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기타자와>
서울에 홍대가 있다면, 도쿄에는 시모기타자와가 있다.
개성 강한 젊은이들이 거리를 메우고, 기타를 멘 청년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좁다란 골목길에 이런 저런 길거리 라이브가 펼쳐지기도 하고 예쁜 카페들이 즐비해 카페브런치를 즐길 수도 있다. 그 와중에 직접 커피콩을 볶아내는 로스팅 카페도 있으면서 구제샵들이 크고 작게 들어차 있고, 체인점들 사이로 작은 가게들이 구석구석 들어찬 곳. 골목 골목 빼 놓을 수 없는 아이템들로 가득찬 동네가 바로 시모기타자와다. 도쿄의 젊은이들은 시모기타자와를 줄여 '시모기타'라고 부른다.
젊은이들의 거리인만큼 골목 전체가 청춘의 냄새로 가득차 있다. 개성 강한 일본의 젊은이들이 한군데 모여 있어 만화속으로 빠져든 듯한 기분마저 든다. 시부야, 하라주쿠, 다이칸야마, 긴자를 거닐며 도대체 이런 사람들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한 방에 풀릴 정도로 다양한 모습의 패션피플들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골목을 거닐고 있다. 도쿄로 상경한 젊은이들이 살고 싶어하는 거리 1,2위를 다툴만큼 유명해지긴 했지만, 그 전에는 말 그대로 도쿄에 상경한 지방의 청년들이 모여 형성된 거리였다. 그 덕에 멋지고 예쁜 가게들 사이로 조금만 골목을 누비면 저렴하고 양이 많은 정식집들이 숨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는 볼 수 없다. 시모기타자와의 남쪽과 북쪽 사이의 철길. 낮의 풍경과 밤의 풍경
어느 도쿄의 도심지처럼 무인양품이 역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고 두 개의 전철이 교차하는 곳. 시모기타자와의 북쪽과 남쪽을 오갈 때는 늘 전철역사 안을 통과하거나 철길을 지나가야 된다. 서울의 신도림 같은 신주쿠로 향하는 전철이 쉴새 없이 오가기 때문에 늘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언제나 사람이 가득한데다 때로는 짧은 신호로 금새 바뀌기 때문에 잰 걸음으로 건너야 할 때도 있다. 불편하긴 하지만 그게 시모기타자와의 풍경이었다.
그 불편함 덕에 철로를 나눠 몇 년에 걸쳐 공사를 진행해 이제 시모기타자와의 철길 풍경은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일본 만화들에서 보아오던 지하철과 사람으로 가득찬 전철길이 없어진다. 아쉬워하는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으리라. 시모기타자와에 모인 젊은이들이 모여 쇼핑센터보다는 시모기타자와스러움을 원한다는 서명운동을 한창 하긴 했다. 나도 동참했었다. 서울에 비해 변하지 않고 옛것을 유지한다는 도쿄, 시모기타자와도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해진 덕택에 도심개발에서 비켜나가지 못했다. 십자로 교차하는 좁고 낡은 역, 이노카시라선과 게이오선에서 쏟아지는 젊은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워 시모기타자와에서의 약속일 때면 일부러 미리 나가 역 주변에 사람구경을 했었던 추억이 있는데... 여전히 그 젊은이들이 역사앞을 채우겠지만, 백화점 혹은 쇼핑몰이 되어 그들을 쏟아내는 모습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시모기타자와에서는 카페여행을 빼 놓을 수 없다. 이 점 또한 한국의 홍대와 자주 비교되는 점이기도 하다. 각자 다양한 컨셉으로 여행과 소녀스러움, 혹은 커피 전문점. 밥을 중심으로 하는 카페도 있고, 팬케이크가 유명한 카페도 있다. 원두를 팔면서 조그만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야나카 커피는 쿠폰까지 구입해서 다닐 정도로 시모기타자와를 들릴 때마다 방문하기도 했다.
시모기타자와 역에 내리면 제일 처음 마시는 커피는 북쪽 출구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칼디커피의 커피 시음이다. 칼디커피는 촬영금지라 구글 스트리트뷰 캡쳐로 활용하기. 칼디 커피는 내내 커피시음 행사를 하고 있다. 프림이 들어간 달달한 커피일 때도 있고 드립커피같은 맛일 때도 있다. 여기서 한 잔 들고 시모기타자와 구경을 시작한다.
커피슈퍼인 이곳에는 커피는 물론이고 치즈와 햄, 와인과 함께 세계 각국의 향신료와 양념들을 같이 판매한다. 역 바로 앞에 있는 곳이니 한 번 가볍게 둘러보고 눈요기를 했다가 시모기타자와역으로 돌아왔을 때 찍어둔 녀석들을 사가도 좋은 코스다.
