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티스트. 들을 때마다 뭔가 귀에 좀 켕기는 말이었다. 들으면 뭔가 삐걱거리며 안 맞는 느낌인데 그 이유는 딱히 고민해 본 적 없는 단어.
"왜 로맨티스트지? '로맨틱'한 사람이면 '로맨티시스트'가 맞는 것 아닌가?"
사전을 찾아보니 '로맨티시스트'가 맞았다. 스스로에게 문법교정 능력을 치하하며 돌아서는데 아직 좀 찝찝했다. 그래서 '로맨틱'한 게 뭔데?
사전을 다시 찾아보니 로맨틱은 '낭만적'인 것을 의미한단다. 그래서 '낭만'의 뜻을 찾아보니 '낭만'은 나쓰메 소세키(夏目 漱石)가 '낭만주의(Romanticism)'를 번역하기 위해 만든 조어란다. 이게 무슨 미분은 적분 거꾸로 하는 거고, 적분은 미분 거꾸로 한다는 소리야.
나쓰메 소세키가 영어의 'I love you'란 사랑고백을 당시 일본인의 정서에 맞게 '달이 아름답네요'로 번역했다는 도시전설은 유명하다. 그렇다면 'Romanticism'과 '낭만(浪漫)'의 간극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한참 동안 사전과, 영문위키와, 나무위키를 뒤졌다. 낭만, 낭만주의, 로망스(Romance), 로망(Roman) 차근차근 읽다보니 기사도 문학인 '롤랑의 노래'도 읽고, 인터넷에 떠 도는 '낭만 뒤졌잖아' 밈도 보고 낄낄거리고, '로마적'인 것을 찾다 샛길로 빠져서 오랜만에 러셀 크로 주연의 '글래디에이터'도 한 편 때렸다. 그렇게 며칠이 즐거웠다.
사실 이미 진작에 느꼈다. 로맨스고 낭만이고 나발이고, 그것에 대해 사전을 뒤져가는 과정에는 그닥 낭만이 없다는 것을. 내가 느끼는 낭만과 당신의 그것, 중세인들이 꿈꾸던 과거의 '로마다움(Romantic)'과 실제 로마, 나쓰메 선생이 생각한 로망스와 낭만이 모두 다르다는 걸 우리는 안다.
우리의 감성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소재가 제 각기 다르지만, 감각으로 느껴진다는 것. 이해득실을 따졌을 때 불합리하더라도 사랑, 우정, 충성심, 의리, 신념 등을 위해 스스로를 내던지는 이들과, 그 속에서 각자가 느끼는 제각기 다른 모호한 감정 속에 공통적으로 낭만이 젖어있다는 것.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달이 아름답네요'는 그 상황의 맥락을 모르더라도 낭만적으로 들리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