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깊은 두려움 (1)
스웨덴 출신의 이삭은 지난 1월부터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살고 있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유럽 안보와 관련된 석사 논문을 막 끝마친 그는 주 리투아니아 스웨덴 대사관에서 인턴십을 하며 논문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삭과 나, 그리고 디에고는 몇 년 전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1년간 함께 공부한 친구다. 팬데믹 시기 우리는 먼 타지에서 서로에게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가족으로 함께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그를 만나고자 빌뉴스에 며칠간 방문했다. 주말을 함께 보내며 밀린 회포를 풀고, 떠나기 전날 술기운과 함께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엇이 가장 두려운가?
"나는 죽음 이후가 두렵다."
이삭은 조금 부끄러운 듯 대답했다. 그도, 그의 가족도 종교적이지 않다. 그의 고향인 스웨덴 사람들은 대개 루터교회를 믿는다. 내가 이해한 바로, 그들의 내세관은 우리에게 익숙한 다른 기독교와 조금은 다르다.
이삭에게 죽음 이후의 사후세계가 두려운가 물었다. 그의 원죄와 저지른 죄악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두려운지, 혹은 죽음 이후에 잊히는 것이 두려운지 물었다.
"나는 죽음 이후, 나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 의한 절대적인 기준 아래 평가받는 것이 두렵다."
대화를 이어가며 이삭은 자신의 두려움에 대해 다시 풀어 이야기했다. 우리 인간은 사후세계와 내세에 대해 무지하고, 종교와 신념에 따라 저마다 다른 추론을 내놓는다. 그럼에도 공통된 것은 죽음 이후 어느 시점에 누군가로부터 -그것이 오시리스이든, 염라대왕이든, 절대자이든- 우리네 인생에 대한 평가와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삭은 자신의 삶이 어떠한 기준에 따라 평가받게 되는 것이 두렵다고 이야기했다. 그 어떠한 절대적인 평가의 기준을 알지 못하기에, 자신의 삶이 종결된 시점에서 한 순간 무가치한 것으로 되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한 평가는 절대자가 아닌 사람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지 않는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디에고가 핀잖을 섞어 이야기했다. 그는 이전에 나와 같은 주제로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이탈리아에서 온 그는 어린 시절 가톨릭 세례를 받았지만, 종교에는 무척이나 회의적이다. 그와 나눈 앞선 대화는 다음에 다루겠다.
우리 세 사람은 그 이후 담배 한 갑을 모두 비울 시간 동안,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한 사람의 인생이란 결국에 어느 지점에서든 평가받는 것이다. 이는 살아있는 동안에도, 죽은 이후에도 내려질 수 있고 또 시대에 따라 평가가 바뀔 수도 있다. 또, 그 마저도 기억되어질 수 있는 사람만이 죽음 이후에도 평가받는다.
"하지만 결국, 그러한 평가들은 이미 죽어버린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 결론과 함께 우리는 방으로 돌아와 보드카 한 병을 새로 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