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치앙마이에 못 가겠네요. 매년 1월 치앙마이로 향하던 나에게 사람들이 물었다. 어디 다른 데라도 가요? 하고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디를 가려고 숙소를 예약해 놓기도 했지만 결국 취소하고 말았다. 거리두기가 3단계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에서 수도권을 떠나 어디로 향한다는 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바로 치앙마이로 떠나버렸던 나에게 휴대폰 사진첩은 이야기했다. 1년 전 당신은 치앙마이에 있었다고. 1년 전에도, 2년 전에도, 3년 전에도 치앙마이에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맞다, 나는 올해도 치앙마이에 있어야 했다. 올해 치앙마이에서 광장의 팝업 매장이 열릴 예정이었다. 현지의 음식들로 메뉴를 만들어 이곳만의 특별한 식사를 경험하는 패키지를 만들기로 했다. 한 주나 두 주쯤의 주말, 숙소 손님뿐만 아니라 외부의 손님들의 예약도 받아서 여는 광장의 치앙마이 팝업 매장. 생각만 해도 근사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 코로나... 아마 2020년에서 21년으로 넘어가는 이 휴가의 글에서 어쩌면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일 코로나가 모든 걸 망쳤다. 사람들은 움직이지 못했고, 여행객이 들지 않은 숙소의 스텝들은 버티지 못했다. 나의 첫 해외 팝업은 그렇게 허망하게 무산되고 말았다. 다른 어떤 것보다 분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평생 두 번은 해보지 못할 경험이었을 텐데... 이 기회가 사라졌다. 호시하나는 존폐위기를 겪다 재오픈 하긴 했지만 더 격렬해지는 코로나의 여파로 나는 치앙마이로 향할 수 없었다.
팝업 매장이 열리는 곳은 치앙마이를 갈 때 매년 향하는 숙소, 호시하나 빌리지다. 일본 영화 ‘수영장’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에이즈 보건 모자를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일본계에서 운영하는 회사라 일본인들이 상주하며 일하고 있는 곳이었다. 매년 치앙마이를 갈 때마다 짧게는 3박 4일에서 길게는 열흘 정도까지 호시하나에 머무르며 치앙마이에서의 휴가를 만끽했다. 치앙마이 도심부에서 3,40분 떨어진 항동이라는 곳으로 더욱 작은 도시의 고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재작년 휴가에는 이곳에서 열심히 ‘밥 먹는 술집을 차렸습니다’를 썼고, 작년에 출간된 책을 가져가 선물로 드리기도 했다. 이 숙소의 상징인 수영장에서 일하는 스텝들과 함께 그려진 그림에 글은 알지 못해도 스텝분들은 기뻐했다. 여느 때처럼 현지 시장에서 처음 보는 식재료들을 사고, 다양하게 조리해 먹었다. 좋아하는 그린 망고와 패션후르츠를 잔뜩 사놓고 샐러드로도 간식으로도 먹으며 스텝들과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은 나의 음식을 신뢰했고, 호시하나의 운영에 또 다른 방향으로 숙소만이 아닌 식당으로의 가치에 대한 의견을 나누다 팝업 매장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마침 옆 숙소에 머물던 요가 강사와 함께 호시하나 원데이 투어도 재미있겠다 맞장구치며 이야기는 꽤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다. 요가와 음식 패키지. 호시하나에는 전에 요가 수업을 진행했던 사라도 있었다. 스텝들은 모두 어떻게 하면 호시하나를 더 잘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나와 요가강사의 패키지에 환영 의사를 밝혔다. 메뉴 테스팅 회를 열었고,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우리는 구체적인 일정은 한국으로 돌아온 뒤 이메일로 연락하기로 하고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뒤의 이야기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코로나의 결말이다.
한 달씩 벌써 3번을 보낸 치앙마이에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다. 올해는 내년을 기약하는 다양한 약속이 생겼다. 팝업뿐만 아니었다. 늘 즐겨가는 숙소 겸 식당의 스텝 친구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전했고, 자신의 고향이 두리안 산지라며 그곳으로 초대하기로 했다. 두리안을 과일 중 1위로 꼽는 내게 이 이상의 초대가 있을까. 재작년 친해진 친구는 작년에도 차와 오토바이로 다양한 곳을 함께 누벼 주었고, 돈을 열심히 벌어 고향의 부모님께 집을 지어줬다며 다음에는 그곳에 같이 가자고 초대해 주었다. 드랙퀸 쇼를 하는 친구는 치앙마이 시내에 있는 동안 언제든지 쇼를 무료로 보러 오라며 작년에는 한 번밖에 가지 않았지만 더 많이 놀러 오라고 했다. 치앙마이를 여행하며 만난 귀여운 친구들의 초대가 이어진 올해의 즐거운 이야기들은 이렇게 끝이 났다.
매년 친척 방문하듯 향하는 일본행도, 틈만 나면 떠나던 제주도도, 다 어느 시절의 꿈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고향도, 사랑하는 조카의 얼굴을 보러 가는 일도 어렵게 되었다. 친한 친구들과도 평소엔 하지 않던 영상통화로 서로의 얼굴을 보고 안부를 물어야 했고, 일본과 미국의 친구들에게 보내려던 연하장은 당분간 EMS를 제외한 우편물은 금지라 엽서를 보낼 수 없다는 우체국의 안내를 들어야 했다. 아무런 계획도 세울 수 없고, 어떤 계획도 망가질 수 있는 해를 보내며 스스로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새삼 깨달았다. 살면서 이런 절망을 경험할 일이 또 있을까? 이렇게 크고 거대하고 모든 걸 억누르는 존재로 인해 인생의 시간 중 가장 오래 집에 머무르는 순간을 보내고 있다.
비행기로 타국의 상공을 나는 패키지에 코웃음을 쳤지만, 어떤 날 그 티켓 한 장을 손에 쥐고 떠날 수 없는 떠남을 경험하러 나설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