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조각보_미국 동부 2박 3일 스키트립 후기
지난 주말 2박 3일로 친구들과 스키 트립을 다녀왔다. 뉴욕에서 북동쪽으로 다섯 시간 정도 운전해서 올라가면 캐나다와 국경이 맞닿아있는 버몬트(Vermont) 주에 갈 수 있는데 1년에 눈이 내리는 날이 평균 54일일 정도로 강설량이 많은 지역이라 버몬트 주에만 무려 25개의 스키장이 있다. 그중에 가장 규모가 큰 킬링턴(Killngton)과 오케모(Okemo) 스키장에서 각각 하루를 보냈는데 하필이면 날씨가 역대급으로 추워서 영하 16도의 날씨에서 덜덜 떨면서 스키를 탔다. 이번이 미국에 온 후 두 번째로 다녀온 스키트립인데 나와 아르헨티나 친구 한 명을 빼고 일곱 명의 미국인 친구들과 같이 가면서 나름 재미있는 미국의 스키문화를 알게 되어서 글을 써본다.
미국은 워낙 나라가 넓다 보니 (참고로 미 전역에 있는 스키장 개수는 480개..라고 한다) 시즌에 걸쳐서 여러 스키장을 이용할 수 있는 시즌권 개념의 스키 패스가 있다. 웬만한 스키장의 1일 리프트 권이 하루에 150불 (원화 20만 원가량..꽥!)인데 사용 가능 일수가 제한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도 스키 패스가격이 7일에 7~800불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시즌 안에 최소 두세 번 이상의 스키 트립을 계획 중인 사람에겐 무조건 남는 장사다. 미국뿐만 아니라 동계 올림픽 개최지 중 하나인 캐나다의 휘슬러 등 일부 해외 스키장도 이용할 수 있는 패스도 있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스키 패스의 존재를 늦게 알아서 리프트 권을 각각 구매해야 했지만, 스키 패스가 있는 친구들이 등록을 해주면 좀 더 할인된 가격으로 리프트권을 구매할 수 있는 ‘버디패스’ 제도를 통해 약간의 할인이나마 받을 수 있었다. 스키패스 구매를 고민할지도 모르는 여러분을 위해 아래와 같이 대신 결정을 내려주겠다.
한 시즌에 최소 2-3번 이상의 스키트립 계획이 있는가? 무조건 스키 패스를 얼리버드로 살 것
2~3번까지는 아니더라도 1~2번의 계획은 있는가? 그래도 무조건 스키 패스를 얼리버드로 사라. 대신 이용 가능 스키장 개수와 사용 가능 날짜가 조금 적은 낮은 티어의 스키 패스를 사자.
스키 패스 구매 기한을 놓쳤는가? (스키 패스는 본격적인 스키 시즌이 시작되는 12월 전까지만 판매한다) 이미 패스가 있는 친구에게 버디 패스를 부탁해 보자.
해당 사항이 아무것도 없는가? 눈물을 머금고 정가를 내고 리프트권을 사자…그리고 잊지 말고 내년에 스키패스를 구매하기 위해 알람을 설정하자…
스키장 하면 또 빠질 수 없는 게 추위에 얼어붙은 몸을 잠시 녹이며 먹는 스키장 음식 아니겠는가. 정상에서 먹는 뜨끈한 라면과 어묵은 을지로에서 먹는 7만 원짜리 어복쟁반을 가볍게 제친다. 하지만 역시 이 미국 놈들은 롯지에서 뜨거운 국물 따위 팔지 않는다. 국물이라고 해봐야 클램차우더로 불리는 크림조개수프정도다. 한 번에 한 솥을 끓여두고 바로 떠주는 수프이다 보니 입을 델까 이리저리 후후 불어가며 먹는 라면과는 온도부터 다르다. 펄펄 끓는 국밥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여간 미지근한 온도가 아니다. 거기에 미국 음식 하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피자, 햄버거, 샌드위치 등을 파는데 메뉴들을 보고 있자면 떼잉, 쯧!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물론 스키장 프리미엄이 붙어 가격이 사악한 것은 덤. 이번 스키 트립에서도 어떤 남자가 햄버거 하나와 콜라 하나를 사는데 계산대에서 30불이 나오자 ‘That can’t be it.’ (그럴 리가 없다)며 영수증을 요청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과연 미국인들도 믿을 수 없는 미국 스키장 물가였다. 나는 있는 재료로 대충 만든 샌드위치를 지퍼백에 넣어가서 점심을 때웠는데 뜨끈한 국물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스키장에서 라면 팔면 대박 날 텐데..’라며 또 하나의 사업아이템을 마음속에 품었다.
