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6 | 계획에 없었던 인생 첫 10km 마라톤

2025 Ulaanbaatar International Marathon

by 그웬


울란바토르 5월 말, 해발 1350m의 건조하고 시원한 바람이 달리기하기 완벽한 날씨를 만들어냈다. 평소 꽉 막혀있던 피스 에비뉴가 마라톤을 위해 깔끔하게 통제된 것을 보니 정말 특별한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새벽에 물청소도 했다는 놀라운 사실!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게 꼭 안 좋은 것만은 아니다. 늘 예상 밖의 일이 즐거움과 놀라움을 삶에 가져다주니까!



이번 마라톤 역시 계획에 없었다. 그렇지만 몽골에 와서 처음 러닝을 시작했는데, 내가 울란바토르에 머무는 일정에 마침 마라톤이 열리네?


크게 생각하지 않고 10K를 신청했다. 사실 처음 든 생각은 5K였지만, 10K부터 굿즈를 주길래... (이왕 뛰는 거 ㅎㅎㅎ)




너무 귀여운 게 코스가 500m부터 있다. 온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따뜻한 마라톤 느낌.


사실 기록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혼자 뛰면 4~5km를 9분 초반~8분 후반대로 걷고 뛰었기에 110분 안에 들어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목표만이 있었을 뿐. 게다가 아직 울란바토르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는데 달리면서 이 도시를 느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Great way to get to know the city itself, right?












이번 2025년 울란바토르 국제 마라톤의 출발지는 (거의 대부분의 행사가 열리는) 수흐바타르 광장. 8시 반쯤 되었는데 벌써 해가 뜨끈뜨끈하다.









등짝에 새겨진 FINISHER라는 말이 너무 마음에 든다. 뛰기도 전인데 벌써 완주한 자의 느낌이 들어서. 동생이 잠시 한국 들어왔을 때 '누나 신을래?'하며 주고 간 패밀리마트 양말이 오늘 나의 러닝메이트다. 내가 마라톤을 뛰다니.. 그것도 첫 마라톤을 몽골에서! 무의식적으로 준비해온 러닝 아이템들이 이럴 때 쓰이는구나.






이번에 WFK-KOICA 봉사단으로 함께 온 H를 통해 마라톤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뛰는 행위를 통해 그녀의 지인들을 만날 수 있어서 또 한 번 좋았다. 뛰기 전에 다 같이 사진도 찍고, 초콜릿도 한 조각씩 나눠먹었다(감사해요!). 몽골 와서 혼자 뛰기만 해서 몰랐는데 왜 사람들이 러닝 크루에 들어가고 함께 뛰는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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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굿즈 중에 한국 선크림이 있었다! 타국에서 우리나라 제품을 만나니 반갑고 자랑스러웠다.







10시 출발을 위해 무한 대기 중. 사람이 지~~~~인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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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몽골 와서 뛰기 시작했지만 제대로 뛰지도 않았는데(대부분 걷뛰) 그게 조금이라도 쌓였던 걸까? 10km 달리기가 생각보다 크게 힘들지 않았다. 아마도 같이 뛰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중간중간 응원해 주는 분들, 손 내밀어 하이파이브를 청하는 이들이 멈추고 싶은 순간 정말 힘이 되더라. 시간은 애초에 중요하지 않았고 완주만 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이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시간 안에 골인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finish 지점을 통과하니 더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끝인 걸 알아서 그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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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동안엔 많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날씨 너무 좋다, 달리며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진다, 같이 달리니까 더 오래 달릴 수 있구나, (재작년 12월에 다친) 발목이 생각보단 안 아프네.' 요 정도?


7km쯤 되니 발목이 조금 아파지기 시작했고 다리도 훨씬 무거워졌다. 그럴 땐 억지로 뛰지 않았다, ‘내 몸한테 너무 무례하진 말자’는 마음에.



다 끝나고 나서 H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마라톤이 왜 인생에 비유되는지 알겠어요. 어디로 뛰는지 모르지만 그냥 앞으로 한걸음 한걸음 가는 거예요. 그리고 뛰는 동안 뒤를 돌아보지 않았어요. 인생도 그렇잖아요?"



그녀의 말에 나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렇다. 우리가 다 같이 ‘마라톤’이라는 이름 아래 모였지만, 이건 혼자만의 싸움이다. 각자의 다리로, 각자의 속도로 뛰고 있었던 것처럼, 삶도 결국은 그런 게 아닐까. 하지만 결코 혼자는 아니다. 땅만 보고 뛰는 게 아니라면 혼자 가야 하는 그 길을 함께 응원해 주는 이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으니까. (너무 힘들어 주변을 돌아볼 수 없을 때에도 응원의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누가 처음 삶을 마라톤에 비유했는지 모르겠지만 참 적합한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러닝이, 마라톤이 매력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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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너무 말랐다. 평소라면 단 음료는 잘 마시지도 않는데 온몸이 당을 갈구했다. 그래서 수흐바타르 광장에서 석류주스를 한잔 사서 마셨다. 카드가 없어서 모바일 이체를 했다. 조금은 현지인이 된 기분.



그렇게 잠시 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에너지 드링크 TARGET 홍보부스에서 음료를 주시며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으셨는데, 사진이 벌써 그들의 페이스북에 나와버렸네?


https://www.facebook.com/photo/?fbid=706631058727194&set=pb.100081409175360.-2207520000



이렇게 인생 첫 10K를 완주한 기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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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후 국영 백화점 근처에 있는 새마을식당에서 열탄 불고기를 먹었다. '여긴 그냥 한국이잖아?'싶어 웃음이 났다.



이번에 울란바토르(유비)에 며칠 머물면서 느낀 점인데 유비는 몽골이 아니다. 내가 지내는 바가노르(=몽골)에서 다른 나라로 여행 온 것 같았다. 유비는... 특히 유비 도심은 그냥 울란바토르다. 정말 국제화가 많이 된 도시라 유비만을 보고 몽골이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생각. 도심과 지방, 그리고 유목민과 비유목민의 생활 및 인식의 격차가 상당히 크다.



아무튼! 다시 마라톤 얘기로 돌아가서 마무리하자면, 천천히 꾸준히 뛰어서 다음번엔 하프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언젠가 하프를 뛰고 있는 미래의 나를 상상해 보며? 완주한 나 자신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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