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오랜만이다. 문화역서울을 가기 위해서는 주로 서울로 7017길을 이용하는데, 서울로 길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역 광장을 마주하면 발길이 멈춘다. 버스환승센터로 쉴새없이 들어오는 빨강, 파랑, 초록의 버스들, 버스에서 내리고 오르는 사람들, 서울역에서 짐을 가득 들고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노숙자가 지천으로 누워있다. 큰 엠프에서는 각각의 종교 (특히 기독교)의 설교가 울리고, 어디선가는 뭔가를 받기 위한 긴 줄이 이어져 있다. 거기다 지금은 코로나19 선별진료소까지 광장의 꽤 큰 구역을 차지하고 있어서 이곳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세기말에 이랄까... 멸망의 가까이에 있는 기분이 든다. 영화 부산행, 이전의 서울역은 그냥 이곳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묘한 이질감이 있다. 구 서울역에서 하는 전시에 흥미를 가지고 이곳 근처에 와도 광장을 바라보며 어떤 예술작품을 만날 에너지가 사라지고 망연한 기분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 가고 만다.
꽤 긴 전시는 여유 있을 때 봐야지 하고 미루다 결국은 못 보고 지나가게 돼서 오픈하는 날 맞춰 예약을 해 놓고 부지런을 떨었다. 지난 번 전시에서도 흥미롭게 봤던 타이포잔치. 그 때가 언제였던가... 2019였던가? 올해 타이포잔치2021이 서울역에서 열렸고, 지난 번만큼이나 흥미로운 전시가 이어졌다.
타이포 전시라고 해서 지난 번처럼 다양한 폰트를 각자의 방식으로 선보이는 전시일까 했는데 더 확장시킨 전시였다. 사당을 표현한 듯 각종 폰트들이 화려한 문구들과 함께 걸려 있는 1층 전시가 매우 멋있었다. 각각의 색과 느낌으로 늘어진 것들이 실제 사당의 부적과 같아 하나하나 작가명과 작품을 둘러 보면서 경건한 마음이 되서 보는데 한참이 걸려 전시를 다 둘러보고 나와서 한 번 더 봐야지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동선을 나눠놔서 다시 들어가기 애매했다. 아쉽.... 게다가 구 서울역사의 특이한 공간에 전시도 다양하게 채워져 있어서 다시 들어가기엔 시간이 없기도 해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이야기와 이모티콘으로 풀어놓은 공간들도 있었고, 뉴락, 이라는 새로운 돌덩이에 대한 전시도 흥미로웠다. 꽤 큰 전시라 보는데 한참이 걸렸으니 시간을 여유롭게 가지고 전시를 보러가길 추천한다.
동선상 놓치기 쉬운 VR 전시가 한켠에서 열리고 있었는데 활자와 모양들이 어우러져 감정을 연결하고 이미지가 떠다니는 모습을 한참 홀려서 봤던 것 같다. 안경을 끼고 가서 증강현실 글래스를 손으로 들고 봐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다음에는 꼭 렌즈를 끼고 한 번 더 보러 가야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공간에 한 명밖에 들어가서 볼 수 없는 구조라 한가한 시간이 아니면 잘 운영되기 어려울 것 같은 아쉬움이 있지만 여유롭게 가서 꼭 그 환상적인 VR 전시를 챙겨보길 바란다. 동글거리는 음악과 컬러풀한 이미지들이 둥실둥실 떠 다니는 곳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날씨가 좋아 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더더욱 전시를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달까?
한 번 보기에는 아쉬운 전시... 또 보러 가야지.
또...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