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초대해 밥을 차렸다. 양식 조리사로 일을 하는 친구는 한식에도 탁월한 능력을 가져 늘 한식으로 상이 부러지도록 차려준다. 매년 생일 즈음에도, 특별한 것 없는 날에도, 뭐해?라는 연락에도 밥 먹자 집에 와. 하고 말한다. 친구가 해주는 밥을 얻어먹는 게 익숙할 만큼 조리사로 일하면서도 집에서도 음식을 만드는 천상 조리사였다. 친구 앞에서 한식 밥상을 차리는 건 마뜩잖은 것 같아 불고기와 밥과 김치를 내려던 밥상을 불고기 파스타로 바꾸었다. 샐러드를 담고, 언젠가 만들었던 채소 피클을 꺼냈다. 커다란 꽃다발을 가지고 집에 방문한 친구와 신나게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상을 물리며 코로나를 관통하는 이 시절과 별개로 40대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39.9세.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나는 친구와 같은 40대가 된다. 먼저 40대가 된 친구는 40대가 된 후로 병원을 참 많이 들락거렸다. 아프면서 일상적 일상을 영위하는데 온 힘을 다해 사는 사람이 되었다. 조금만 아파도 괜찮아지겠지 넘기는 게 아니라 병원을 정기적으로 다니고, 밥을 꼭꼭 제대로 챙겨 먹는 사람이 되었다. 아팠던 친구 덕분에 보험은 몰라요 하고 외면했던 나는 실비보험이라는 걸 들게 되었다. 친구가 담당 보험 설계사님을 광장에 보낼 정도로 적극적으로 걱정하며 잔소리한 결과였다. 실비보험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연금과 적금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20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순간의 투자와 보험, 그리고 40대에 준비해야 될 것들에 대해 회사를 꾸준히 다니면서, 4년쯤 더 살아본 이야기가 이어졌다. 요즘은 모두가 주식투자, 부동산 투자를 얘기하는 와중에도 우리는 어떻게 또 다른 노동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와 노동을 멈추는 순간부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될까에 대한 이야기가 주였다는 게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었달까?
요식업처럼 몸을 움직여 노동하는 직업은 일할 수 있는 시간의 한계가 뚜렷했다. 그에 반해 실체적 임금 상승에 대한 기대는 어두운 직업이기도 했다. 자영업을 시작하는 건 또 다른 위험 혹은 성공이라는 두 결과에 대한 투자이기에 아무리 요리를 업으로 삼은 사람이라고 해도 창업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요즘 셰프 테이너라고 일컫는 요리가 직업이면서 엔터테이너가 된 사람들이 방송가에 심심치 않게 보여지는데, 그 또한 조리 노동을 하는 사람이 노동으로 재창출하는 노동 재테크가 아닐까? 요리뿐 아니라 다양한 예능 콘텐츠에서 소비되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우리는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 우리는 어떤 방향의 노동으로 앞으로의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 막막함만 마주 했다. 대화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그래서 모두 재테크를 하려고 하는 거겠지? 그럼 우린 뭘 할 수 있을까로 이어졌다.
내일모레도 아닌 바로 내일부터 40대가 되는데, 나는 얼마나 요리를 하며 살 수 있을까? 친구는 얘기했다. 그래도 너는 책을 내기도 했고 글도 쓰고 있으니 그걸 제2의 직업으로 삼는 건 어떠냐고. 언젠가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딱 한 권의 책을 내면서 세상에 이렇게 가성비 떨어지는 일이 있단 말이야? 하고 놀랬다. 21세기, 콘텐츠가 쏟아지는 디지털 사회에서 책을 쓰는 일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 낼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었다. 펜보다는 팬을 들고 종이보다는 도마를 까는 일이 확실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수단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 부분에 나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글을 써서 살아나가는 작가들을 보면 경외심을 지울 수 없다. 어떤 글을 생산해내든 간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건 기분과 상황을 인지하고 이해하고 글로 남기는 자체가 즐겁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휴가는 일주일쯤 남았지만 출근할 날은 그보다 적게 남았다. 그 일주일 여 어떤 주제로 어떤 이야기들을 담아내게 될까. 생각보다 소소한 부분에서 많은 이야기가 이어진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 글들을 읽는 사람이 어떤 기분으로 읽고 소화하는지도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