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조각보_2월의 운동, 일, 관계
어느새 뉴욕에 온 지도 2년하고도 2개월이 지나 3년차가 되었다.
몇 년 만에 2월 29일이 있는 윤년을 기념할 겸 2월 결산을 남겨본다. 생각없이 주욱 쓰다보니 글이 좀 길어졌는데,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자면 러닝을 좀 열심히 했지만 최악의 숙취로 죽다 살아나서 건강은 넷제로가 되었고, 일은 오리무중이지만 애매모호한 관계는 정리한 한 달이었다.
작년에 처음으로 브루클린 하프 마라톤을 준비하며 장거리 러닝에 학을 뗀 덕분에 얼마간 러닝은 쳐다도 안 봤는데, 아뿔싸. 별생각 없이 신청한 3월 뉴욕 하프 마라톤에 추첨이 되는 바람에 졸지에 다시 장거리 러닝 훈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뉴요커들의 러닝 사랑은 도대체가 그 기원을 알 수 없으나, 4-5만원 정도의 참가비만 내면 마라톤에 참여할 수 있는 한국과 비교해 뉴욕에서는 마라톤 참가 신청부터가 쉽지 않다. 5km, 10km 대회도 몇 달 전에 선착순 마감되기 일쑤이고, 연중 가장 큰 대회인 브루클린 하프 마라톤, 뉴욕 하프 마라톤, 뉴욕 풀 마라톤 같은 경우에는 추첨을 통해 당첨이 되어야지만 참가가 가능했다. 당첨되면 참가비라도 면제냐고 묻는다면, 모든 것이 달러 가치로 환산되는 뉴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 마라톤을 응모할 때 카드 정보를 입력하면, 추첨되는 순간 하프 마라톤은 160불 (약 20만원), 풀 마라톤은 315불 (약 40만원)의 참가비가 결제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어쨌든 160불도 이미 결제되었고 하니 연초부터 칼바람을 맞으며 계획에도 없던 장거리 훈련에 돌입했고, 2월부터 본격적으로 거리를 늘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훈련에 대단한 내용은 없다. 작년 하프 마라톤 훈련 방법과 동일하게 매주 1마일씩 거리를 늘려가고 있다. 사실 2월 27일 오늘이 10마일 (약 16km) 훈련을 하는 날인데 비가 오는 바람에 꼼짝없이 집에서 이 글을 대신 쓰고 있다.
그런데 작년 첫 하프 마라톤을 준비하며 사뭇 결연했던 마음가짐과 비교해 이번에는 왠지 그렇게 기합이 들어가지 않는다. 한 번 해봤다고 조금 여유가 생긴 것 같은데, 같은 거리를 뛰어도 오늘 뛰는 것과 내일 뛰는 것이 뉴욕과 뉴저지만큼이나 다르게 느껴지는 달리기라는 운동 특성상 이렇게 느슨해지는 게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장거리 훈련을 하며 한 주씩 거리를 늘려나가는 것 자체가 개인적인 기록 경신의 연속이었고, 그만큼 매주 뛰어보지 않은 거리와 겪어보지 않은 신체적 경험에 대한 불확실성이 모종의 긴장감을 가져다주었다. 올해는 이미 맛보았던 고통을 다시 느껴야 한다는 점이 못내 괴로울 뿐 내가 뛰는 거리들이 완전한 미지의 영역이 아닌 덕에 불안하거나 긴장되진 않는다. 그래서인지 반드시 2시간 이내에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그저 다치지 않고 완주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슨하지만 조금 편안한 목표가 되었다. 어쨌든 우선 훈련은 계획대로 해 나가는 중이고 오늘 못 뛴 10마일은 어떻게든 이번 주중에 시간을 내서 뛰어야겠다.
2월 둘째 주 주말에는 뉴욕에서 친하게 지내는 미국인 친구들 그룹 중 한 명인 K의 생일파티가 있었다. 작은 클럽 같은 곳을 피크 시간 전에 대관해 일정 금액을 내면 예약한 시간 동안 바에서 술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소위 오픈바 형식의 생일파티였다. 친구 생일이었고, 꾸밀 일이 별로 없는 뉴욕에서 오랜만에 구두에 원피스도 신었고, 친한 친구들과 모여있고, 술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맘만 먹으면 그 어느 때보다 재밌는 밤을 보낼 수 있는 기회였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술은 무제한이었지만 시간은 제한이 있었다는 것.
