있는 중인가. 우리 셋 다 안지가 꽤 오래다고 느끼지만 정작 어떤 부분에서는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하겠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나 역시도 두 사람에게 그렇게 보이기가 다반사일 것이다. 나는 아이의 조그만 손을 잡고 흔들어 이별의 악수를 했다. “또 놀러 올 거지?”

아이가 결정할 문제가 아닌 걸 알지만 이별이 아쉽다는 느낌을 그렇게 전했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운전석의 아빠를 돌아보았다.

“아저씨한테 인사해야지.”

구는 선글라스를 꺼내 귀에 걸며 아이에게 말했다.

“안녕히 계세요. 다시 오고 싶지만 될런지 모르겠어요.”

아이답지 않게 논리정연한 말에 나는 약간 긴장을 느꼈다.

“그래. 다음에 오면 개울에 가보자. 물고기를 구경할 수 있을 거야.” “네.”

아이는 들뜨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갔다 올게 라고 말하는 구의 말과 함께 뒷좌석에 아이를 실은 차가 점점 멀어지는 걸 한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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