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지지 않는 신발을 신고 당포성에 올랐다. 나무는 한쪽 다리를 잃은 것처럼 서 있었다. 강바닥을 훑고 올라온 바람이 가지를 마구 흔들었다. 나무는 수심에 잠긴 군사를 닮아 있었다. 건너편의 적들은 이를 갈고 있었다. 주상절리 깎아지른 지른 벼랑에 투신하는 폭포는 흐릿한 무지개를 논벌판에 띄우고 있었다. 청색 불꽃으로 타오르는 논바닥엔 어린 종아리를 빠는 굵은 거머리가 살았다. 화염을 머리에 이고 모를 내는 어른들을 따라 다니다가 총알에 맞을 뻔한 일이 있다. 고구려 군사가 적을 노려보던 그 언덕에 군대 사격 훈련장이 있었다. 총알은 훈련에 열중하는 병사의 총구에서 날아와 거머리를 떼어내던 내 발 앞에 떨어졌다. 고향집 서낭당 느티나무처럼 늙은 어머니가 자식을 기다리는 밤을 생각하는 군사의 시절로부터 대략 1500년 지난 시절, 총알은 내 발 앞에 떨어져 생존에 어리숙한 나를 화들짝 깨워놓았다. 그 때는 죽는 것의 의미도 몰랐었다. 군사는 죽는다는 말의 거머리 같은 단호함을 알았을까. 훈련장에서 사격을 마친 병사는 교관의 지시에 따라 자세를 바로 하고 쇠젓가락처럼 뜨거운 총구가 식기를 기다렸다. 논바닥에 박힌 총알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글거리는 눈알을 부라리고 있었다. 그 때 절벽의 이 편과 저 편을 잇는 무지개가 떠 있지 않았다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중학교에 다니던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검정색 교복을 옷걸이에 단정히 거는 모범생이었다. 책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옥수숫대를 썰어 소를 먹이는 농부인 아버지의 뒤를 영원히 이어야 한다고 믿는 착한 막내였지만 이마에 난 여드름 같은 세월의 한 꼭지를 꼭 따먹고야 말겠다는 앵두같은 야심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느티나무 아래서 하염없는 세월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영상을 밤하늘 별에게서 보는 날, 군사는 차돌 같은 눈물을 팽나무 잎사귀에 꼭꼭 싸서 강물에 띄워 보냈다. 그 물이 굽이굽이 흘러 고려 태조 왕건 사당인 숭의전 앞을 빠르게 지나 펑퍼짐한 서해바다로 빠져나갈 적에, 나의 친구는 한강 하구 앞바다를 지키는 용감한 국군이었다. 친구는 해마다 수능 보는 날이 제일 무섭다고 했다. 시험을 망친 여자애들이 긴 머리를 풀고 한강에 뛰어들면 삼일 후에 부대 앞 펄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가위 바위 보로 수습 병사를 정하다가 내기에 진 놈이 두 손을 싹싹 빌며 애원하면 결국 경험 많은(?) 내 친구가 들어갔다고 한다. 갯벌 수렁에 빠져도 끄집어 낼 수 있게 허리에 긴 줄을 동여매고 지난 주에 수능 본 여자애를 꺼낼 적에 가까이 가서 두 눈을 질끈 감고 오로지 손의 감각으로 더듬어서 머리채를 움켜 쥐고 눈물을 삼키며 끌고 나왔다고 한다.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슬픈 바다는 먹먹한 먹구름 몇 장 띄워 친구의 걸음이 깊은 곳에 빠지지 않게 뒤에서 밀어주었다고 한다. 병사는 총구의 열기 때문에 손바닥이 익는 것도 모르고 교관의 불호령이 무서워 다리를 떨고 있었다. 뱀의 눈알 같은 총알을 장전하고 표적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길 때 귀바퀴를 후려치는 소리가 무서워 눈을 감고 쏘았더랬다. 