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를렌 강가(хэрлэн гол)에서
EP05 | 몽골에서의 첫 플로깅
지난 주말 지부장님 N이 활동하시는 단체에서 헤를렌 강(хэрлэн гол)가에서 플로깅하는 봉사활동에 함께 참여했다.
플로깅할때의 복장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창문으로 느낀 날씨가 너무 좋아서 좋아하는 할로 발리 원피스와 레깅스를 입고, 그저 선글라스와 스카프만 하나 달랑 챙겨 (물론 아직 경량 패딩 입어야 할 날씨다) 교회를 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스카프가 진짜 오늘의 킥이 될 줄 몰랐는데…
예배가 끝나고 바가노르 시내에서 차로 약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헤를렌 강으로 이동했다. 아스팔트 도로를 벗어나자 길이 없는데 길이 있는 황무지를 달려 강가에 도착했다.
엥? 강이라고 해서 좀 거대한 물줄기를 생각했는데! 이건 그냥 우리 동네에 있는 도랑 정도의 수량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아직 한 번도 비가 오지 않았단다. 비가 한번 왕창 와야 물을 흠뻑 먹은 식물들이 초록 잎을 내기 시작할 텐데… 몽골 하면 떠오르는 푸른 초원은 딱 6~8월, 여름 3개월뿐이다. 나머지는 이토록 삭막한걸.
도착해서 보니 다들 모자, 스카프, 선글라스, 얼굴 햇빛가리개 혹은 마스크를 쓴 복장이시다. 몽골 사람들도 흰 피부를 선호해서일까, 아니면 들판을 휩쓸고 지나가는 모래바람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일까? 와.. 나 진짜 스카프 없었으면 오늘 하루 종일 머리카락과 사투를 벌여야 했을 것 같다.
머리를 푼 상태로 스카프를 했더니 하나마나였다. 그래서 머리부터 질끈 묶고 다시 스카프 장착!
목장갑과 마대자루를 하나씩 보급 받고 강을 따라 걸으며 쓰레기 줍깅을 시작했다. 한낮에 시작된 플로깅이었다. 아침으로 과일뿐만 아니라 몽골 전통 아침식사인 보르츠크(빵)와 수테체(우유차)를 챙겨 먹고 나오길 잘했다. 아니었으면 현기증으로 쓰러질 뻔했쟈나...
역시나 널려있는 쓰레기는 비닐봉지와 플라스틱이 주를 이루었다. 독특한 건 자동차 번호판을 2개나 발견했다는 점? 이게 여기 왜 있냐는 물음에 강을 건너다가 떨어진 것 같다며 종종 있는 일이라는 듯 대답하는 N. 지금의 수량은 정말 개울 정도로 정말 얕아서 픽업트럭이나 지프차가 아니더라도 웬만한 차는 그냥 강을 건너는 조금은 이색적이고 흥미로운 곳. 비가 와서 수량이 많아지면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곳도 물로 덮인다고 한다. 나일강 유역이랑 비슷한 느낌인 걸까 싶었다.
오늘 플로깅하며 느낀 건 전 세계적으로 비닐봉지 진짜… 사용 자제해야 한다.
과자나 제품 포장지도 문제지만 (이들은 주우면 깔끔하게 주워진다) 비닐봉지는 햇빛에 파사삭 마르면 산산조각이 나고, 또 흙 사이에 파묻히면 쭈욱 늘어나며 찢겨서 완벽하게 제거하기가 너무 어려운 골칫덩어리였다.
몽골도 여기저기 비닐을 정말 많이 사용한다. 특히 일회용 위생백처럼 얇은 비닐봉지를 채소, 과일, 정육을 구매할 때 많이들 사용한다. 장바구니나 에코백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아직 많이 없다. 지자체에서 분리배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은 거기까지 가지 않는다. 종량제 봉투도 없고 그냥 아무런 비닐봉지에 모든 쓰레기를 다 담아서 버린다. 진짜 모든 쓰레기.
