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맞는 세 번째 4월, 벽에 부딪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과연 그러했다.
3월이 나름의 하루하루를 빼곡히 채워 영글어가는 옥수수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난 4월 한 달은 앞다투어 벌어지는 튤립의 꽃봉오리와 꽃비를 내리는 겹벚꽃나무 사이에서 바싹 말라가는 뒤엉킨 엉겅퀴 같은 느낌이었다.
하프마라톤이 끝나고 근 4-5개월 간 달리기는 쳐다도 안 봤던 작년과 달리, 4월에도 거리 51.4km의 달리기를 9번에 걸쳐서 해내었고, 3월 결산에서 다뤘던 중국어 듀오링고 학습도 어느새 100일 연속 진행 중이며, 얼떨결에 시작했던 옷 사지 않기 챌린지도 순항 중이다. 하지만 쓸데없이 술에 취해 다음날을 완전히 망쳐버리거나 과식한 후 죄책감에 운동을 과하게 한 날들이 많았고 그런 날에는 여지없이 자괴감을 넘어선 불쾌감이 하루의 지배적인 감정이 되었다. 찰랑찰랑 차오른 불쾌감은 원래도 그리 크지 않은 이해심과 포용력을 잠식했고 나는 푹 젖은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타인, 외부에서 오는 자극에 무력하게 반응했다.
과음, 과식, 과도한 운동 등의 무절제는 일에서 오는 무력감 때문이었다. 무절제로 인해 일상의 주도권을 잃은 것 같은 불쾌감은 생활 전반의 방향성을 흩뜨려 또 다른 무력감을 주었다. 2월 결산에서 언급한 급작스러운 업무 변경은 여전히 자리잡지 못한 채 나를 괴롭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 뒤엉킨 실타래 같은 일 앞에서, 이메일과 업무 메신저를 열 때마다 스트레스는 차곡차곡 쌓여갔고, 미팅과 엑셀 작업 사이로 짙은 한숨이 깔렸다. 벽돌집을 지어야 하는데 손에 든 건 장난감 모래삽이 전부인 것 같은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자조 섞인 희망과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냐는 분노 섞인 절망을 오갔다.
이렇게까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그로 인한 무력감과 패배감이 내 일상에 영향을 주는 건 9년 전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래 처음 겪는 생격한 경험이라 어떤 방향으로 해결해야 할지도 쉽사리 판단이 서지 않는다. 누구한테든 도움을 받거나 나머지 공부를 해서든 뚝심 있게 버텨서 소위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 게 맞는지, 아니면 새로운 업무가 내가 잘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끗이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다른 기회를 찾아 나서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전자를 택하자니 현실이 버겁고 후자를 택하자니 패배감에 속이 쓰리다.
길라잡이가 절실한 4월이었다.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나마 방향키를 고쳐 잡기 위해 약속을 줄이고 책과 예술을 가까이해야겠다. 숙고와 행동이 필요한 5월이다.