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의견과상념 Jan 01. 2023

드럼스틱은 당근마켓에, 드럼은 내 가슴에

091422 뉴욕조각보


“무슨 음악좋아하세요?”

“음...저요?”


예술, 그 중에서도 음악에 대한 지식도 취향도 기술도 없었던 나는 음악 이야기가 항상 어려웠다.

즐겨듣는 노래는 멜론 탑 100이요, 좋아하는 가수도 고릿적 시절에 덕질을 한 플라이투더스카이 (이것마저도 음악보다는 얼굴 덕질이었지만) 를 제외하고는 없었고 몇몇 음악인에겐 금기시된다는 음악을 ‘깔아놓고’ 듣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대부분의 경우 ‘운동할 때 듣기 좋은 걸그룹 노래’ 혹은 ‘Lo-fi 힙합 음악 믹스’ 등의 노래들이 고막도 아닌 귓바퀴만 맴돌다 흘러갔고 음악을 틀게 될 때면 선택권을 누군가에게 넘기고 그들의 선택에 내 귓바퀴를 맡기는 편이 훨씬 편했다. 


그럼에도 악기를 잘 다루거나, 타고난 악기인 목소리를 기가 막히게 잘 쓰거나, 절대음감 따위를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워낙 많아서 그런지 나도 어떻게든 이 음악이라는 것에 발이라도 걸쳐보고 싶다는 생각은 내 두 고막 사이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나를 이리저리 찔러대곤 했다. 하지만 그간 은근히 삶에 대한 내공(?)을 쌓은 덕에 무턱대고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거나, 많이들 배운다는 기타를 덜컥 배우기에는 미래가 뻔히 그려졌다. 이미 피아노는 수능이 끝나고 잠깐 다시 시도해봤지만 하얀거탑 OST만 몇 달 동안 붙들고 끙끙대다가 접은 이력이 있으니 탈락. 기타는 딱 봐도 코드를 짚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싫증이 날 것 같은 사이즈였다. 그렇게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마침내 결단을 내린 것이 드럼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음정이 없이 박자, 리듬만 있는 악기니 비교적 익혀야할 게 적겠고 시원시원하게 북들을 때리다보면 뭔가 해소되는 느낌도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


삼개월 동안 다녔던 드럼학원...

아 얼마나 오만했던가. 맞는 박자에 맞는 북을 맞는 타이밍에 치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던 나는 수업 몇 번만에 그 ‘맞는’ 북을 ‘맞는’ 타이밍에 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깨달았다. 결국 내 자신을 박치가 아닌지 의심하게 될 정도로 자신감이 바닥난 채 삼개월을 겨우 채우고 미련없이 드럼을 그만두었고, 그렇게 드럼은 나의 실패리스트 한 켠에 자리하게 되었다. 


굳이 따지자면 꽤나 큰 시간 낭비, 돈 낭비, 에너지 낭비였다. 3개월 간의 레슨비, 드럼 스틱 구입비, 학원에 오고가며 레슨을 받은 시간, 거기에 안 되는 드럼을 붙잡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정신적 에너지까지 쏟았지만 지금은 드럼 악보를 읽는 법조차 죄다 까먹은 나는 드럼을 배우기 전의 나와 별반, 아니 전혀 다르지 않았다. 


드럼스틱도 당근마켓에 팔아버린 후 드럼과는 전혀 접점이 없는 삶을 한창 살다가 곳곳에서 재즈 공연이 끊임없이 열리는 뉴욕으로 오게 되었다.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았던 덕에 재즈라고는 ‘밤에 듣기 좋은 재즈 믹스’ 따위로만 접해본 나도 어느 금요일 밤 핫하다는 재즈 바 한 켠에서 와인을 홀짝거리며 재즈 공연을 기다리게 되었다. 공연이 시작되었고 무슨무슨 상도 받았다는 재즈 보컬이 마이크를 잡았지만 내 눈과 귀는 정작 온통 무대 뒤쪽의 드럼에 쏠렸다. 


그리고 희안하게도 드럼을 배워보기 전까지는 그저 노래에 리듬감과 흥겨움을 더해주는 무대 뒷편의 악기였던 드럼이 마치 줌인을 한 듯 무척 선명해졌다. 원래는 드럼을 ‘얼마나 빠르게 혹은 화려하게 무언가를 두드리는가’라는 표면적인 정의로만 감상이 가능했지만, 아 박자를 저렇게 쪼개서 치네, 방금 fill-in 장난 아니었다 등 미약하지만 약간의 기술적, 예술적 감상과 ‘나는 오픈 하이햇치면 맨날 박자 밀렸는데 이게 정석이구나’, ‘스틱을 가볍게 쥐고 치라는게 저런거였겠구나’ 등의 경험적 감상이 자연스럽게 가능해졌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 빚어낸 드럼에 대한 고유한 감상은 트럼펫과 피아노가 연주하는 2차원의 선율에 z축을 그어 음악을 3차원으로 완성해주었다. 그저 낭비로만 여겨졌던 드럼을 배우고 또 실패했던 시간과 경험들이 마침내 제 자리를 찾은 순간, 나는 금요일 밤의 재즈를 조금은 더 가까이 그리고 풍부히 즐길 수 있었다.  


뉴욕의 꽤나 유명한 재즈바인 Smalls에서 즐긴 선명했던 드럼세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진부한 격언이 있다. 하지만 나의 드럼 도전기는 하나의 온전한 실패였다. 그렇지만 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또다른 진부한 격언이 있다면 때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 결과가 실패일지라도 드럼이라는 하나의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새끼발가락이라도 걸쳐보려 노력했던 그 과정이 내 안에 작은 씨앗을 남겼고, 그 씨앗이 반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자 고유한 싹을 틔워 나의 정원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아마 모든 실패는 크고 작은 씨앗을 남겨왔고, 또 남길테다. 그리고 일주일 후건 몇 년 후건 씨앗들은 저마다의 싹이나 꽃을 피워 내 경험의 지평을 넓혀줄 것이다. 그러니 더 마음껏 도전하고 실패하자. 

작가의 이전글 구글 사내 면접에서 떨어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