우리나라도 오랜 세월을 거쳐서 조금씩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기 시작했듯이 이곳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변화의 바람이 불겠지?
곳곳에 널려있는 말똥, 소똥, 염소똥, 양똥, 낙타똥 똥똥똥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쓰레기를 줍다가 (어쩔 수 없다. 뭐 하나 하면 최선을 다해버리는 나 자신) 무언가를 발견했는데...!
omg 동물의 사체였다(알면서도 가까이 가지 않을 수 없는 나란 사람)... N은 보더니 아무래도 양인 것 같다고 하셨다.
유목민들은 보통 기르는 가축이 아프거나 병들면 이렇게 버리고 가게 되고, 그 죽은 짐승을 독수리 같은 짐승들이 와서 먹게 된다고. 정말로 야생과 날것 그 자체다, 몽골.
이날 플로깅에는 바가노르 구의원 부부도 함께 참석하셨다. 엄청 열심히, 끝까지 줍깅을 하던 사람들이 그분들이었구나! 함께한 의원님은 바가노르 구의 토지 및 도시계획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고 하셨는데, 의원님 덕분인지(?) 우리가 마대자루에 열심히 주워 담은 쓰레기를 싣기 위해 무려 쓰레기차가 왔다...ㅎㅎㅎ 역시 일은 민관이 함께 해야 효율적인 거지?
의원님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먼 곳에서 와서 바가노르 위해 이렇게 플로깅 함께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주셨다.
그렇게 플로깅이 마무리된 시간은 3시쯤이었던 것 같다.
아.. 배고파. 현기증 나�
하루 종일 건조한 바람 아래 있다 보니 입술도 바짝바짝 말라 각질이 엄청나게 생겼다. 중간에 립밤 바를 생각도 못 했네 ㅎㅎ
쓰레기차가 지나가고 나니 갑분 피크닉이 펼쳐졌다. 근방에 똥이 있든 말든 캠핑 테이블을 턱하고 펼치는 몽골 사람들. 그들에겐 너무 익숙한가 보다.
아.. 너무 출출했는데 이 음식들이 너무 감사했다ㅠㅠ
역시나 수테체와 보르츠크, 삶은 소고기가 등장했고 연이어 오렌지, 빵, 빵에 발라먹는 당근 샐러드와 소고기 햄, 그리고 오이도 나왔다. 수테체를 보자마자 한 잔을 쭈욱 들이켰다. 따뜻하고 맛있어 ㅠㅠ 삶아온 소고기를 수테체에 퐁당 빠트려 (고기를 따뜻하게 먹기 위함일까?)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보르츠크 한입 베어 물고 소고기 한 점 먹고, 오이피클 하나 먹고 수테체 한 모금.
아, 여러분들 이렇게 먹는군요? 오케이.
역시 시장이 반찬이다. 너어어어어무 맛있었다. 특히 집집마다 가져오신 수테체가 조금씩 달랐는데 한 잔씩 마시며 맛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날씨가 맑고 깨끗해서, 피크닉 하기에 너무 좋은 날씨였다. 가끔 불어젖히는 회오리바람 정도는 용서할게. 절로 기분 좋아지는 하루.
역시 햇살의 존재는 나의 에너지 레벨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아 맞다!!!!!!!!!!!!
수테체를 4잔 정도 마시고 나서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찔했다. 유당불내증인데 우유로 만든 차를 이렇게나 마셨다고? 배고파서 정신줄을 놓은 거지...
한 시간쯤 뒤에 내 배에서는 우르르 쾅쾅 천둥번개가 쳤다...
아이고 배야.
아마도 다 쏟아낸 것 같다 ㅎㅎㅎ
배가 헛헛해져서 저녁으로는 냉장고에 있는 아채를 뚝딱뚝딱 썰어서 스프를 만들어 먹었다. 예전에 미국에 있을 떄 비건하는 친구가 알려준 레시피인데 속 아플땐 이렇게 먹는게 최고다. 간편하고, 속도 편안하고, 맛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