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의 넷째 날
; 맛있는 추억

by 광장장


뒤늦게 맡긴 엽서가 생각보다 빨리 인쇄가 되어 나왔다. 연말 배송 물량에 밀려 혹시나 엽서를 내년쯤 받아 보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이렇게 빨리 나올 줄 알았으면 택배 신청을 할 걸 하고 후회를 했다. 귀찮지만 좋은 일이라면 며칠 전에 갔던 캐주얼 다이닝 펍에 다시 들릴 수 있겠다 하고 생각하는 것 정도였다. 인쇄물을 찾으러 갈 때 그곳에서 와인을 한 잔 마시리라 너무 맛있었던 푸아그라 트러플 무스의 맛이 입안을 채우며 입 꼬리가 올라갔다.


엽서는 생각보다 더 잘 나와서 기분 좋게 와인을 마시러 갔다. 아쉽게도 며칠 전에 맛있게 조리해 주셨던 셰프님은 휴무라 그 날 쉬었던 다른 셰프님만 계셨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광장의 인스타를 보셨다며 반가워하셨다. 그 날 마셨던 와인과 그 날 먹었던 음식을 그대로 주문했다. 셰프님이 달라져도 푸아그라 트러플 무스는 감동적인 맛이었고 한 잔만 마시고 저녁 약속 장소로 향할 거라는 계획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겨우 이틀 만에 다시 먹었는데도 감동적인 이 맛.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어떤 시절을 채워주던 다양한 음식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04..jpg <성수로운>


예전 홍대의 집 앞에 있던 쌀 국숫집, 광장의 책에도 SNS에도 늘 등장하는 하치는 도쿄를 여행하던 9일 중에서 정기휴무인 수요일 하루를 제외하고 매일매일 가서 오코노미야키와 야키소바를 즐겼다. 그때 한자를 전혀 읽을 수 없어서 일본 영화나 만화를 즐기며 눈에 익었던 두 메뉴밖에 시킬 수 없었지만 일본어를 공부하고 나서는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었고 도장깨기처럼 모든 메뉴를 시도하다 양배추 스테이크에 흠뻑 빠졌다. 지금은 광장의 시그니처 메뉴가 된 하치의 양배추 스테이크. (아 가고 싶다...) 20대 초반에는 인사동 구석에 자리 잡은 파스타 가게에 빠져 휴일마다 그곳에 갔다. 나중에는 모든 직원들과 알고 지낼 정도고 내가 왔다고 하면 주방장님이 나와서 인사를 건넬 정도였다. 지금은 누가 파스타를 먹자고 하면 특정한 두 세 곳 말고는 거절하는 편이다. 아마 평생 먹을 파스타는 그때 다 먹어서 그런 것 같다. 이렇게 맛있다고 생각한 음식에 지독하게 빠진 것들을 떠올리다 철판 닭갈비의 맛에 처음 빠졌던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친구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렀던 닭갈비집. 숯에 구워주는 춘천 식이 아니라 큰 철판에 양념이 자작하게 깔리는 그게 태백식이라고 하던가? 평창식이라고 하던가? 심할 때는 일주일에 4,5번씩도 가자고 해서 친구들이 질려할 정도였다. 어느 정도냐면 가게 앞을 지나칠 때면 사장님이 불러 세워선 더운데 음료수 마시고 가라고, 매번시원한 탄산음료를 건넬 정도였으니까.


다양한 음식들에 빠져 지냈지만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은 라면이다. 인스턴트 라면을 좋아한다. 인생을 통틀어 한 번도 질린 적이 없는 그 맛. 물을 올리고 라면과 스프를 넣고 수증기와 함께 냄새가 퍼지면 그때부터 코를 벌름거리며 입맛을 다신다. 면을 넣고 보글보글 끓여내면 아아... 보글 보글이라는 말은 라면을 위해서 만들어진 단어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절묘하다. 보글보글. 보글보글. 가끔은 김치를 가끔은 계란을, 어떤 날은 미역을 넣기도 한다. 다 끓인 라면을 가스렌지에서 내려 그릇에 옮겨 담고 젓가락을 든다. 후르릅, 금세 사라진다. 먹을 때마다 아쉬운 라면. 매일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라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라면. 아아... 라면 먹고 싶다. 지독할 정도로 라면이 좋다.

어릴 때 라면을 하도 좋아하는데 엄마가 평생 라면만 먹을 거냐고 하며 혼을 낸 적이 있다. 나는 평생 라면을 먹으면 너무 좋겠다고 싸우며 울었다. 엄마는... 지금 생각하면 학대로 오해받을지도 모르겠지만, 라면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방학 기간 동안 아침, 점심, 저녁을 라면으로 제공했다. 나는 신나게 라면을 먹었다.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내일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모레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엄마는 신기한 듯 보며 안 질리냐고 물으며 끓이다 질린 표정을 보였다. 며칠이 지나도 질릴 기미가 안 보이는 내게 엄마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백기투항했다. 그래 좋아하는 마음은 충분히 알았으니 너무 많이 먹지는 말라고, 조금 줄이는 게 좋겠다고 하며. 그때도 질리기는커녕 라면에 대한 애정만 더 쌓여가고 있어서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잔소리도 듣지 않고 원 없이 라면을 먹을 수 있는 기회였으니 말이다. 귀찮음이 아니라 그 맛 때문에 라면을 즐긴다. 세상에 이렇게 저렴하고 맛있고 완벽한 요리가 또 있을까?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한 안자이 모모호쿠로 닛신의 창업자는 내 인생의 구원자다. 그걸 국내에 들여온 삼양에도 늘 고마움을 표한다. 라면이 개발되지 않았으면 나는 어떤 음식에 빠져 살게 되었을까. 라면에 대한 사랑이 무색하게도 금세 다른 음식이 떠오르고 만다. 사람들의 광장의 메뉴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메뉴가 뭐냐고 물을 때마다 대답하는 카레다. 카레까지 나오다니, 그렇다면 글은 끝을 낼 수 없을 테니 여기서 추억 속 음식 메들리는 그만하기로 했다.


와인을 마시며 접시의 음식들을 남김없이 음미했다. 함께 곁들여진 루꼴라는 추가를 부탁드릴 정도로 신나게 먹었다. 호들갑을 떨며 먹느라 정작 열심히 써야 하는 엽서는 몇 장 못 쓰고 내일로 미루고 말았지만, 맛있는 음식을 행복하게 즐기는 순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도 셰프님에게 전할 연하장을 남겼다. 늘 광장에서 손님들에게 응원받던 기분을 전달하고 싶었다. 광장의 단골손님들에게 배운 다정함을 나누는 방법을 이곳에서 나누고 왔다. 어쩌면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요리라는 행위지만, 그 노동이 아깝지 않게 맛있게 먹고 비우는 사람들 덕분에 즐거울 매일을 기대하게 된다. 서비스직, 힘들지 않아? 하는 물음에 괴로운 어떤 순간들을 이야기하며 가슴속에 불주먹을 들어 올리기도 하지만, 단언컨대 행복의 순간들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음식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대접하며 살아가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5년을 힘들지 않게 보내온 것 같다. 코로나로 괴로웠던 2020년을 보내면서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지금 나는 스스로 가장 행복할 수 있는 행위로 생을 영위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편안한 휴식의 시간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그래선지 휴가 때 나는 늘 광장을 그리워하고 손님들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 같다. 아마 계속 광장에만 있다면 모를 그런 행복의 순간을 만끽하고 즐겁게 광장으로 돌아 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