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음식 적응기
EP04 | 유목민의 맛, 나그네의 입맛EP04 | 유목민의 맛, 나그네의 입맛
가리는 음식 없이 잘 먹는 편이고 어디 가서 음식 때문에 고생해 본 적도 없는데, 몽골은 왠지 가기 전부터 좀 걱정되더라. 다양한 맛과 향을 좋아하는 만큼 향에도 좀 민감한 편인데, 고기 잡내에 대한 이야기가 워낙 많아서. 그래서 '여기서 채식을 시작하게 되는 걸까?' 싶었지만, 그건 좀 앞선 걱정이었고, 실제로는 다른 이유로 고기를 줄이게 되긴 했다. 음식 자체가 꽤나 묵직해서, 웬만하면 가볍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몽골에 도착한 지 딱 2주가 되었다. 감사하게도 요즘 매일 점심으로 직접 만든 다양한 몽골 가정식을 먹고 있다. 빵도 직접 만드시고, 면도 직접 뽑으시고… 어쩜 이렇게 그 작은 부엌에서 뚝딱뚝딱 잘 만드시는지 모르겠다. 매번의 식사가 감사와 감동이다. 동시에, 이렇게 계속 대접받다간 분명 살찌겠구나 싶다. 고기에서 나는 건 '잡내'보다는 그 자체의 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데, 비계 부분을 제외하고 살코기만 먹으면(원래도 비계는 잘 안 먹어서) 꽤 맛있다. 정말 신기한 건 몽골 특유의 향이라고 해야 하나? 그게 모든 음식에서 난다. 요리는 물론이고, 전통 빵 그리고 심지어 마트에서 산 우유에서도 그 특유의 향이 난다.
몽골 여행 다녀온 친구가 나한테 몽골 전통 양고기 음식인 허르헉을 꼭 먹어봤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맛있었냐고 물어봤더니 감자가 맛있었다고ㅋㅋ 아, 이건 너무 인정! 페루 감자도 맛있는데 몽골 감자 진짜 달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양고기는 그때 접했던 강렬한 향 때문에 아직도 잘 못 먹는다고.. 허르헉이 맛있어서 추천한 게 아니라 허르헉을 먹은 나의 반응이 궁금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목 생활의 특성 때문일까? 규칙적인 식사가 어렵거나, 춥고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조금만 먹어도 오래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는 음식 문화가 자연스럽게 발달했을 것 같다. 감자와 당근처럼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채소, 그리고 말, 낙타, 양, 염소, 소까지 '5축(五畜)'이라 불리는 가축들과 함께한 삶. 그래서 육류와 유제품 중심의 식문화가 형성된 것 같다. 특별한 향신료나 양념을 쓰기 힘든 환경이었을 테고!
국물 요리인 수프와 밥은 물론이고, 몽골 볶음국수인 초이왕, 보쯔라 불리는 몽골식 만두 등등 요리 종류는 다양해도 들어가는 재료가 비슷한 이유 때문인지 맛이 거기서 거기. 비슷하다. 마치 멕시코에서 고기를 넣은 토르티야를 반으로 접으면 타코, 거기에 치즈 넣으면 퀘사디아, 바삭한 칩 위에 고기 올리면 토스타다, 돌돌 말아서 소스를 부으면 엔칠라다 같은 느낌이랄까. 아이.. 갑자기 멕시코 너무 그립네���
다채로움이 좀 필요했다.
그보다도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개운한 맛이 필요했다.
그렇다. 칠리, 정확하게는 고추의 알싸하고 매운맛,
그리고 식초의 톡 쏘는 맛이 필요했다.
원래도 야채, 과일, 그리고 양념과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요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2주 동안 마트 가서 식재료 구경하는 게 소소한 재미였다. 대부분 중국산 야채 같은데, 크기가 엄청나게 크거나 말도 안 되게 작아서 웃기다. 몽골을 에워싼 두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에서 온 제품들은 당연히 많고, 독일이나 스페인에서 수입된 제품들도 꽤 보이는 점이 의아했다. 재밌는 점은 늘 파는 야채(호박, 오이, 배추, 당근, 감자, 양파, 브로콜리, 표고버섯, 양배추, 청경채 등)가 아니라 독특한 야채가 보인다면 그때 사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시금치, 콩나물, 베트남 고추, 방울 양배추 이런 것들은 늘 있는 게 아니라 어쩌다 보이는데, 다음날 가면 없다. 그래서 베트남 고추 보이자마자 바로 집에 데려왔다. 그날부터 시작이었다.
모든 음식에 고추를 넣기 시작한 것은...�️�
감자, 당근을 제외하면 야채와 과일 가격은 꽤 비싼 편인데, 우리나라랑 비슷한 수준인 듯하다. 대부분 (아마도 중국에서) 수입된 것들이라서 그런가 보다. 그래서 더더욱 깨끗하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에서는 안 쓰던 베이킹 소다까지 써가며 야채를 씻는다. 이게 나의 고정관념인가 싶으면서도 그냥 팩트겠다 싶기도 하다. 반면 고기는 정말 싸다. 마트에서는 전부 냉동만 팔고, 생고기는 주로 시장에서 살 수 있는데 발골 하시는 모습을 직접 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위생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서 안 먹을 수도 있지만, 나라마다 문화가 다른 걸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자는 생각을 항상 기저에 깔고 있다. 게다가 냉동보다는 생고기가 낫지 않나... 할 줄도 모르는 몽골어를 번역기 써가면서 양고기 앞다리살을 200g 샀다. 3,000투그릭이라니, 우리 돈으로 1,500원도 안 된다. 다음엔 다른 부위도 사봐야지.
한 달 정도는 적응 기간이라 생각하고 이것저것 다 먹어보는 중이다. 마트 가서 궁금한 과자나 디저트가 있으면 사보고, 평소 잘 안 마시는 믹스 주스나 우유(유당불내증 때문에 우유도 잘 못 먹으면서 궁금해서 일단 구매해 본다. 크림 파스타나 리조또 해먹으면 괜찮으니까)도 일부러 사본다.
좋은 점도 몇 가지 있다.
잼을 잘 안 먹긴 하지만 그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살구 잼이 흔하다! 그리고 브라운 브레드와 다크 사워도우 같은 빵도 여기저기서 보이는 점도 꽤 마음에 든다.
동네 구멍가게에도 한국 제품이 꽤 있다. (한국 음식이 그리울 틈 없음)
밀가루 포함 곡물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하다.
생각보다 밀가루를 많이 먹게 되는 환경인 것 같다. 몽골식 밀크티인 수테체와 밀가루로 만든 전통 빵을 같이 먹는 문화가 있는데, 이게 뭐라고 이 밀가루와 버터, 소금만 들어간 듯한 이 빵이 맛있다. 조심하지 않으면 서서히 조금씩 탄탄하고 토실토실해지겠구나 싶어서 아침에 요가와 러닝을 병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해야 하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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