우리나라에서 브런치라고 하는 메뉴를 일본에서는 카페고항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카페에서 먹는 밥이라는 뜻이다. 런치에 1000엔 내외로 밥과 음료, 혹은 디저트까지 즐길 수 있는 브런치 메뉴. 어떤 곳에서는 밥이 어떤 곳에서는 디저트가 주 메뉴가 된다. 가게의 성격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함께 제공되는 코스 또한 제각각이다.
런치메뉴인만큼 원래 가게에서 제공하는 기존 메뉴에 비해서 저렴하기도 해서 시모기타자와에 들리면 늘 새로운 카페고항이 없을까 하고 타베로그(일본의 맛집사이트) 랭킹을 검색해 보기도 한다. 우연히 들어간 가게에서도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맛을 찾기도 하고 검색해서 간 가게에서 긴 줄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각 가게들마다 개성 뚜렷한 브런치 메뉴들을 만나는 것 또한 시모기타자와로 향하는 재미 중 하나이다. 맛의 천국 일본답게 취향 차이는 있어도 맛이 없어서 실패할 경우는 거의 없다.
브런치 메뉴는 주로 카레가 많다. 카레 플러스 알파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
특화된 카페가 아닌 이상 기성품 커피를 제공하는 곳도 있지만 1000엔 (약 만원) 정도의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라면 커피 또한 제대로 된 맛을 선보여 주기 때문에 수다 떨며 식사도 커피도 즐기기 좋다.
한국이라면 응당 1층에 있는 카페가 많겠지만 시모기타자와는 2층에도 꽤 많은 카페가 있으니 시야를 넓게 넓게 가지면 그만큼 다양한 곳을 발견할 수 있다. 런치메뉴 시간은 보통 1시반에서 2시까지 운영하고 인기 많은 가게는 줄을 서야 하거나 혹은 정해진 재료가 다 떨어져 못 먹을 수도 있으니 카페 브런치를 먹으려면 11시부터 시모기타자와 골목을 찬찬히 다녀보는 것도 좋다.
시모기타자와에는 여러 가게들이 많이 있지만 가장 시모기타자와스러운 가게를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빌리지뱅가드를 꼽고 싶다. 시모기타자와에 있는 것이 도쿄 1호점이다. 본점인 줄 알았는데, 웹으로 뒤져보니 도쿄 1호점 이라고만 표시 되어 있다.
기본적으로는 책방이지만 음반도 팔고 책보다 더 많은 디자인제품들이 매장 사이사이를 메우고 있다. 독특한 장난감부터 이건 도대체 어디에 쓰라는 건지 그리고 왜 만든 건지 의심이 들만한 제품들도 있고, 보는 순간 깔깔거리게 되는 장난감들도 있다. DVD들도 중간중간에 틀어져 있는데 깨알 재미를 선사한다. 애니메이션이나 영상자체만으로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고, 일본어를 몰라도 어느새 멍하니 쳐다보고 있게 된다.
책도 일반적인 책방과는 다르게 사진집과 만화, 여행책들이 주를 이룬다. 한국에도 소개될 정도의 기발한 사진집들은 이곳에 다 특화되어 모여 있으니 사진집들 구경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렇다고 사진집만 있는 건 아니다. 소설책과 에세이도 여느 책방 못지 않게 공간을 메우고 있다.
요즘엔 빌리지 뱅가드의 규모가 꽤 커져 시내에서도 그리고 도쿄가 아닌 곳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도쿄 1호점 시모기타자와만한 놀이터는 없는 것 같다. 세월이 쌓인 책방에 무엇이든 없으랴.
책과 음악과 아이디어 상품들이 제멋대로 나름대로 가지런히 꽉꽉 들어차 있다. 핸드폰 고리로 달고 다닐 수 있는 카메라도 있고 한국에서도 한 때 유행했던 토이 카메라들도 만날 수 있다. 구경하느라 사진 찍기를 많이 놓쳤지만, 실제로 가보면 더 다양한 제품들과 조합에 눈이 휘둥그레해 짐은 다 말하기엔 침이 마를 정도다.
빌리지 뱅가드 Village Vanguard
주소 / 東京都世田谷区北沢2-10-15マルシェ下北沢 1F
가까운 역 / 게이오선, 이노카시라선 시모기타자와역.
영업시간 / 10:00-24:00 (연중무휴)
시모기타자와의 풍경들.