열 시쯤 도착한 나는 친구들과 칵테일 몇 잔을 홀짝이다가 오픈바가 닫히는 열한 시 직전이 되자 괜히 급한 마음에 타임어택마냥 샷 여러 잔을 시켜 연거푸 들이부었다. 한 시간 혹은 한 시간 반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칵테일 두 세잔, 샷 세 네 잔을 끝낸 나는 취기가 올라온다는 느낌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완전히 취해 뒤집어지는 속을 붙잡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굳이 자세히 서술하진 않겠지만 결국 나는 그날 혼자 화장실을 상당 시간 점유해 원망을 샀고, 친구에게 업히다시피 해서 집에 왔으며, 다음날 오후까지 화장실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근 몇 년 간 최악의 숙취를 경험했다.
다음날 반쯤 정신을 차린 채로 한국이라면 병원에 가서 수액이라도 맞고 실비보험 청구할 텐데라며 침대에서 끙끙대는데 함께 생일파티에 있었던 몇몇 친구들이 괜찮냐며 연락이 왔다. 그중 친구 J가 정말 괜찮냐며, 퇴근길에 뭐라도 사다 줄까라고 물었다. 마음은 너무 고마웠지만 받는 게 익숙지 않은 나는 고맙지만 정말 괜찮다며 거절했는데 이번엔 다른 친구 S가 연락이 왔다. 아직 숙취 때문에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하자 미국의 국민 해장템인 쌀국수라도 좀 배달시켜 줄까라고 묻길래 역시나 왠지 미안한 마음에 괜찮다고 거절했는데 S는 고집스레 주소를 내놓으라고 추궁했다.
결국 그렇게 주소를 건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현관문 앞에 따뜻한 쌀국수가 놓였다. 알고 보니 내가 J에게 주소를 알려주지 않자 J가 S에게 따로 연락해 내 주소를 얻어내는 작당모의(?) 끝에 배달된 쌀국수였다. 저녁 7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쌀국수 국물을 한 모금 마셨는데 눈물이 찔끔 났다. 음주 경력이 몇 년째인데 아직도 스스로에게 이런 험한 꼴을 보이는 내가 한심했고, 그 와중에 나를 집에 데려다주고 쌀국수를 시켜준 친구들이 고마웠고, 엄마가 보고 싶었다.
매주 적게는 대여섯 명, 많게는 스무 명의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누군가 내게 뉴욕에서 정말 가깝다고 느끼는 미국 친구들이 몇 명이나 있냐고 물어본다면 몇 개의 손가락을 접을지 망설여진다. 관계의 온도를 한소끔 더 올리기 위해선 둘만의 맥락과 그 맥락을 형성하기 위한 적극성이 필요한데 일대일로 만나면 어색하지 않을지, 애초에 그렇게 만나자고 하는 것을 반가워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최악의 숙취는 죽도록 힘들었지만, 친구들이 보내준 쌀국수는 속을 다스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내게 관계의 도약을 위한 용기를 주었다. 3월에는 꼭 J와 S에게 주말 브런치 데이트신청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쌀국수를 비웠다.
작년에 H와 몇 달 정도 소위 말하면 썸을 탔다. 우리나라는 중간에 우여곡절이 있을지라도 연애 단계가 썸-연애라는 비교적 단순한 이단논법으로 진행된다면 미국에서는 연애까지 이르는 단계가 훨씬 더 세분화되어 있고, 각 단계들도 이름을 붙이는 대로 각자 다른 모양으로 끊임없이 증식한다.
I’m talking to him, I’m seeing him, I’m dating him, We are exclusive dating each other, We are in relationship 혹은 situationship이란 신조어까지 서로 구별조차 힘든 각종 애매한 단계가 존재했고 이단논법이 익숙한 내겐 여간 복잡한 일이 아니었다. 굳이 명시해 보자면 나와 dating 정도의 단계까지 갔던 H는 개인사를 이유로 점차 연락이 뜸해지더니 어느 순간 연락이 끊겼고, 나도 굳이 멀어져 가는 누군가를 붙잡고 싶지 않아 그렇게 H도 이름을 붙이지 못한 수많은 관계 중의 하나가 되어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런데 2월의 첫날, 마지막으로 연락을 한 지 반년도 훨씬 더 지난 시점에 H랑 정면으로 마주쳐버렸다. 피할 수도 없이 눈이 딱 마주치는 바람에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고 이름 붙이지 못한 n개의 관계 중 하나로 묻어두었던 H가 다시 두둥실 떠올라 머릿속을 어지렵혔다. 그래, 지나간 인연 이렇게 마주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다시 H를 기억 저편으로 밀어 넣으려고 했는데, 그날 밤 H에게 문자가 왔다.
