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의 셋째 날
; 술의 밤들

by 광장장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되고 나서는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저녁 9시가 되면 모든 음식점들의 내부 영업을 마쳐야만 했다. 저녁 영업만 하던 광장도 12시부터 9시까지 하는 걸로 영업시간을 바꾸어야 했다. 12시까지 하던 이웃도 2시까지 하던 이웃의 가게들도 모두 함께 마쳐 광장이 끝나고 나면 어디로 들를 곳 하나 없이 집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필요한 조치지만, 소상공인, 작은 가게를 혼자 꾸리는 자영업자로서의 삶이 집과 회사로 일원화되는 것에 우울감 느껴졌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이 날들, 겨울은 이제 막 시작되었는데 겨울 내내 이 상태라면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 휴가를 서울에서 나게 되면 갈만한 가게들을 순서를 정해 날짜를 잡았다. 모이면 안 되니까 그런 조치를 취한 건데, 왜 굳이 시간을 만들어 모이려 하느냐고 질책한다면 사람이 모여야 되는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이 시기에 공감할 수 있는 불안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는 응원의 발걸음을 보내는 거라고 변명하고 싶다.


광장에서 자주 모이는 친구들과 와인바에 갔다. 고맙게도 셰프님이 대관으로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음식을 내 오는 셰프님에게 와인을 한 잔 건네며, 조리사로서, 그리고 서비스하는 사람의 입장으로서의 이야기를 충분히 나눌 수 있었다.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토로 아닌 토로에 싫은 기색도 없이 들어주던 친구들은 광장에 그랬듯이 처음 만나는 셰프님을 향해서도 무한한 응원을 보내 주었다. 이런 힘으로 요리를 한다는 이야기를 이어가며 술은 술을 부르고, 결국 9시에 마쳐야 하는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서 망설임 없이 함께 집으로 향했다.

얼마만이었나 이렇게 울어본 게? 스무 살 때 술이 취해 앞도 뒤도 없이 엉엉 울기만 했던 어린 시절의 주사처럼 이야기를 나누다 엉엉 울었다.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잔뜩 부은 눈으로 서로를 마주했지만 덕분에 올 한 해 힘들었던 감정들이 일시에 해소된 것만 같아 마음이 후련해진 아침이었다. 누군가의 앞에서 엉엉 울 수 있었던 밤이 어린 시절의 치기 어린 술자리의 밤과 다른 건 울음의 연유를 함께 겪은 아침, 더 묻거나 장난치지 않고 씩 웃어줄 수 있는 안정감이었다.


나는 휴가였지만 월요일이라 이런저런 일로 집으로 향했던 친구들과 저녁에 다시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소주와 와인과 맥주가 섞인 밤, 나는 오늘 읽기로 한 한 권의 책을 다 읽어야 된다며 조명 아래 책을 펼쳤고 투닥거리는 장난을 치며 술자리를 끝내고, 다음을 기약했다.


사람 간의 관계의 깊이를 시간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10년 20년을 함께 했지만, 올해 한 번도 보지 못한 친구들이 있었고, 가까이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코로나를 겪어낸 친구들이 생겼다. 요 며칠 새 꽤나 자주 만났지만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다 눈물을 펑펑 흘리게 될 줄은 이 자리의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속이 시원해질 정도로 깊고 짙은 울음은 손으로 꼽자면 30대에는 두어 번이나 될까?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굳어지는 만큼 감정도 꽤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마흔을 앞두고 새로운 친구들과 말랑거리는 감정을 공유하게 될 줄이야. 코로나로 뒷전으로 미뤄졌지만 서른아홉의 기분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한 해였다. 그 노력이 무색하게 이 울음의 밤을 지내며 마흔이 되어도 말랑거리는 어른이 될 자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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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도시, 서울 – 이혜미


책을 처음 집어 들었을 때는 광장에서 멀지 않은 국일고시원 화재가 첫 챕터로 제시되어 있어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다. 고시원에서 쪽방촌을 지나 대학가의 신 쪽방촌 이야기까지 취재를 이어나가는 기자의 기자로서의 흥분이 그대로 느껴졌다. 스스로 겪고 지내온 문제적 부분들을 명확히 들여다보고 기록한 기자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에너지 넘치는 책이었다.

책을 읽으며 20대 초반, 지방의 전문대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스쳐 지나간 집들이 생각났다. 고시원과 셰어하우스, 반지하 월세방, 재개발 지역의 낡은 집, 그리고 좁디좁은 원룸들. 그래도 서울로 모일 수밖에 없는 지방의 청년으로 서울의 시간들을 살아냈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최근에 이사한 곳은 노숙인이 많은 지역이라 소소히 문자신고를 하는 일이 잦다. 한 번은 버스 정류장에서 노숙인을 신고했다가 다음 날 보복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다가와 내게 몸을 부딪히며 욕을 했는데, 생각해 보니 불결한 상태로 앉아 있다고 해서 버스정류장을 이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정류장은 세금을 내는 시민들만 이용할 수 있는 것인가. 버스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은 버스 정류장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 노숙인이 생각난 건 쪽방촌이 그나마 노숙을 면한 사람들이 주로 버티는 터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책을 읽고 알게 되었는데 주소가 없으면 행정적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쪽방이라도 전전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자칫하면 길거리로 나앉을,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쪽방촌의 이야기가 깊이 있게 실려 있다.

책에는 ‘빈곤 비즈니스’라는 말이 나온다. 빈곤을 착취해서 여유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인간으로서의 삶과 생존에 대해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살아서 안녕들 하신지 묻고 싶다. 외면으로 밟아 서야만 누릴 수 있는 여유라면 나는 지금의 삶이 차라리 인간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P.015 UN 사회권 규약은 주거권에 대한 한 가지 조건으로 '익숙한 문화에 살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돈이 없다고 해서 익숙한 곳에 살 수 없다는 것은 기실 철거와 강제이주를 반복해 왔던 우리나라 도시 개발의 비정한 학습 효과다.


P.018 열심히 살수록 가난해진다. 국일고시원 화재 현장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계급 상승'이니 '성취'니 하는 목표는 자본주의 사회에 어느 정도 안착한, 적어도 서민 이상이 되어야 품을 수 있는 삶의 목표다. 이곳에 사는 이들의 목표는 상향이 아니라 하루하루 밀려나지 않는 것뿐이다.


P.115 영화'기생충'이 비극으로 끝난 것도 결국 하류 시민이 '선을 넘은' 것이 발단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대체 '선'은 어디에 그어져 있는 걸까. 그리고 그 선은 누가 긋는 걸까. 왜 하류 인간들은 선 밖에 머무르거나 쪽방촌이라는 특정 게토에 격리돼 살아야만 하는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 결국 '돈'과 사람의 '쓸모'인 건지. 아니면 영화가 지긋지긋하게 말하던,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 탓인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