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422 뉴욕조각보
뉴욕에 온 지도 어언 세 달 째.
뒤죽박죽 얼레벌레 우당탕탕 돌아가는 도시인만큼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도 기록하고 싶은 순간을 마주하곤 하는데 그런 조각들을 사소하게나마 모아두면 나중에 펼쳐봤을 때 구석구석 뜯어보는 재미가 있는 조각보가 될 것 같아서 뉴욕 일기, 뉴욕조각보를 시작해본다.
센트럴 파크에도 조금씩 짙은 녹색이 공원 전체에 드리우고 있다.
오늘은 MeetUp이라는 모임 어플에서 찾은 러닝 모임에 두 번째로 나간 날이었는데 오늘 모임의 주제는 Wednesday easy run.
지난 모임에서 뜻밖의 인터벌 트레이닝으로 호되게 당한 터라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가장 느린 페이스의 그룹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룹 달리기를 하면 으레 그렇듯이 조금씩 몸이 풀리고 내딛는 발자국에도 탄력이 붙으며 페이스가 빨라지곤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6'00" 정도 (1km를 6분에 달리는 페이스)의 뽀송런을 기대했지만 결론적으로는 평소 혼자 달리기를 할 때와는 훨씬 빠른 5'24" 의 평균 페이스로 6km 이상을 달리는 뻘뻘런이 되었다. 혼자 뛰면 수시로 시계를 확인하며 내가 편하다고 느끼는 페이스에 스스로를 맞추기 위해 더 빨라지려다가도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추곤 하는데, 다같이 모여서 달리는 그룹런에서는 시계를 확인할 틈 없이 앞사람을 페이스 메이커 삼아 달리다 보면 어느새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발을 구르게 된다.
또 익숙한 코스로 달리다보면 반환점이 어디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시계의 2.5km 알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 돌아갈 채비를 하는 반면 누군가의 리드를 따라 새로운 코스로 달리다보면 여기가 몇 km 지점인지, 반환은 언제 하는지 (혹은 하긴 하는지)에 대한 예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거리에 대한 감각을 잊고 탐험가의 마음으로 새로운 코스를 만끽하게 된다. 보통 5km 알람이 울리면 칼 같이 달음박질을 멈추고 5'45" 정도의 평균 페이스를 유지하는 나로서는 평소보다 빨리, 멀리 뛰게 되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고?
아니다. 빨리 가려해도 같이 가고 멀리 가려해도 같이 가라. 적어도 달리기에선 그렇다.
그렇게 Wednesday not-so-easy run이 끝났다.
+) 자전거를 타고 가서 공원 한 켠에 묶어뒀는데 뉴욕에선 절대 자전거를 묶어두고 어디 가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다. 무정한 회색 도시 뉴욕에서는 진짜 자물쇠도 다 끊어가 버리는 건가..?
++) 달리기를 하며 어떤 미국인과 스몰톡을 하다가 아침에 비 와서 그런지 저녁에 공원에 사람이 유독 많은 것 같다며 compressed population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I like that expression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문법적으로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기분 좋음 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