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다섯째
; 차별과 혐오

by 광장장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 홍승은


p.012 왜 사랑은 꼭 연애라는 이름표를 달아야 하며, 왜 우리는 영혼의 반쪽을 찾아야 온전해진다고 믿게 된 걸까. 왜 나를 돌봐 주던 무수한 관계 중에 연인과 가족만이 가장 가치 있는 관계로 인정받을까.


p.016 관계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이어서 내 경험은 딱 그만큼의 한계가 있겠지만, 그래도 당신은 비슷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작은 위안이 되면 좋겠다. 이상해도 괜찮다는 남들에게 이상한 사랑이 나에게는 이상의 사랑일 수 있음을 믿게 되길 바란다.


P.168 나는 다만 정상이라고 믿어 왔던 관계를 벗어나 다르게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뿐이야.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사랑하고 싶었으니까. 나를 드러내는 일은 네 사랑을 위협하는 일이 아니야. 그리고 네가 걱정할 정도로 내 존재를 위협하는 일도 아니고. 정말 나를 위협하는 게 어떤 시선인지 생각해 줄래? 그러니까 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도 네 걱정은 하지 않을게.


P.176 사회에서 승인되는 '정상적인'연애와 결혼의 정의는 무엇인지, 누가 그 정의를 정의했는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질문해야 한다. 그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얼굴을 비정상으로 만들어 지웠는지도 함께 질문해야 한다.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페미니즘 없는 폴리아모리는 가능한지, 평등 없는 자유는 가능한지 묻게 된다. 우리는 역사와 사회적 규범의 연속선에 존재하며, 결코 진공 속에 존재할 수 없으니까. 나는 그림자가 없는 방향으로 자유롭고 싶다.


P.252 비혼은 결혼하지 않을 자유와 더불어 누구든 원하는 상대와 결혼할 권리, 원하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 결혼하지 않아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 어떤 형태의 관계든 차별받지 않을 권리,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족을 가꾸기 위한 나의 약속, 나아가 가족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로 시민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요구를 포함하는 운동으로 확장된다.


P.179 나는 인어공주가 되고 싶지 않다. 왕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지느러미를 다리로 바꾸고, 목소리를 잃고, 정든 바다를 떠나 육지를 선택하고, 결국 물거품이 되는 인어공주처럼 사랑하고 싶지 않다. 나를 지우는 사랑이 아닌 나의 토대에 단단하게 발 딛고 걸어가는 사랑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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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은 구절구절들을 곱씹게 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책에는 폴리아모리는 물론 많은 소수자들을 설명하는 단어들과 함께 한 여자와 두 남자가 함께 사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세상이 정해놓은 규정이 아니라 스스로 그리고 함께 규칙을 만들어 나가는 삶을 보여준다. 책 내용 중에 SNS에 그들의 가족사진을 올렸고 응원의 댓글들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검색해서 보았다. 겨우 2주 SNS를 하지 않기로 한 거라 네이버로 찾아봤는데 크게 나오지 않아 할 수 없이 책에 나온 인스타그램을 켰다. 한참만에 들어온 인스타그램에 다양한 알람들이 함께 울렸다. 책에서 생각한 것보다 더 귀여운 세 명의 사람 가족과 네 마리의 강아지들이었다. 그 귀여움만 취하고 얼른 껐으면 좋았을 걸, 가득한 알람 창을 누르는 순간 기분이 상했다.


매주 화요일 점심시간 1시간,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한다. ‘조선학교 차별 반대’ ‘고교 무상화 적용하라’ 일본에서 시위하는 시간에 맞춰 우리도 함께한다는 의미로 일본대사관 앞에 모인 지 벌써 몇 년이다. (코로나 2단계 이후 영업시간 조정으로 함께 하지 못한지도 몇 달 됐다.) 벌써 10년 가까이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집회를 여는 M님과 시간이 될 때마다 모이는 몇 명의 사람들이 모인다. 1시간을 현수막과 판넬들로 서 있고, 대사관 직원들은 항상 사진을 찍어간다. 넉살이 좋은 M님은 '우리 사진도 좀 찍어주세요'라고 부탁하고 그 사진들을 광장의 SNS에 공유하며 이런 차별도 있음을 이야기한다. '조선학교'라는 것이 눈에 익숙해져선지 손님들은 조선학교 이야기를 어디서 발견하면 반가워하며 나누었다. 어떤 손님은 TV에서 조선학교 이야기가 나오면 광장에서 봤어요 하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어떤 손님은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모임에 후원을 하기도 했다. 세상에 무수한 차별들이 많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의심해보지도 생각해보지 못한 나라와 민족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게 한 조선학교 차별의 상황들은 내 삶에 큰 울림을 주었다. 그래서 기회가 닿는 한 많은 사람들에게 '조선학교'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밥과 술을 파는 광장에서도 스스럼없이 사진을 올리고 차별반대 집회에 참여해 오고 있었다.

차별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는 책을 읽고 들어간 SNS에는 혐오의 글들이 쏟아져 있었다. 일본어와 한국어로 이어진 차별적 언어들이 댓글창을 채우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담론에 대한 이야기를 논리적인 발언처럼 이어나가고 있었다. 조선학교를 지지하는 모임,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것이 북한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그게 아니라고 조선학교를 지지하며 공부한 내용들을 열심히 설명했던 적도 있다. 어느 순간에는 화가 나 같이 혐오의 발언을 쏟아내고 인스타그램의 제지를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스스럼없이 신고를 하고 삭제한다. 혐오의 글, 공격을 위한 공격에 맞서는 것만큼 무용한 일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책을 집어 들었다.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 오늘 읽을 책은 이것으로 정했다. 어떤 반박을 할 생각도 없지만 내가 조금 더 잘 알고 이해하고 말하고 싶어서. 그리고 어떤 무지함을 유연하게 대처하며 보내고 싶어서기도 했다.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우리가 약한 것을 보호하고 차별하지 말아야 하는 건, 차별과 혐오는 차별과 혐오가 될 뿐이기 때문에서다. 다양한 담론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가질 수 있지만, 그 입장이 약한 것을 두드리거나 짓밟는 것이라면 의견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권력, 권력 남용이 아닐까? 휘두르는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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