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월 첫째주 추천 Thought & Movie
생각하나 - 가장 친한 친구 하나 생각하기
영화하나 - <Me and Earl and the Dying Girl>(2015), <Adaptation>(2002)
뜬금없는 망상의 구름이라는 원동력때문에 글을 쓰고는 있지만 일종의 계약, 내기, 자존감, 위안감, 자기합리, 시간체크로 맺어진 나의 글들을 어떻게 써야 사람들이 좋아할지 종종 생각한다. 나만 좋으면 재미가 없잖아.. 뭐랄까. 위트있고 공감가는 그대의 동업자가 되고 싶다. 너랑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지금 여기서는 독자와 저자의 위치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나와 너, 나와 너희들, 우리와 너, 우리와 그들등의 관계로 시작된다. 세상에 눈을 뜬 뒤 우리는 엄마,아빠와 '나'라는 설정에서부터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끊임없는 연을 맺는다. 너와 내가 독자와 저자라는 위치로 자동 세팅된 뒤, 각자의 위치에서 작용과 반작용의 연을 맺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설정해 나가는 것처럼 관계는 둘 이상의 만남으로 맺어지는, 너에 의해 내가 영향을 받고 나에 의해 너가 영향을 받아 서로를 변화시키는 화학적 반응이자 결합이다. 관계가 일으키는 화학반응은 많은 영감과 고통을 발생시킨다. 마치 마약같다. 가족이 주는, 친구가 주는, 지인들이 주는, 혹은 익명의 누군가가 건네는 주사바늘이 내 몸안으로 들어와 전율을 일으킨다. (참고로 나는 면역력이 낮아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 관계를 가린다. 주사는 아프니 준비를 단단히 해야한다.)
<Me and Earl and the Dying Girl>에서 주인공 그렉은 친구들과의 진지한 관계를 터부시한다. 그저 그런 관계로 투명인간이 되어 고3의 시절을 원만히 보내는 것이 그의 관계 설정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그런지 영화속에서 나와 있지는 않지만 영화의 센치한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구심점이 된다. 영화를 한번 봐봐라. 금방 이 영화가 내뿜는 쿨내나는 매력에 빠져들테니.(암환자가 등장하는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보면 이 영화의 유니크한면을 금방 알아챌 듯) 쨋든 영화는 진하지 않은 그렉과 그의 관계자들 속에서 우정, 사랑을 경험하고 '관계의 힘'으로 변화되는 그렉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에 빠져들어 감정이입 되는 것이 이 영화의 힘이다.
The Point of No Return
-Me and Earl and the Dying Girl 中-
레이첼과의 만남이 발생시키는 '귀환불능 지점'.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그렉이 원치 않는 진지한 관계는 그렉을 요동치게 한다. 즐겁고 화내고 싸우고 웃고 울게 만드는 관계의 힘은 한편으로는 오해를 부르고 미움도 받지만 다른 편에선 그렉을 이해하고 그렉의 편이되는 사람의 마음을 알기도, 얻기도 한다. 그가 말한대로 세상이 강요하는 고등학교, 대학교라는 공간안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사람들과 악몽같은 시간을 보내게 될 수 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이 만남은 나를 변화시킨다. 이 점을 곱씹어 보자.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는 것처럼 '내'와 '너'는 서로를 만드는, 서로를 정의가능하게 만드는, 뭐랄까 자웅동체라는 말은 좀 오반가... 아무튼 너와 나의 관계는 나를, 그리고 너를 성숙시킨다.
또 다른 영화 <Adaptation>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나'와 '너'의 관계를 쌍둥이라는 설정으로 예리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영화를 본 순간 이거 <식스센스>나 <뷰티풀 마인드>처럼 주인공한테만 보이는 반전이 있고 그런거 아닌가 했지만 그만큼 찰리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영향을 주고 받는 쌍둥이 동생이었다. 더군다나 찰리가 소심남이면 동생 도날드는 활발한 성격이었고 같은 시나리오를 씀에도 찰리가 예술가를 지향했다면 도날드는 할리우드의 상업적 이야기에 흥미가 있었다. 서로간의 상반된 모습은 서로를 적나라하게 비교하고 서로를 자극하고 꿈틀거리게 만든다.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이 둘은 꽃과 곤충이 영혼의 친구인 것처럼 서로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공존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결국 나와 너는 같이 있어야 각자의 의미를 실현할 수 있는 하나가 된다. 이 영화에서 '관계'는 나와 너를 둘이면서 하나인 쌍둥이로 만들어 버린다.
<Me and Earl and the Dying Girl>에서 레이첼과의 관계는 그렉이 대학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바꾸게 한다. 사람들과의 인연에 대한 고찰을 불러일으켜 그렉을 변화시킨다면 <Adaptation>에서 도날드와의 관계는 찰리가 작품의 고민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해주고 삶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준다. 이 두 영화가 주인공을 변화시킨다는 면에서 같은 지점을 야기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Adaptation>은 찰리 자신과의 갈등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다크한 면으로 관객을 이끈다. 찰리자신과 마음 속에 있는 또 다른 찰리와의 관계와 갈등. 말 그대로 또 다른 자아(alter ego), 진짜 쌍둥이간의 관계를 보여준다. 찰리는 좀 더 처절하고 고통스럽게 자신과의 대화를 하게 된다. 관계는 반드시 타자일 필요는 없다. 나 자신과의 관계, 내 작품과의 관계, 소중한 물건과의 관계, 생물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존재하는 세상 모든 것과의 관계로부터 만들어지는 나의 모습을 영화는 묘사하고 있다.
'관계'는 나로부터 시작해 세상을 한바퀴 돌고 다시 나 자신과의 관계로 돌아온다. 다시한번 나는 뜬금없는 망상의 구름을 부여잡고 나를 성숙시키려 한다. 조심해야 할 것은 관계가 나를 성숙의 모습으로 변화시킬수도, 환각과 고통의 함정으로 빠트릴 수 있는 양날의 검이라는 점. 나를 지킬지 나를 죽일지 지금은 분간할 순 없겠지만 찰리의 결말처럼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