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단골손님들의 주소를 받아 연하장을 보낸다. 올해 자주 와 눈에 익은 손님들과 요즘은 자주 오지 못해도 이전에 연하장을 보냈던 손님들에게 일정 기간 주소를 받는다. 매년 보내는 손님들은 아, 그 때군요. 하고 선뜻 주소를 적어주는데 처음 물어보는 손님들은 주소를 왜요? 하고 경계심을 갖기도 한다. 딱히 나와 교류가 있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주소를 묻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단골손님에게 보내는 연하장이다.
늘 연하장에는 고맙다는 말과 반가웠다는 말을 제일 많이 쓰는 것 같다. 딱히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아도 조용히 광장을 찾는 분들에게 보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 엽서가 어쩌면 의례적인 홍보용 인사로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그 손님을 생각하며 하나하나 손으로 써 내려가는 엽서를 단순한 단골손님 관리용이나 홍보용이냐고 묻는다면 그 노력이 아까울 것 같다. 한 번도 이야기 나누지 못한 사이지만, 광장이라는 공간을 아껴주고 좋아서 몇 번이나 찾아주는 마음을 느꼈기에 연하장을 보내고 싶다고 말을 나왔을 것이다. 매년 한 번 보내는 그 연하장을 시작으로 광장을 이용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올해 연하장에는 유난히 힘과 용기라는 말을 많이 썼다. 그만큼 움직이기 힘들었던 코로나 거리두기 기간의 연말이었다. 어떤 해라도 연말이 되면 괜히 들뜨고 사람들과 만나고 안부를 묻는 분위기에 요식업계는 들썩이기 마련이었는데, 올해는 참 조용히도 지났다. 조용한 광장에 울리는 캐롤만으로 연말을 느낄 수 있는 건 여기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손님도 있었으니까. 광장은 원래부터 5명 이상은 출입이 되지 않는 곳이었지만, 소소하게 모이는 모임조차도 되도록 모이지 말라, 연말 모임은 모두 취소하라. 하는 강력한 조치들에 더욱 발걸음은 겨울 날씨보다 더 꽁꽁 얼어붙었던 것 같다. 덕분에 매년 100명 내외로 주소를 받아 연하장을 쓰던 리스트가 50명도 채워지지 않았다. 그분들의 발걸음에 유난히 용기를 얻었고 그래서 그 마음을 더 꾹꾹 눌러 담고 싶었던지도 모른다. 아르바이트생들도 쉬고, 영업시간도 단축된 광장을 혼자 지키는 시간들이 길었던 올해,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눈 순간순간들이 떠올라, 어쩌면 기계처럼 써 내려갔던 어떤 해의 연하장보다 올해는 더 마음을 깊게 담은 것 같다. 몇 분에게는 너무 감정이 실린 것 같아서 새 엽서를 꺼내 다시 써 내려가기도 했다.
2020년 광장에서 나는 지독하게 외로웠고, 언제보다 뜨끈하게 애정을 느꼈다. 그 마음을 담고 보내는데 시간이 꽤 걸려 평소에 연하장이 오던 시간에 목 빠지게 기다릴 손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다. 엽서를 쓰기 전에는 휴가라고 해도 나의 삶은 광장이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엽서를 하나하나 써 내려가면서는 올해는 정말 몇 장 쓰지 않는구나, 하고 섭섭한 기분마저 들었다. 부디 받는 사람들에게도 그 마음이 전해지길 빈다. 하루 종일 마음을 다해 연하장을 쓰다가 깊은 낮잠을 잤다. 깊은 잠 뒤에 다시 앉아서 연하장을 써 내려갔다. 아직 몇 명의 사람들이 더 남았는데 오늘의 마음 쓰기는 여기가 끝인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은 가벼운 이야기를 읽고 싶어 간지럼 태우기라는 귀여운 제목의 책을 골랐다.
요즘의 에세이를 읽으면 늘 세상에서 제일 쿨한 사람처럼 엄마와 아빠의 이름이 친구의 이름처럼 쓰여 있다. 일간 이슬아 이후의 유행 같은 걸까? 하고 생각했다. 그 댁만 특이한 관계일까 생각해 보기도 하고, 소위 말해 글로 뜬 작가의 스타일을 카피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떤 때는 밀레니얼 세대의 쿨함이란 이런 것일까? 하고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몇 권을 더 지내보며, 그리고 그 세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알았다. 내가 부모와 보내던 시절과 관계성이 달라진 것을.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내가 겪어본 그때의 부모가 아닌 것이었다. 부모와 태도가 다르니 당연히 부모를 대하는 자식의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편견을 내려놓고 80년대 생보다 더 가난하고, 더 힘들다는 90년대 생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보다 더 진하게 삶을 살아온 양다솔 작가는 가난해도, 아빠가 출가해도, 아르바이트에서 잘려도 덤덤히 대응하고서 울음을 터트리는 곳은 겨우 치과 치료에서다. 어렵고, 잘 모르겠고,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쿨하게 덮어두고 넘겨야 오히려 단단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일까?
간지럼 태우기라는 제목과도 참 다른, 간지럼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글을 읽으니 내 속에서 그 세대를 표현할 수 있는 쿨함, 혹은 쿨한 척이라는 단어의 가벼움에 조금 무게 실린 서글픈 마음이 담길 것 같다.
P.7
서문 / 이미 태어난 지 이십오 년이 되었다. 누군가는 무얼 시작해도 좋을 나이라 하고, 누군가는 어느 정도 인생의 방향이 잡혀야 하는 나이라 한다. 내게 묻는다면, 온갖 할 일을 다 정해놓았는데 한 11시쯤 눈을 뜬 기분이다. 대단한 것을 하기에는 늦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기도 애매한 때.
P. 9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정말이지 많은 노력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찾는 것조차도 너무나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도 아주 운이 좋아야 겨우 그걸 할 기회를 얻게 되겠지.
P.118
어느새 나의 볼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 앞에 명확히 실존하는 묵직한 가난은 그 글에서 너무도 지루하고 뻔한 어조로 비참하게 서술되고 있었다. (중략) 비극은 쉬웠다. 비극은 이야기 자체가 아닌 앵글에 있었다. 장학생으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날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그리고 경쟁에서 젖혀진 나보다 덜 임팩트 있는 가난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신청서 위에서 죽어버렸을 수많은 희망의 순간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가난하기 이전에 한 명의 학생으로서 캠퍼스를 누비고 있을 나의 친구들을 생각했다.
P.150
언젠가 나의 친구는 누군가이 한 마디와 어떤 한순간이 자신을 살게 한다고 했다. 나는 말과 순간을 야금야금 먹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상상했다. 나도 그 말로 며칠을 살았다. 흔히 죽기 직전에 가장 소중한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고 한다. 물론 결론적으로 죽지 않은 자들의 말이다. 그들은 그 경험이 자신을 통째로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비로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