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 관습, 불문율, 국룰, 소신
하지만, 그 사람이 이내 곧 다시 팔짱을 끼고 눈을 감는 것을 보면, 이름 모를 그 사람이 그렇게나 미울 수가 없다. 지옥철에 발은 디딘 당신이 곧 이미 수라요, 아귀요, 축생이다.
만고의 시간이 흐르고 노량진역에 도착한다. 수험생, 고시생, 환승객들이 우르르 열차에서 내린다. 내 앞에 앉은 트레이닝복 차림의 젊은 남성도 자리에서 일어선다. 마음속으로 '꼭 합격하세요!'를 외치며 앉을 준비를 한다. 하지만 웬걸, 그가 일어서기 무섭게, 어디선가 나타난 한 중년 여성이 후다닥 달려와 턱 앉는다.
'아니, 앞에 서 있던 사람이 자리에 앉는 게 국룰 아니야?'
국룰 아니다. 아무도 그런 규칙을 정한 적 없다. 관습과 불문율은 사회구성원이 모두 내재하고 있어야만 제 기능을 한다. 내 자리(가 될 뻔한 것)를 차지한 이 아주머니는 한 톨의 망설임도 없었고, 뻔뻔하지 않은 얼굴에는 안도감만이 피어있다.
서울역에 도착하자 등이 굽은 할머니가 열차에 탑승한다. 아주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할머니에게 자리를 권했다. 이 아주머니에게 있어 지하철 관습은, '민첩한 사람' 그리고 '연장자'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국룰'보다 그녀의 '상식'이 더 합리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상은 어느때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며 살아간다.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다른 인종과 국적, 종교와 신념, 성별, 세대가 살아오며 체득한 가치관이 다르기에 딱딱했던 '불문율'과 '관습'이 물렁해지고 있다.
이제 곧 그러한 시대가 올 것 같다. 다른이들에게 굴하지 않고살아가는 사람들을 '눈치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게, 소신 껏 살아가는 사람'으로 평가하는 그러한 날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