아무 곳에나 대충 쏘면 사람 형상을 한 표적에 맞지 않고 부드러운 흙무더기나 나뭇잎 같은 곳에 명중하여 멀쩡한 세월이 이어질 거라 믿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병사의 총알은 한 발도 표적에 닿지 못하고 팔꿈치 살가죽이 벗겨지도록 기는 벌을 받았던 것인데, 입에서 개거품이 나도록 힘들다가도 교관에 비하면, 대학에서 문학을 사랑하는 동아리에서 별을 보며 릴케를 속삭이던 한 여자를 생각하며 군화발의 타는 냄새를 견뎌냈던 것이다. 강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럴 때 성난 강물은 강가에 사는 사람들의 흔적을 쓸어 담아 포효하는 범람원이 되어 마을을 휩쓸었다. 강변 들판에 매어 둔 누렁소가 앞발을 높이 들고 살려 달라 울었지만 실성한 강물은 행로를 바꿀 마음이 없었다. 뒤집어 진 나룻배에 매달린 사람들은 개미처럼 노를 저어 평생이 걸려도 정든 나루에 닿지 못했고 마당 넓은 초가집은 부글거리는 수심 아래서 회돌이를 했다. 나는 꿈이 많은 잠을 잘 때마다 뒤축이 닳고 번개소년 아톰 장식이 붙어 있는 운동화를 찾으러 황토색 물가를 서성이곤 했다. 집안은 늘 어수선했다. 장마철이 아니어도 분란이 넘쳐서 차라리 강물의 포효가 위안이 되고는 했다. 눈을 질끈 감고 지난 일들을 잊자고 청춘의 골목마다 어둑한 곳으로 뛰어 들었다. 오랜 만에 만나는 고향 친구와 어릴 적 얘기를 나누면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소줏잔 만한 위안을 느끼고는 했다. 발등에 총알의 흔적이 남지는 않았지만 살면서 죽을 뻔한 사연들을 풀다보면 두서 없는 군대 얘기가 머리채를 잡혀 끌려 나와 술자리가 질펀해졌다. 어린 군사는 어머니 생각을 못 이겨 언덕에 팽나무 한 그루 심었다 하자. 나무가 자라 모진 강바람에 버틸 적에 차마 놓을 수 없는 어머니 생각을 한 가지에 걸어두었다 하자. 비탈에 잡풀처럼 쌓인 기록들은 백 년을 못 이기고 스러지지만 한 그루 비틀린 나무는 어떻게든 살아 남아 기다리는 사람에게 향하는 질긴 응시를 놓지 않았다 하자. 길을 막는 비가 왔음에 무성한 풀을 잡고 언덕을 올라 팽나무 아래 서서 흘러가서 오지 않는 것들을 떠올린다. 얼마나 더 흘려 넣어야 삶은 고요한 수면에 파문 하나 남기고 사라질까. 별들이 총총한 하늘을 작은 수첩에 그리는 아이는 별빛이 먼 과거에서 왔음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귀여운 나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별자리의 도형을 그리다가 잠의 입맞춤에 파묻히는 포근한 여행. 젊은 부모는 별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에 천 년 전쟁을 어떻게 담을까. 나무는 생각 깊은 사람처럼 턱을 괴고 서서 둘러 선 사람들을 보았다. 혼자만의 자리에서 숱한 풍상을 겪었기에 중심이 기운 나무는 어딘가 다른 곳에서 쉬고 싶은 것도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세상에 우연히 서 있는 나무는 없었다. 모두가 있어야 할 곳에 서 있는 것이다. 모든 일의 시작이고 끝인 나무 뿌리에 이끼 끼고 칼바람 불어도 달리 비켜설 자리가 없는 최후의 보루가 여기인 것이다. 불화살 쏘는 적군을 목숨으로 막아 냈고 아슬아슬한 시절을 용케도 잘 견뎠으며 은하수 별자리의 꿈을 싣고 강물처럼 흘러가야 할 숙명의 바람터, 우리는 그 자리에서만 온전한 한 그루 팽나무로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