스키를 타러 갈 때 아래 사진과 같은 미니어처 양주병을 하나씩 챙겨가는 것도 재밌는 문화였다. 특히 파이어볼 (Fireball) 이라는 시나몬 향이 아주 강한 양주를 많이들 챙기는데, 따끈한 겨울 음료를 떠올리게 하는 시나몬 향이 입혀진 양주를 털어넣자 금방 몸에 온기가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파이어볼은 돈도 없고 취향도 없는 대학생 때 그나마 향이 첨가된 독주를 먹기 위해 먹던 양주라 어느 정도 머리가 큰 후엔 다시 찾은 적이 없는데 스키장 리프트에서 먹으니 또 새로웠다. 역시 인간은 간사하다.
스키장에서 파는 음식과는 별개로 스키가 끝난 후에 먹는 음식을 지칭하는 Après-ski (발음은 스펠링 그대로 '아프레-스키'로 한다) 라는 단어가 있다. 말 그대로 after skiing, 즉 ‘스키 후에’라는 뜻을 가진 불어이다. 미국은 스키장 크기가 상상초월이기 때문에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조명이 켜진 슬로프에서 타는 야간 스키나 새벽 스키 따위는 기대할 수 없어서 대부분의 리프트가 날이 어두워지는 4시쯤 운행을 종료한다. 그 후에 보통 가볍게 재정비를 하고 나머지 저녁시간을 즐기는데, 그때 먹는 음식 혹은 저녁 액티비티를 통틀어서 Après-ski라고 한다.
리프트 운영이 일찍 끝나고 대부분의 스키장이 대도시와 꽤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Après-ski도 스키 문화의 한 부분인데, 숙소를 빌린 경우 다 같이 요리를 해먹기도 하고, 아니면 리조트 내 유명 식당 혹은 바에 가서 나머지 저녁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번 스키 트립에서는 코스트코에서 음식을 너무 많이 사는 바람에 (코스트코야 워낙 스케일이 크지만 왠지 미국 코스트코는 스케일이 한 단계 더 큰 느낌이다) 이틀 연속 숙소에서 다 같이 저녁을 해 먹었는데 나름 복작복작하고 즐거웠다.
미국에서도 기록과 숫자에 집착하는 것은 똑같다. 특히 운동 기록용으로 애플워치를 차고 다니는 사람들은 워치를 안차고 나오면 모든 운동 욕구를 상실하기도 할만큼 기록을 중시한다는데 (내 얘기다ㅎ) 스키에서도 예외는 없다. 애플워치에 기본으로 탑재되어있는 피트니스 앱을 통해 스키를 트래킹하는 것 말고도 스키 전용 앱인 Slope나 스키장 자체 앱 (킬링턴은 내가 이용한 코스 정보까지 자세하게 기록해주는 Killington이라는 별도 앱이 있다)을 통해서 좀 더 스키에 특화된 여러 기록을 측정할 수 있다. 특히 Slope 앱에서는 친구들과 기록을 비교할 수도 있고 실시간으로 친구가 어떤 슬로프에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어서 꽤 유용했다.
자 이제 스키도 타고 Après-ski도 즐겼으니 집에 갈 차례다. 그전에 들를 곳이 있는데, 바로 컨트리 스토어 (Country store)라고 불리는 동네 로컬 슈퍼마켓이다. 인구밀도가 낮고 대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스키 타운은 보통 코스트코나 월마트 등 대형마트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지역 주민에게 생필품을 공급하기 위한 컨트리 스토어가 곳곳에 있는데 굳이 한국말로 옮겨보자면 구멍가게정도 되겠다. 방문객이 많은 스키 타운에서는 컨트리 스토어가 일종의 기념품 가게 역할을 하는데, 로컬 스토어인 만큼 해당 지역에서 생산된 물품을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내가 갔던 컨트리 스토어는 규모가 꽤나 커서 각종 생필품뿐만 아니라 버몬트의 특산물인 메이플 시럽, 메이플 캔디, 꿀 등 여러 가지 제품들을 구비하고 있었다. 나도 집에서는 한식만 먹는 주제에 기념품을 사는 마음으로 메이플 시럽 한 병을 뉴욕으로 데려오는 것으로 스키 트립을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미국에서도 한국과 똑같은 운전 예절이 적용된다. 대표적으로는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최대한 자지 않기, 어두운 길에서 하이빔을 켜고 가다가 맞은 편의 차를 만나면 하이빔 꺼주기 정도? 여럿이서 차를 타며 자리를 정할 때 ‘Shotgun*!’이라고 외치면 조수석을 선점할 수 있는데 기세 좋게 조수석에 타고 가다가 한참을 졸아서 친구들에게 핀잔을 먹었다는 이야기로 이번 글을 마친다..
*Shotgun의 유래: 찾아보니 예전에 조수석에 있는 사람이 주로 창 밖으로 샷건을 쏘는 포지션(…)이었던 것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