시모기타자와가 젊은이의 거리라고 하는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보다는 공연장이 많기 때문이다. 홍대처럼 인디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쓰면서 느끼지만 정말 홍대와 비슷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어둠이 찾아오면 역 주변부터 시작해서 골목까지 기타를 든 남녀가 모여든다. 밴드가 되기도 하고 혼자 혹은 둘이기도 하다. 자신감 없이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어느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고 지나치기만 하는 쑥스럼쟁이도 있다. (생각보다 많다)
날씨가 좋은 계절에는 거리 축제도 많이 열리지만 꼭 축제가 아니라도 볼 거리가 많은 거리다. 보통은 저녁에 라이브가 많이 펼쳐지지만, 가끔은 낮에 열리기도 한다. 하지만 낮 라이브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면 경찰에 의해서 쫓겨 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그래도 다른 도심지에 비해서는 비교적 자주 라이브를 볼 수도 있는 걸 보면 단속이 심하지는 않은 지역인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의 손에 들린 건 기타 뿐만이 아니다. 만화책을 잔뜩 들고와 명물이 된 만화 읽어주는 아저씨도 있고, 야구선수 이치로 분장을 해서 내내 야구배트를 흔들고 있는 사람도 있다. 두 명 다 시모기타자와 역앞을 대표하는 명물이 되어 TV에 출연하거나 드라마의 한 캐릭터로 등장하기도 했다. 요즘엔 활동 반경이 넓어져서 예전처럼 매일 밤 시모기타자와 역앞에서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직도 가끔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정확히 8년 전.
그러니까 일본어를 아예 모를 때다. 길에서 전단을 나눠주던 사람이 나를 붙들었다. 왜...왜죠? 전단지를 받았을 뿐이고 나는 일본어를 모를 뿐이고.... 너 라이브 보지 않을래? 무료로 초대해 줄게. 라는 이야기를 듣고(?) 가게 된 라이브 클럽. (역시 나는 옛날부터 겁이 없었군) 나에게 홍보 전단을 돌리던 건 이 밴드의 보컬이었다. 관객은 나를 포함해서 10명도 되지 않았지만 밴드는 열심히 연주를 했고, 귀가 찢어질 듯한 밴드 사운드와 고어한 보컬의 목소리 덕에 나와서는 잠에 들 때가지 귀가 멍멍했던 기억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규모의 음반도 없는 일본밴드의 공연을 본 경험은 나에게 시모기타자와를 확실히 정의해 주었던 것 같다.
우연하게 라이브를 볼 수도 있었지만, 한국 인디밴드 공연도 가끔씩 한다. 좋아하는 밴드인 크라잉넛의 공연을 시모기타자와에서 볼 수도 있었다. 주말 저녁 거리를 서성이다보면 운 좋게(?) 라이브에 초대되는 경우도 있고 낮에 라이브 홍보하는 전단을 받아볼 수도 있으니 여행지에 어떤 노래든 취향과 관계없이 라이브를 경험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물론 장르도 다양하다.
라이브 클럽도 있고 연극무대도 크고 작게 자리하고 있다. 독특한 퍼포먼스들이 길에서도 펼쳐지긴 하지만 공연장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시모기타자와에 대한 애정을 이렇게 확인하다니. 쓰다 보니 부족한 느낌이 들고 부족한 느낌이 들어 예전에 사진을 모아두었던 외장하드를 꺼내서 컴퓨터에 연결했다. 다행히도 훌륭하게 사진이 저장되어 있었다. 올해 찍은 사진도 있지만 4,5년 전에 혹은 7,8년 전에 시모기타자와를 다니며 찍었던 사진들을 보니 아아... 추억에 잠기기도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전철을 갈아타고 갔어야 하는 (일본은 환승할인이 없어 웬만하면 한 방에 갈 수 있는 곳에서만 노는 편이다) 데도 불구하고 사는 동안 한달에 한 번 이상은 이곳을 갔던 나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 그 덕에 무려 3주에 걸쳐 쓰게 된 시모기타자와 이야기.
그러면서 먹었던 카페고항이나 커피들. 그리고 거기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사진과 표정들을 보니 새삼 시모기타자와가 그리워졌다. 어쩌면 도쿄가.
철길은 올해 갔을 때도 이미 지하화공사로 사라졌다. 역 옆으로 이어져 있던 골목 한켠에 가끔 가던 좁은 가게도 철거되어 낮맥주와 함께 즐기던 카레도 내 기억과 친구들의 기억속에만 남게 되었다. 비닐로 얼기설기 이어진 야외 테라스, 테라스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평상 한 켠. 전철이 지나갈 때마다 천장 비닐이 바르르르 떨리고 비오는 날이면 비닐 천장 위로 고인 물이 주르륵 흐르기도 하던 그 곳. 이미 쇼핑몰 건물은 올라가고 있었고, 공사중이지만 역사는 조금 깨끗해져 있었다.
깔끔하긴 하지만 서운한 기분이 스미는 건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