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 친구들에게 줄 떡 만둣국을 끓였다. 냄비를 달구고 참기름에 잘게 썬 쇠고기를 볶는다. 사골육수 팩을 넣고 물을 더해 끓여준다. 그 사이 준비할 건 마늘을 다지는 일과 파를 잘게 써는 일이다. 국물이 끓어오르면 냉동만두와 떡을 넣고 끓여준다. 파와 마늘도 함께 넣어주고는 멸치 액젓으로 간을 맞추면 끝이다. 먹는 방식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액젓 맛을 좋아하는 편이라 소금을 넣지 않고 액젓으로만 오롯이 간을 맞춘다. 이제 떡과 만두가 익을 때까지 끓여주면 된다. 떡이 육수 위로 끓어오르면 거의 끝이다. 이번엔 만둣국을 위해 동그랗고 도톰한 만두를 샀더니 익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만두 덕분에 떡이 불진 않을까 조금 걱정하며 각각의 그릇에 옮겨 담아 한 상에 둘러앉았다.
맛있게 끓여진 떡만둣국을 함께 먹으며 이거 먹으면 한 살 먹는 거잖아요. 나는 만 나이로 세는데요? 20대의 친구들은 나이를 더 먹긴 싫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따지면 난 만으로 38세인데, 그냥 40대인 게 좋다고 했다. 농담처럼 그럼 세배해야겠네, 하는 말이 시작되었고, 아침부터 떡만둣국을 이렇게 끓여줬으니 세배 정도는 받아도 되는 거 아닌가요?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진짜로 받을 거냐고 묻기에 진짜로 받겠다 하니 벌써 40대 꼰대라고 놀림을 받았다. 의미심장하게 ‘in to the 꼰대’하고 외치자마자 질색을 하던 친구들은 밥을 다 먹고 이야기 나누던 상을 옆으로 치우고 자리를 잡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1년 새해는 귀여운 친구들에게 세배를 받으며 시작했다. 세배하기 무섭게 용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모습은 귀엽지 않았지만요?
오늘부터 드디어 40대가 되었다.
무엇보다 2020년이 전날의 시계가 12시를 가리킨 후부터 땡! 하고 코로나 세상이 원래의 세상으로 바뀌길 바랬다. 엄중한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39세든 40세든 30대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는 것보다 코로나는 언제 끝나나를 더 많이 생각했다. 아직도 백신의 문제들이 뉴스에 나오고 코로나 거리두기는 연장될 거라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올해는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거부할 수 없는 물리적인 선을 넘는 건 타의였지만, 2020에서 2021이라고 숫자 하나만 바뀌었는데 희망이라는 단어가 불쑥 떠오른다. 무엇보다 나이를 먹는 게 좋다. 40대가 기대된다. 삶을 살아오면서 10대보다는 20대가, 20대보다는 30대가 훨씬 편안하고 안정되어서 그랬던 것 같다. 직업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안정된 것보다 어떤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태도를 보이는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느꼈던 것 같다. 사회적으로 무얼 해도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하는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게 무엇보다 나이 먹는 것의 장점이었다. 환경과 사회, 혈연과 지역에서의 한정된 선택지가 아니라 무한하게 결정할 수 있는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나 스스로 선택하고 방향을 잡아 나가는 게 재미있었다. 늘 그 선택들이 옳거나 행복한 결과만을 낳게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패한 선택이라고 해도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똑같은 선택을 했겠지 뭐 하고 웃으며 넘어갈 수 있을 만큼 나 자신을 신뢰하게 된 것이 30대를 살아내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물론 30대에도 10대, 20대 때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인간관계를 겪고, 피하고, 마주하고, 싸우며 지냈지만, 내 감정에만 사로잡혔던 20대보다는 적어도 스스로 납득할만한 삶이 살아진 게 30대였던 것 같다.
불혹 ;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
여전히 화를 잘 내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참는 일이 익숙해지지 않지만, 친한 친구가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별명을 붙여준 10대나 20대보다는 유연하게 30대를 보내고 나니 40대가 기대된다. 더 즐거운 40대가 되려면 조금 더 살뜰히 주변을 예민하게 살피고 고정관념, 혹은 편견들에 매몰돼 이야기하는 건 아닐까를 일상적으로 의심하고 다시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도 새해부터 꼰대라고 놀리는 친구들이 옆에 있는 한은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애라도 쓰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나이는 거저먹는 것이니 나이를 먹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도 답이겠다. 30대와 40대를 이렇게 나누며 주절주절 읊어대다니 역시 새해답다.
인스타그램 댓글에 조선학교 관련 혐오 발언이 달리고 삭제하고 집어 든 책. 책의 머리말 첫 문 시작이다.
조선학교. 한국사회에서 이 이름은 어떤 울림을 가질까. 여전히 북한학교나 조선시대 서당 정도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이제는 한국에서도 재일조선인 민족교육 기관으로서의 조선학교로 많이 알려져 있다.
책은 조선학교에 대해 가장 큰 오해인 ‘북한학교’가 아님을 먼저 이야기한다. 혐오발언을 단 사람들은 북한의 인공기와 초상화 등을 빌미로 이야기하지만 근본적인 무지를 당당히 드러낼 뿐이다. 사소하게 야간학교나 마을학교에서 가르치는 우리말도 있었지만 본격적으로는 광복을 맞고 귀국할 생각에 경험해보지 못한 조국의 언어를 잘 가르쳐야 한다는 이유로 학교를 만들고 모여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쳤다. 고국으로 돌아갈 희망은 전쟁과 분단이 망쳤고, 가난했던 남쪽 정부가 외면하며 완성된 조선학교 차별의 역사에 대해 반성은 하지 못할망정 망언들을 쏟아내는 사람들의 가벼움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차라리 일본인이라면 그 무지에 대해 내가 부끄러워할 일은 없을 것 같다. 투쟁과 차별의 역사를 촘촘히 기록해 놓은 300페이지가 넘게 기록된 활자들을 읽으며 영화 <우리 학교>로 재일조선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던 그때와는 또 다른 의무감이나 책임감으로 마음이 단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