요는 이거였다. 작년에 확실히 이야기도 없이 관계를 흐지부지 끝내서 미안하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지만 그게 핑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나만 괜찮으면 커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만약 싫다면 그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내용. 문자가 내심 반갑기도 했고 무슨 얘기를 할는지 궁금했던 나는 H와 약속을 잡았다. H는 꽤나 진지하게 사과를 했고, 약간의 어색함 끝에 다시 친근한 분위기에서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다가 웃으며 포옹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뭔가 어정쩡하게 다시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일상을 공유하기도 하고, H도 나랑 같은 하프 마라톤을 준비하고 있어서 러닝 얘기도 가끔 했다. 아무래도 과거의 맥락이 있는 사이다 보니, 연락을 하면서 자꾸 '다음 중 저자의 심정으로 알맞은 것을 고르시오' 같은 문항를 받아 든 학생이 된 심정으로 H가 보낸 문자를 다시 읽고 문자를 보낸 횟수와 텀을 파고들었다. 불확실성과 비가시성에서 느꼈던 작년의 답답함과 초조함이 다시 돌아오는 듯했다. 다시 썸 타는 사이도 아니고 어디까지 얼마나 연락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혼란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쯤, H가 저녁을 먹자고 다시 약속을 잡았다.
저녁을 먹고 긴 산책을 하며 나는 H에게 작년에 일어났던 여러 개인적인 일들은 많이 정리가 되었느냐고 물었고 H는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네가 어떤 걸 바라는지 좀 더 확실해졌냐 물었고 H는 아직 그걸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나는 H에게 말했다.
“I’ve been always clear about my intention in dating and I respect that you’re still figuring out what you’re looking for. But we’ve already passed the phase to get to know each other and I don’t want to feel confused while you’re being unsure about what you want. I don’t want to go through what happened last year again.”
H가 누군가와, 혹은 나와 아직 더 진지한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되었는지 (여전히)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더 이상 나의 감정과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네가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될 때까지 굳이 애매하게 연락하고 만나지는 말자고 먼저 종료 휘슬을 불었다. 나는 말 그대로 "The ball is in your court"이라는 표현처럼 공을 H의 코트로 확실하게 넘겼고, 조금은 허하지만 답답함과 초조함을 떨쳐낸 채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조각을 맞추고 난 후의 그림이 눈에 보이지 않는 퍼즐은 이제 내려둬야지.
이제 빅테크에서 대량해고는 연례행사로 자리 잡은 듯하다. 작년 1월에 사상 초유의 규모로 만이천 명을 기업 단위에서 한 번에 해고하더니 올해는 사업부단위로 조직 개편을 하며 더 이상 필요 없어진 포지션을 ‘eliminate’, 즉 직무 자체를 없애는 방향으로 해고 전략이 바뀌었다. 1월 셋째 주쯤부터 사업부 별로 차례로 시작된 조직 개편의 바람은 내가 있는 조직에까지 도달했고 우리 사업부에서도 몇몇 포지션이 elimiante 됨과 동시에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일어났다.
그 바람에 휩쓸린 나도 별안간 업무 범위가 현저히 바뀌었다. 원래 하던 일은 신규 기능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였는데 갑자기 매출 모델링과 모델링을 통해 도출된 매출 목표 달성을 위한 계획 수립이 주요 업무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매니저와 강도 높은 대화를 했고, 출산 휴가 직전인 동료를 마지막날까지 붙잡고 급하게 인수인계를 받았으며, 시니어들과의 미팅에 던져졌다. 그 와중에 원래 하던 일들도 갑자기 놓을 순 없어서 계속 야금야금 도와줄 수밖에 없었고 기존 미팅들은 여전히 내 캘린더에 남아있었다.
이제 업무 범위가 바뀐 지 3주 정도가 지났는데 내 일은 여전히 미궁 속이다. 새로 맡게 된 일의 본질 자체가 성과를 직접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성과를 내는 여러 팀들이 서로 합을 맞출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 성과 달성 과정을 관리하는 일이라 직접 하는 일은 없으면서 사업 타당성 증명을 위해 채워야 할 엑셀 시트와 프레젠테이션은 계속 쌓여갔다.
원래 하던 일을 2년 정도 지속해 오던 터라 익숙해지면서도 익숙함이 가져온 편안한 지루함이 있었는데 그 지루함을 단번에 없애줄 일이 생겼으니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모르겠다. 몇 년째 일 년이 멀다 하고 일어나는 조직개편에 신물이 나면서도 그 조직개편에 휩쓸려 내 포지션이 없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기도 하다. 어느새 한 회사를 다닌 지 만 9년이 되어가는데 9년이라는 시간이 징그럽다가도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회사가 제공해 주는 울타리를 떨치기가 무섭다. 특별한 뜻은 없지만 다들 테크회사의 꽃이라니까 PM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더라도 온라인 강의를 듣고 다시 인터뷰 준비를 할 생각에 슬그머니 그 생각이 다시 자취를 감춘다.
오리무중에 첩첩산중이 더해진 2월이었다. 3월에는 좀 더 일의 루틴이 잡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