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열 번째 날
; 서글픈 대답

by 광장장


그 대답을 듣고 나는 곧 서글픈 마음이 되었다. 아주 오랜만에 단골집을 갔을 때, 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장님이 없었다. 혹시 코로나 거리두기로 오픈 시간이 조금 당겨졌을까 해서 검색해 봤을 때 가장 최근 리뷰에서 사장이 바뀌었다고 쓰인 걸 봤을 때도 설마... 하고 생각했다. 영업시간에 맞춰 갔을 때 늘 별다른 인사도 없이, 어, 하고 알은체를 해주는 사장님은 없었다. 일하시는 분에게 많이 맡겼나,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가게 이름도 인테리어도 메뉴도 모든 것이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사장님 바뀌었어요?라고 묻자 늘 사장님이 서 있던 자리에 계신 분이 말했다.


‘그 친구는 그만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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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분의 요리는 사장님의 그대로였다. 음식이 나오고 맛을 보면서 친구도 나도 맛은 그대로네 하고 공감했지만, 그래서 나는 그래서 더욱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같이 간 친구에게도 맛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마음이 서글퍼서 평소처럼 신나게 먹질 못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새로운 사장님은 처음 봤을 우리에게 서비스도 주셨는데, 친구와 나는 가게를 나오자마자 이야기했다. 맛은 괜찮아. 근데.... 그 거짓말이 마음에 걸려서 이제 저 가게를 못 갈 것 같다고 했다. 우리의 오랜 단골집. 늘 가면 신나게 먹어대는 통에 마음을 딱 잡고 지갑 열 준비를 하고 가던 곳이었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사장님이 바뀌는 타이밍에 인사라도 건넬 수 있었을까. 나쁜 코로나.. 코로나... 코로나 탓을 해 본다.


요리는 레시피만 있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레시피로 시간과 무게까지 재서 조리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체인점에 가보면 알겠지만, 늘 맛이 획일적이지 않다. 만드는 사람의 간과 감이 아무리 정해진 틀이 있어도 소소히 다른 부분들이 쌓여 미묘하게 다른 맛이 완성된다. 그건 맛을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각각 저마다의 입맛으로 같은 음식도 다르게 느낀다. 광장에서 계량화된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어 내지만 어떤 사람은 짜다고 리뷰를 남기고, 어떤 사람은 심심한 맛이라고 남긴다. 그렇게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각각 다르게 느끼는 수많은 가게들 사이에서 내 입맛에 틀림없는 맛을 선사해 주는 곳들을 찾으면 열심히 다닌다. 체인점보다는 작은 개인 업장을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통은 만드는 사람이 일정하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기대한 맛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을 다니면서 사장님의 손맛에 길들여져 있었는데, 새로운 분의 거짓말에 안부를 물을 수도 없게 되어 마음이 서글펐다. 혹시나 새로운 사장님이 들을 새라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의 다른 단골집에 가볼래? 하고. 짧게 먹고 나와선 또 다른 단골집으로 향했다. 반가운 사장님들, 오래된 직원분과 인사를 나누며 마음이 놓였다. 안부도 묻고, 요즘 상황도 이야기하고, 한참 술을 마시다 이야기를 꺼냈다. 거기 사장님 바뀌었더라고요.라고 했더니 무슨 연유에선지 주변에도 알리지도 않고 사라진 모양이었다. 아무 얘기도 없이 바뀌었다는 소문만 듣고 이곳 사장님도 섭섭한 마음에 연락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서글픔에 서운함이 더해졌다. 사장님은 건강히 잘 운영하셔야 돼요. 옮긴다면 꼭 얘기해 주시고요. 하며 신신당부를 했다. 그럼, 하고 언젠가는 광장에 오실 거라고 이야기를 하신다. 광장을 열기 전부터도 늘 쉬는 날 없이 일하는 사장님이 오긴 어려우니 내가 열심히 와야지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오며 내려앉은 마음은 어지러운 상념으로 이어졌다. 언젠가 광장이 없어지는 날도 올 것이다. 내 상황이 문제가 될 수도 있고 그보다 앞서 을지로 재개발 사업이 추진될 수도 있다. 재개발이라면 물을 이 없이 전혀 다른 곳이 되고 말겠지만, 나의 어떤 상황으로 광장을 떠나게 된다면 그때 제대로 인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공간과 맛을 누리는 사람들에 다시는 마주치지 못할 수도 있는 어떤 순간들을 기억하는 날을 만들어야지. 혹시 누군가 기대를 갖고 찾았다가 이런 서글픈 대답에 마음이 가라앉지 않도록.




보라색 히비스커스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소설을 읽는 것은 꽤나 힘이 들어가는 일이다. 몇 달 만에 읽어낸 아프리카 소설. 가정폭력이 너무 적나라하게 나와 있어서 더욱 보는 게 힘들었던 것 같다. 아무리 온 세상에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해도 가족에게 지독한 관리자가 되어 재단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내 아버지와 겹쳐 보여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 시절의 아버지는 다 그렇잖아.라고 해도 세상이 바뀌었고, 그 시절의 일화들을 생각한다면 폭력 외에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친구와 전화를 하며 아무리 그 시절이라고 해도 폭력은 폭력이지.라고 했을 때, 그 시절에는 훈육이라고 했을 거라고. 규칙을 정하고 약속된 체벌만이 가해지는 건 그 시절의 가정교육일 거라고 위로를 했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캄빌리와 오빠가 그만큼의 인생을 더 흘려보내도 그렇게 기억될까? 글쎄... 갸우뚱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이 소설에 아무리 반짝이는 부분이 있어도 내게 집중된 건 반짝임의 정 반대의 어둠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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